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은 자동차가 다닐 정도로 넓다.
공연히 미리 걱정을 했다 싶을 정도로 순한 길이 이어지고.
눈은 여전히 바쁘다.
수도권에서 못 보던 어떤 꽃들이 반겨 줄까?
한동안 너른 길이 이어지더니 길이 좁아지는가 싶자 약간의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그러더니만 그야말로 천상의 화원이 펼쳐진다.
여기는 야생화를 보호하기 위해 데크도 만들어져 있다.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린다.
이 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온 보람이 있네.
사방을 둘러보며 이건 기린초 종류, 이건 노루오줌 하면서 사진을 찍는데 여기에만 있다는 큰제비고깔에 대해 해설사가 알려 준다.
진한 보랏빛으로 작은 꽃송이들이 줄기를 따라 주루룩 붙어 있는 꽃이다.
이런 꽃도 있었군.
이름이 길어서 잊지 않으려 입 안에서 몇 번 되뇌어 본다.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기억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할지 모르니 다시 발길을 옮긴다.
길은 확연히 좁아졌다.
심지어 어느 곳에서는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몹시 조심스럽다.
친구는 이 길이 맞느냐고 몇번씩 확인을 한다.
이정표가 이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고 여기는 허가를 받아야 하는 구간이기 때문에 정해진 길 외에는 갈 수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나도 처음 와 보는 곳이기는 하지만 앞장서 키 높이로 조금은 험상궂게 자란 풀 사이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간다.
얼마쯤 걸었을까?
이번에는 오르막길이 나온다.
산이니 당연히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나오겠지만 날씨가 워낙 '찜통'이다 보니 살짝 걱정이 되기는 하네.
길은 좁지만 다행히 경사가 그리 심하지는 않다.
꽃 三昧境에 빠졌는지 앞 뒤로 서너 팀만 보일 뿐 한적하다.
오르락내리락 걷다 보니 어라, 약수터가 보이네.
여기가 고목나무샘이라는 곳인가?
물이 떨어지는 곳에 항아리 뚜껑 같은 용기를 받쳐 놓은 모습이 재미있다.
물을 마셔도 되는지 확신이 없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사실 여기는 들머리나 도착지점에 매점이 없을 것 같아 간식이나 물을 넉넉히 준비하느라 배낭이 꽤 무겁다.
한여름이다 보니 물을 최소 1L 이상 준비해야 한다.
수시로 물을 마시지만 흐르는 땀만큼 보충이 되는지 모르겠네.
점심은 아무래도 조금 늦게 대덕산 정상 부근에서 먹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간식이라도 먹으려 하는데 길은 좁지 경사가 있지 비교적 날씬한 우리 두 몸을 부릴 마땅한 장소가 보이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공터가 나타날 때까지 타박타박 걷는다.
겨우 쓰러진 고목에 엉덩이를 걸치고 가져온 양갱을 먹으며 한숨 돌리고 있는데 가이드가 지나가면서 웃는다.
여기는 꽃이 많다 보니 곤충도 많다.
곤충들 윙윙거리는 소리와 새소리 등 자연의 소리만 산을 채우고 있다.
노란 바탕에 검정 무늬가 있는 나비, 검정에 흰 무늬가 있는 나비가 주로 눈에 띄네.
나비가 꽃에 앉은 모습을 찍으려 내가 살금살금 다가가면 언제 알았는지 나폴나폴 날아 꽁무니를 뺀다.
나비와 술래잡기를 하다가 매번 지고 결국 포기했다.
나비는 내가 싫은 모양이라면서.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이 부근에서는 유난히 이름표를 단 피나무가 눈에 많이 띈다.
피나무라...
이름은 들어서 익숙한데 피나무의 특징이 언뜻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
요즘에는 사실 전보다 식물에 관심이 덜 하고 도감도 잘 들여다보지 않는다.
스마트폰 어플로 찾아보고 돌아서서 금방 잊곤 하는데
아무래도 힘들여 찾아보고 눈여겨 살펴보는 것과는 다르겠지.
사진을 찍으며 오래된 피나무를 올려다보고는 다시 걸음을 옮긴다.
조금 지루하게 길이 이어질 무렵 정말 내 키 높이보다 큰 풀들로 덮인 길로 접어들었다.
노출된 피부가 손과 얼굴밖에 없지만 이 길에서는 날카로운 풀잎에 어딘가 베일 것 같은 생각에 몸을 움츠리게 된다.
반바지를 입고 온 사람들은 다리가 많이 긁히겠는걸.
스틱으로 헤쳐가며 걷지만 정말 무성한 계절을 즐기는 풀들의 전시장이다.
풀을 헤치며 가다가 가을이 오면 또다른 풍경이 우리를 맞아주겠구나 싶어진다.
황금빛으로 변한 풍경이 저절로 머리 속에 그려진다고나 할까.
키큰 풀과 한동안 씨름을 하고 나니 공터가 나타났다.
분주령(해발 1,080m)이다.
가이드가 힘든 사람들은 대덕산을 오르지 않고 분주령에서 바로 내려가도 된다고 했었지.
사람들이 이곳에서 쉬면서 점심을 먹고 있다.
이미 잠깐 쉬면서 간식을 먹은데다 사람들이 많아 우리는 바로 대덕산을 향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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