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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강영환
대설주의보가 지나간 벌판에 서서
햇살만으로도 녹아내릴 사람이다 나는
한쪽 눈웃음으로도 무너져 내릴 뼈 없는 인형이다
벌판을 발자국도 남기지 않고 곁에 왔다
걸어온 길은 돌아보지 않는다
앞서갈 길도 눈여겨보지 않는다
내 지키고 선 이 자리에서
여분으로 남겨진 사랑도 가슴에서 뽑아낸 뒤
흔적 없이 떠나고 싶을 뿐
얼어붙은 바람 속에서 쓰러지지 않는다
그려 붙인 눈썹이 떨어져 나간 뒤
그대 뿜어낸 입김에 빈터로 남을 뿐
젖지 않고 떠난 자리에 남겨진 나뭇가지 입술은
무슨 말을 하려다 다물었는지
끝내 숯이 된 눈으로 남는다 나는
그대 온기 담은 눈빛에도 녹아내릴
가까운 햇살이 두려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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