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오클랜드 여행 - 코만스 트레킹 (12)

솔뫼들 2020. 3. 10.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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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형!


 오늘은 방사장님 안내로 오클랜드 근교 트레킹을 하기로 한 날입니다.

호텔 뷔페에서 실컷 아침을 먹고 산행 준비를 합니다.

여기는 햇볕이 강합니다.

자외선 차단에 신경을 써야 하지요.

방사장님도 어제 가능하면 긴팔 셔츠를 입는 것이 좋다고 조언을 하시더군요.


 오전 9시 40분경 방사장님이 교회에서 빌려 왔다는 승합차에 일행이 모두 타고 코만스 트랙 들머리로 향합니다.

들머리까지는 1시간 가량 가야 한다더군요.

점심은 가다가 샌드위치를 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도심을 벗어나 가는 길에 상점이 없군요.

내비가 지름길을 가르쳐주는 바람에 평소 들르던 카페를 지나친 것 같다고 하십니다.

그럼 배낭에 있는 것 모두 꺼내 먹고 저녁을 조금 일찍 먹기로 하지요.


 배낭에는 그제 마운트 쿡에서 못 먹은 컵라면이 3개 있습니다.

한 팀당 하나였지요.

그러니 보온병에 뜨거운 물은 당연히 있고요.

방사장님께서 초콜릿과 과일을 준비해 오셨다네요.

감사히 먹겠습니다.


 가는 동안 차 안에서 온갖 대화가 오갑니다.

퀸즈타운에서 '힐러리'라는 상점을 보았다는 연부장님 말씀,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힐러리 클린턴이 아웃도어 브랜드를 출시했는지 알았던 모양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방사장님께서 뉴질랜드의 영웅이라는 에드먼드 힐러리 이야기를 하시네요.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해발 8848m)를 공식적으로 初登한 분이지요.

그 후 영국에서 기사 작위를 받았고 네팔의 셰르파들을 위해 학교를 세우는 등 많은 일을 해서 존경을 받았던 분입니다.

몇 년 전에 세상을 뜬 것으로 기억합니다.


 

 산 관련된 책을 찾아 읽다 보니 히말라야와 관련된 책도 여러 권 읽었습니다.

에드먼드 힐러리와 함께 초등한 셰르파가 텐징 노르가이이지요.

사실 텐징 노르가이가 없었다면 에드먼드 힐러리의 역사적인 등반도 없었을지 모릅니다.

그런 면에서 서로에게 그들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지요.

그 사건으로 유명해져서 돈을 많이 번 텐징 노르가이 역시 셰르파들의 권익을 위해 많은 일을 합니다.

텐징 노르가이는 셰르파족이 아니지만 그 후로 히말라야 등반시 동반자가 되는 현지 가이드와 포터들에게 '셰르파'라는 말이 붙었다지요.

고유명사가 일반명사가 된 셈입니다.


 에드먼드 힐러리 전에 에베레스트 정상 등반에 도전한 사람이 있었지요.

영국 산악인 조지 맬러리입니다.

산에 왜 가느냐는 질문에

'산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라는 다소 禪問答 같은 대답을 한 것으로 유명한데요.

에베레스트 등반 도중 실종되었다가 최근에 시신을 찾았습니다.

그가 과연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았는지에 대해서는 증거가 없으니 왈가왈부 말이 많지만  시신의 자세로 볼 때는 정상에 다녀온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산에 열심히 다니는 사람이다 보니 신문이든 인터넷이든 이런 기사는 아무래도 관심을 갖고 찾아보게 되네요.



 오전 10시 40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행 준비를 합니다.

이 트랙 이름은 Comans Track.

여기 역시 거리와 시간을 조절해 트레킹을 할 수 있습니다.

방사장님 설명에 의하면 바다와 산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랍니다.

기대가 되네요.


 조금 걸어가자 들어가는 입구가 나오는데 신발 바닥을 청소하는 기계가 있군요.

공항에서 신발 검사하던 것이 생각납니다.

철저하군요.

자연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모두들 숙제 검사 받듯 등산화 바닥을 방사장님께 내밉니다.

본받아야 할 점입니다.



 차례로 줄을 서서 올라갑니다.

왼편으로 금세 바다가 나타납니다.

바다를 처음 보기라도 한 것처럼 '와아!' 탄성을 지릅니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풍경이 여수 금오도 비렁길과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거침없이 밀려오는 흰 파도와 깎아지른 절벽, 거기에 대비되는 푸른 숲.

걷는 것만으로 무언가 충만해지는 느낌입니다.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숲길을 걸어갑니다.

가다 보니 길 양쪽으로 시커먼 나무들이 보이네요.

나무들이 죽었나 봅니다.

길 양쪽으로 늘어선 죽은 나무들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죽게 마련이지만 고목도 아닌데 무슨 일일까요?

