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 30분, 드디어 산행을 시작한다.
매일같이 섭씨 35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에 강원도 정선과 태백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다 해발고도가 높으니 시원하다고 했지.
최고기온이 섭씨 30도가 안 된다고 했다.
약간 흐린 날씨가 도리어 걷기에 편하지 않을까 생각을 하면서 손목에 예약을 표시하는 밴드를 하나씩 차고 걸음을 옮긴다.
길은 초반에 평탄하다.
물론 산행을 시작할 때 시원하다고 느낀 건 오르막길에 접어들어 땀이 줄줄 흐르면서 금세 사라졌지만.
그래도 주변에 피어 있는 야생화를 보는 재미에 빠져 정신이 없다.
곰배령과 함께 '천상의 화원'이라는 말이 손색이 없구만.
금대봉 갈림길에서 금대봉까지 500m라고 했지.
물론 산에서 500m는 평지와는 차원이 다르기는 하다.
더구나 오르막길이라면 더하겠지.
돌이 널브러진 오르막길을 헉헉대며 올라간다.
아무리 강원도 산골이어도 삼복더위에 산을 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네.
금대봉은 '검대'에서 유래되었는데 '신들이 사는 땅'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금대봉 옆에는 재미있게 은대봉도 있었다.
하나 더 있었다면 '동대봉'이 되었을까?
금대봉과 은대봉의 이름은 신라 선덕왕 때 지장율사가 함백산 북서쪽 사면에 정암사를 창건하면서 세운 금탑, 은탑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해진다.
금대봉은 또 이곳에서 금맥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
어찌 되었든 '금대봉'이라는 이름에서는 귀하고 신성한 느낌이 물씬 풍긴다.
두문동재에서 금대봉까지 이어지는 1.2km의 능선을 싸리재, 또는 불바래기 능선이라고 한다.
불바래기란 불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과거 화전민들이 밭을 일구기 위해 산 아래에서 놓은 불을 이 능선에서 맞불을 놓아 진화한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불바래기 능선이란 이름에도 예전에 힘겹게 살던 사람들의 애환이 서려 있었네.
쏟아지는 땀을 주체하지 못해 오가는 사람에게 피해를 안 주려 중간중간 길 옆으로 비켜서서 땀을 닦는다.
흐르는 땀 때문에 고글을 쓰는 것조차 거추장스럽다.
숲 속을 주로 걸으니 오늘 고글은 생략하자.
친구는 내게 눈이 작아 보일 정도로 얼굴이 부었다고 한다.
그제도 잠을 제대로 못 잤는데 어제도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부담감에 긴장이 되어 숙면을 취할 수 없었으니 그런가 보다.
아침에 얼굴이 부었는지도 모르고 부리나케 준비물 챙겨 나오느라 바빴지.
얼굴에 조금 살이 찌기를 바랐는데 덕분에 얼굴이 조금 커졌겠는걸.
길 옆으로 모싯대 종류로 보이는 보랏빛 꽃이 조롱조롱 매달린 모습이 귀엽다.
관상용으로 키우는 비비추와는 다르겠지만 보랏빛과 흰빛을 띠는 비비추 종류도 보이네.
나리꽃도 날개를 펼친 것 같은 녀석,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든 녀석 등 다양하다.
정말 온갖 꽃들이 산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다.
계절마다 다른 꽃들을 선보일테니 계절이 바뀔 때마다 찾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 오는 날
초록 잎사귀만으로도
넉넉히 아름다운
비비추 꽃을 본다
이름 부르면
새소리가 날 것만 같은
비비추
장맛비에도
조금도 주눅 드는 법 없이
힘찬 나팔 불어대며
주저앉은 내 마음을 일으켜 세운다
백승훈의 < 비비추 > 전문
오전 10시 50분, 금대봉( 해발 1418m)에 도착했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사람들이 꽤 서성인다.
개중에는 간식을 먹는 사람, 사진을 찍는 사람, 물을 마시는 사람 등등 다양하다.
바로 분주령으로 가는 길은 막혔다고 가이드가 누차 이야기를 했으니 올라온 길로 도로 내려가야 한다.
잠깐 기다렸다 사진을 찍고 내리막길로 들어선다.
내리막길이라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도 있겠지만 500m는 사실 짧은 거리이다.
금세 다시 갈림길에서 고목나무샘을 향해 걷는다.
길 옆 야생화에 눈을 주면서 동자꽃, 둥근이질풀, 짚신나물 등등 아는 꽃들을 불러 준다.
꽃들도 자기 이름을 불러 주면서 아는 척을 하면 기분이 좋지 않을까?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걷고 있으니 가이드가 앞으로 더 많은 야생화를 만날 수 있다고 일러 준다.
대덕산까지 얼마나 걸리느냐고 하니 오래 걸린다고 하면서.
하기는 여기에서 대덕산까지 4.6km라고 되어 있으니 난이도가 낮다고 해도 대략 2시간은 걸리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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