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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에 감사해

솔뫼들 2023. 5. 24.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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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가 읽고 있는 책을 다 읽으면 빌려 달라고 했다.

배우 김혜자가 쓴 책이라고 한다.

제목은 알고 있던 책이다.

 

 책을 손에 들고 보니 내가 예상한 것과는 좀 달랐다.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하지만 드라마나 영화를 촬영하면서 겪은 이야기나 느낀점 등이 대부분이었다.

개인적인 가정사도 꽤 씌어 있었다.

'국민 엄마'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사실은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어려서 집안이 부자였던데다 일찍 결혼을 하고 일을 하는 바람에 살림은 다른 사람이 도와주었단다.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일이다.

물론 예상보다 더 집안일과는 동떨어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김혜자는 굉장히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모양이다.

그렇게 오래 배우 생활을 하면서도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일이 끝나면 바로 집으로 직행을 한단다.

보통 매니저라고 하는 사람도 없어서 본인 스스로 일정 관리며 의상이나 헤어스타일까지 직접 하기도 하고.

 

 사실 드라마를 많이 보지 않아서 책 속에 언급되는 드라마 중에서 내가 본 건 대여섯 개나 되려나?

그래도 인상적인 작품들이 꽤 있다.

특히 최근에 방영된 '디어 마이 프렌즈'나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우리들의 블루스'는 아주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김혜자는 극작가 김수현과 김정수의 작품을 많이 언급했다.

그들의 작품을 연기하면서 결이 다른 느낌인데도 맡은 배역을 잘 소화했다.

속사포 같은 김수현 작품의 주연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텐데...

그리고 얼마나 사람을 극한까지 몰아부치는 대사로 유명한 작가인가.

보는 사람이 속이 후련하기는 했지만 사실 막장 드라마라는 말도 많이 듣지 않았던가.

반면 '전원일기'의 김정수 작가의 작품은 따뜻한 인간미로 감싸안는다고 한다.

연기를 하는 동안에도 마음이 푸근하지 않았을까.

 

 김혜자는 드라마나 영화, 연극에서 배역을 맡으면 일상생활 중에도 한참 전부터 배역 속의 인물로 살아간단다.

그 사람이 되어야 오롯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으므로 그렇다고 하는데 가족들은 쉽지 않았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김혜자의 아들이 그렇게 말했단다.

엄마가 배역에 몰입하면 장막을 친 것 같다고.

김혜자 스스로 가장 잘 하는 일이 연기라는 말에 공감하고 박수를 보내고 싶다.

가장 잘 하는 일이라고 해도 수십년 그렇게 해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

 

 책을 손에서 놓은 후 김혜자가 나온 작품을 하나하나 찾아보고 싶어졌다.

대학시절 본 영화 '만추'도 다시 보고 싶고, '마더'라는 영화도 보고 싶다.

이렇게 나이 들어도 자기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을 보면 고맙다.

물론 존경하는 마음도 생기고.

김혜자의 나이가 80이 넘었다지만 앞으로도 자주 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