게다가 뉴질랜드처럼 외부에서 오는 바이러스나 세균에 대해 지나치리 만큼 엄격한 나라에서 말이지요.

기후 변화에 의한 것일지도 모르지만요.

우리가 밀포드 트레킹을 못하게 된 것처럼요.



 얼마 오르지 않았는데 방사장님이 힘들어 하시네요.

전에 트레킹을 즐기다가 사모님께서 관절이 안 좋다 하는 바람에 한동안 산에 못 다니셨답니다.

갑자기 산길을 걷다 보니 무리를 하신 것이지요.

친구는 직업의식이 발동해 살짝 긴장을 합니다.

간혹 산에서 심장마비가 오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기우일 거라고 하면서 친구는 방사장님과 뒤에 처지고 다른 일행은 먼저 잘 나 있는 길을 따라 걷습니다.


 헉!

길이 좋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줄에 매달려 가야 하는 곳도 나오네요.

룰루랄라 걷다가 갑자기 번쩍 정신이 듭니다.

산은 항상 방심한 우리를 놀래줄 준비를 하고 있나 봅니다.



 가다가 방사장님과 친구가 안 와 잠시 쉬기로 합니다.

많이 처졌나 걱정을 하던 차에 친구 모습이 보이네요.

다행입니다.

늦어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는 방사장님께 도리어 우리가 죄송하지요.

갑작스럽게 일상을 침범한 셈이 되니까요.


 간식도 먹고 물도 마시면서 쉬다가 다시 걸음을 옮깁니다.

비슷비슷한 길이 이어집니다.

S자로 구부러지는 길목에서 한국인들을 만났습다.

오클랜드 교민들인데 모임을 만들어 트레킹을 즐기는 분들이네요.

연세가 꽤 있어 보이던데 트레킹을 늘 하시는 분들이라면 건강 상태가 아주 좋은 분들이겠지요.

물론 지인들을 만나 서로 소식을 듣는 친교 모임 성격도 있을 테고요.

그분들도 우리를 만나 아주 반가워 하시더군요.

시내에서 관광객 만난 것과는 또 다르겠지요.



 가는 길에 샛길이 나옵니다.

바다쪽으로 연결이 되어 있네요.

방사장님 말씀에 의하면 정해진 길은 아닌데 누군가 다니다 보니 길이 나 있답니다.

그쪽으로 살짝 굴이 보입니다.

꽤 위험하다고 하네요.

그러면서 본인은 권하고 싶지 않은데 어제 저녁 모임에서 만난 분들이 거기를 안 다녀오면 섭섭하지 않겠느냐고 했다면서 원한다면 돌아오는 길에 다녀오라 하십니다.

당연히 호기심이 발동하지요.

저요, 저요.

저는 손을 들고 가겠다고 합니다.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잠자는 지구의 고요한 숨소리를 듣고 싶을 때
지구 위를 걸어가는 새들의 작은 발소리를 듣고 싶을 때
새들과 함께 수평선 위로 걸어가고 싶을 때
친구를 위해 내 목숨을 버리지 못했을 때
서럽게 우는 어머니를 껴안고 함께 울었을 때
모내기가 끝난 무논의 저수지 둑 위에서
자살한 어머니의 고무신 한 짝을 발견했을 때
바다에 뜬 보름달을 향해 촛불을 켜놓고 하염없이
두 손 모아 절을 하고 싶을 때
바닷가 기슭으로만 기슭으로만 끝없이 달려가고 싶을 때
누구나 자기만의 바닷가가 하나씩 있으면 좋다
자기만의 바닷가로 달려가 쓰러지는 게 좋다


   정호승의 < 바닷가에 대하여 > 전문


 바다쪽으로 전망대를 향해 가는 길에 원주민 형상이 보입니다.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텐데 자세가 재미있군요.

양 손을 배 앞에서 맞잡고 무릎은 반쯤 구부렸군요.

친구가 한번 해 보라고 해서 따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번갈아 가면서 흉내를 내다가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한 바퀴 돌고 올라와 전망대 근처에서 점심을 먹자고  했습니다.

철썩이는 파도소리에 시원한 바람, 툭 트인 전망, 좋은 사람들과의 대화...

모든 것이 마음에 듭니다.

아하! 먹을 것이 좀 부족했나요?

컵라면 3개를 가지고 어떻게 나눌까 왈가왈부 했으니까요. 후후


 다시 짐을 챙겨 일어섭니다.

조금 올랐나 싶은데 정상 같은 곳이 나타납니다.

무슨 안내문이 있네요.

2차대전과 관련된 내용인가 봅니다.

꼬부랑 글씨를 볼 일도 별로 없거니와 이제 노안 때문에 피곤해 안내문 읽는 것을 포기합니다.


 여기는 차를 가지고도 올라올 수 있는 곳이군요.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가면 가까운 거리에서 멋진 전망을 즐길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