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가 완만해졌다.
이제 좀 늦었지만 점심 먹을 곳을 찾아야 한다.
고개를 돌려가며 마땅한 장소를 찾는데 먼저 자리를 잡았던 사람이 막 짐을 챙기네.
운좋게 길을 약간 벗어난 자리를 잡았다.
한숨을 돌리고 가져온 도시락을 펼쳐놓고 게눈 감추듯 밥을 먹는다.
밥을 먹고 커피로 입가심까지 하고 나니 눈앞이 훤하다.
배낭 정리를 하다가 고사목 그루터기를 보니 하얀게 보인다.
무언가 자세히 보니 버섯 종류이다.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귀한 꽃송이 버섯 아닌가 싶네.
개미도 꽃송이버섯을 좋아하는지 갈피갈피 개미가 까맣게 붙어 있다.
몸에 좋은 걸 아는 모양이지.
친구는 버섯을 채취하라 하는데 약간 미련이 남지만 이내 고개를 돌린다.
청옥산 연칠성령 부근에서 나무에 붙은 흰 버섯을 보았는데 그때는 무슨 버섯인지 몰랐다.
이상한 버섯이 있다고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비구니 스님이 "이렇게 귀한 버섯이 달려 있다니..." 하면서 조심스럽게 따서 배낭에 넣는 걸 보았다.
그런 다음 안성 칠장사 입구에서 꽃송이 버섯을 파는 걸 본 기억이 난다.
요즘은 재배가 가능한지 대형마트에서도 파는 게 보인다.
도감을 찾아보고 꽃송이 버섯에 대해 제대로 공부를 해 보아야겠군.
이제부터 룰루랄라 콧노래가 나올 만한 길이다.
길이 순해서 그런지 슬리퍼에 반바지 차림으로 오르는 사람도 여럿 보인다.
친구는 그런 모습이 눈에 거슬리는지 한 마디 한다.
그래도 산은 산인데...
고목들이 쓰러져 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깊은 숲답게 덩굴이 우거져 오지에 있다는 느낌도 들고.
지금은 이렇게 여유를 찾았지만 대덕산 정상 못미처 정신없이 헤맸던 생각을 하니 오늘같이 땀을 많이 흘리는 날에는 가져온 소금을 먹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늘 뒷북을 친다니까.
언제 힘들었냐 싶게 몸이 편해지자 친구는 시원한 빙수 타령을 한다.
경사도 거의 없는 평지 수준의 하산길이기는 하지만 하루 중 가장 더울 시간이기는 하다.
연신 땀을 닦게 되기는 하네.
그런데 빙수는 고사하고 아무래도 아이스바 하나 구경하기 어려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콧구멍만한 매점이라도 있으면 다행이지.
오후 2시 25분, 검룡소 탐방지원센터에 도착했다.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다가 시간이 넉넉하니 검룡소에 다녀오란다.
한강의 발원지로 알려진 검룡소는 사계절 내내 섭씨 9도의 지하수가 하루에 2000톤 가량 솟아난단다.
이렇게 솟은 물이 정선과 영월을 거쳐 양평 두물머리에서 북한강과 만나 서울을 거쳐 서해로 흘러가겠지.
儉龍은 용이 되지 못하고 물속에 사는 이무기를 말하고 沼는 바닥이 움푹 파여 항상 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를 말한다.
옛날에 서해에 살던 이무기가 용이 되려고 강줄기를 따라 거슬러 올라와 이곳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때 몸부림을 쳐 지금의 폭포가 생기고 바위에 긁힌 자국이 생겼다고 한다.
이무기가 근처에 물을 마시러 온 소를 잡아먹자 지역 주민들이 검룡소를 흙으로 메워 버렸다고 한다.
이것을 1986년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고 정비했단다.
지금도 매년 8월이면 여기에서 한강발원제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검룡소에 올라 물줄기를 바라본다.
沼의 바닥이 검푸른 빛을 띠고 잘 들여다보이지 않으니 신비로운 느낌이 들기는 한다.
우리나라의 상징 같은 514km 한강의 시작이 이곳부터라고 하니 성스럽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검룡소에 단군성전, 그리고 낙동강 발원지까지 태백산은 여러 가지로 우리에게 의미가 다른 산 아닌가 싶다.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은 그야말로 탄탄대로이다.
길 옆으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니 손이라도 담그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네.
잠깐 실례를 할까 하는데 친구의 강력한 만류로 마음을 접었다.
여름 산행은 사실 계곡에서 濯足하는 맛인데 섭섭하군.
주차장에 얼추 도착했다.
길 옆으로 조그만 건물이 보이네.
다행히 매점이 있다고 했더니만 문을 닫았다.
코로나 시대에 주말에만 몇 명씩 찾는 사람들을 위해 문을 열기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친구가 몹시 실망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시간이 이르면 서울에 가서 빙수 사 먹읍시다.
주차장 근처 수돗가에서 손을 씻고 나니 그나마 살 것 같다.
'푸닥푸닥' 수돗가에서 머리까지 감는 친구를 부러워하다 배낭 정리를 한다.
아직도 가이드가 정해준 출발시간까지는 1시간이나 남았다.
마스크를 쓰고 버스에 앉아 있기도 답답해 근처 공원으로 올라간다.
검룡소를 기념하는 공원인 듯한데 멋진 횃불 모양의 기념탑도 서 있다.
공원을 둘러보다 갑자기 가져온 과일 생각이 나서 공원 정자에 자리를 잡았다.
텁텁하기는 하지만 무공해 바람을 쐬며 천도복숭아를 먹는다.
천도복숭아를 먹으며 생각하니 과일도 오늘 태백산에 어울리는 것 같다.
오후 4시, 정확하게 버스는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고랭지 배추밭을 지나고, 검게 덮개를 쓴 인삼밭도 지나고 태백 시내로 접어든다.
태백시는 가로수로 자작나무를 심었네.
전에 몇 번 태백에 왔어도 무심코 지나쳐 몰랐던 사실이다.
흰 옷을 입은 순례자가 줄을 지어 걷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태백에 잘 어울리는 나무라는 생각이 드는군.
태백에 공해가 심하지 않으니 잘 자라겠지.
눈을 감는다.
눈 앞에 노랗고, 하얗고, 주황빛, 보랏빛을 띤 꽃들이 어른거린다.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한동안 금대봉과 대덕산의 야생화가 생각나리라.
다른 계절에 한번쯤 더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잠을 청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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