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형!
감염병 때문에 집을 지키는 날이 이어집니다.
답답하기도 하고 새로 장만한 전기차 시험도 해 볼 겸 떠나기로 했습니다.
너무 먼 곳은 엄두가 안 나고 중간에 차에 전기를 충전해야 할 경우를 생각해 충청도 서해안을 생각했습니다.
가능하면 시원한 바람을 쐴 수 있는 곳으로 말이지요.
토요일 가볍게 짐을 챙겨 차에 올랐습니다.
전기차 통행료 할인용 하이패스 등록을 위해 두 번이나 한국도로공사에 섰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직접 도로공사를 방문하라고 하니 생각보다 번거롭군요.
돈을 보태주고, 전기세와 통행료를 할인해 준다는 이유로 전기차를 구입한 후에는 할 일이 자질구레하게 참 많습니다.
아직도 무언가 마무리가 되지 않았군요.
하지만 한 가지 했으니 마음 편하게 차를 달립니다.
이번 통행료부터 반값이니까요.
올해 말까지만 할인을 해 준다고 했으니 그때까지 열심히 혜택을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처럼 답답함을 참다 못해 나온 사람들인 모양입니다.
그래도 도로 상황이 정체가 아닌 서행인 것에 감사하면서 달립니다.
전기차는 힘이 약하다는 둥 말이 많았는데 잘 달리네요.
다행입니다.
행담도 휴게소를 지나칩니다.
좀 늦게 출발하기도 했으니 그냥 내처 태안으로 씽씽 달립니다.
태안에 팜카밀레 허브농원이 있다고 합니다.
그곳에 있는 빵집이 유명하다기에 내일 아침거리 준비를 위해 찾아갑니다.
점심도 그곳에서 해결하면 좋겠다 싶습니다.
휴일 오전임에도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과 연인들이 많군요.
4월 중순쯤이면 갖가지 꽃이 만발한 허브농원 산책도 매력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정원 한 켠에 수선화와 진달래만 피어 있네요.
예쁘게 꾸며진 정원을 둘러보다 몽산포 제빵소에 들어갑니다.
구수한 빵 냄새와 커피향이 발길을 붙잡습니다.
식사를 할 수 없다기에 빵 몇 가지 사서 발길을 돌립니다.
주변은 평범한 논밭인데 팜카밀레 허브농원이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군요.
위치가 그리 좋지 않아도 요즈음은 맛이나 분위기가 빼어나면 사람들이 구석구석 찾아다니니까요.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바로 안면도로 향합니다.
여러 번 다녀갔어도 안면도가 인공섬이라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우선 안면암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물이 빠진 후 바다 가운데 있는 浮上塔을 볼 수 있는 곳이지요.
안면암에는 크고 작은 탑이나 불상도 많고요.
차분하게 합장을 하기보다는 둘러보기에 좋은 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을 찍으며 여기저기 살펴보다가 거센 바람에 지쳐 차에서 겉옷을 꺼내 바꿔 입습니다.
바람이 이렇게 심할 줄 몰랐습니다.
머리카락을 제멋대로 흩뜨려놓아 미친 사람처럼 만들었습니다.
모자를 써 보아야 날아갈 것이 뻔하네요.
절을 둘러보고 부상탑을 향해서 바닷길을 걸어갑니다.
날씨가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데도 오가는 사람들이 꽤 있군요.
빨갛게 벙그러진 동백꽃과 갓 핀 벚꽃이 이 바람을 견디지 못 하고 금세 스러질까 안타깝습니다.
섬에 핀 꽃은 그런 일을 늘 각오하고 있어야 하겠지만요.
조그만 두 섬 사이에 위치한 부상탑은 일단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썰물시에는 갯벌에 드러나고 밀물시에는 물에 뜨는 부상탑.
태안 기름 유출 사고 이후 세워진 탑인 듯 싶은데 안면암 불자들이 힘을 모아 직접 설계하고 만들었다던가요.
安眠島가 글자 그대로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섬'이 되기를 바라는 서원을 세우고 만들었다네요.
그런 부상탑 앞에서 저도 마음을 모아 봅니다.
지금 전 세계가 감염병으로 인해 겪는 어려움이 조속히 해결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요.
구석구석에 사람들이 쌓아 놓은 돌탑들이 보입니다.
밀물이 몰려오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질 탑일 겁니다.
그런데 앞에 가는 가족들도 돌탑을 하나 쌓는군요.
어린 아이가 더 정성을 들여 돌을 하나씩 올립니다.
무너질 때 무너지더라도 마음에 소원 하나 새기며 돌 하나 얹는 마음이 소중하겠지요.
작은 섬을 한 바퀴 돌아보니 바위들이 제각각 재미있는 모양을 하고 있군요.
조그만 굴도 있고, 동물 옆 모습을 한 바위도 있고, 해골 같이 보이는 바위도 있고...
자연은 참으로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바람과 싸우다시피 하며 浮上橋를 건넙니다.
바람 때문에 똑바로 서서 걷기도 힘이 드는군요.
바람 쐬러 나와서 바람 한번 제대로 맞는 셈입니다.
강하게 때론 약하게
함부로 부는 바람인 줄 알아도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바람은 용케 찾아간다
바람길은 사통팔달이다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가는데
바람은 바람길을 간다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천상병의 < 바람에게도 길이 있다 >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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