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섬노래길에서 ; 남해 바래길 4코스 (1)

솔뫼들 2016. 9. 5.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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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8시 남부터미널에서 남해행 버스에 몸을 싣고 눈을 감는다.

이번에는 바래길을 마무리할 수 있겠지.

바래길을 걷기 위해 남해에 네 번째로 내려가는 길이다.

남해에 도착한 후 터미널 2층 마트에서 필요한 것을 사고 제과점에서 구입한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운다.

드문드문 있는 버스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

 

오전 1시 10분 상주행 버스에 올라 송남이라는 정류장에서 내렸다.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일기예보에 비가 온다고는 했지만 한동안 일기예보가 맞지 않아 이번에도 안 맞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들어맞는군.

빗줄기가 굵어졌다 가늘어졌다 해서 옷을 방수 재킷으로 갈아입고 배낭 덮개도 씌운다.

여름이라고는 하지만 비를 오래 맞으면 안 좋은데...

 

 

 오후 2시 망산을 향해서 출발했다.

조금 가는데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길이 잘못 되었단다.

이정표 방향을 보고 걸었는데 엉뚱한 길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두발로'앱을 통해 빨리 알아챘으니 망정이지...

처음부터 시행착오가 있기는 했지만 준비운동 제대로 했네.

 

 다시 되돌아가 펜션을 옆에 끼고 산길로 오른다.

계속 추적추적 내리는 비, 몸에서는 열이 나서 덥지만 옷을 벗을 수는 없고.

땀인지 빗물인지 흐르는 걸 닦을 엄두도 못 내고 걷는데만 열중한다.

 

 

 무성한 풀 사이에서도 유독 칡덩굴이 사방으로 뻗어 있다.

올여름 날씨가 더운게 칡의 번식에 한 몫 했다는 보도를 본 것 같다.

정말 모든 것을 감아버리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칡덩굴이 한발한발 달려든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렇게 살도록 만들어진 칡이 무슨 죄가 있을까마는 사람들은 자기네 입장에서 늘 그렇게 재단을 한다.

 

 한동안 오르막이 이어진다.

해발고도가 높은 산은 아니지만 바닷가에서 시작하니 높게 느껴질 수밖에 없겠지.

계단길도 나온다.

풀숲과 미끄러운 경사로보다 이럴 때는 차라리 계단길이 낫다.

 

 

 겨우 정상(해발 286m)에 도착했다.

표지석은 없지만 전망대가 있군.

날씨 탓에 전망이 안 좋아 바로 내리막길로 들어선다.

급경사가 이어진다.

잔뜩 긴장을 하고 조심스럽게 발을 옮긴다.

내리막길에서는 금세 몸이 썰렁해진다.

하기는 기온이 섭씨 20도인데 비가 내리는데다 바람까지 강하게 부니 몸이 적응을 하기 힘들어한다.

이렇게 몸 상태가 왔다갔다 하면 안 되는데 걱정이 되네.

 

 얼마나 내려왔을까?

바로 앞에 산은 안 보이는데 이정표상에는 남망산으로 가라 하네.

다시 올라가라는 말이겠지.

가다가 빨간 단풍잎을 만났다.

너는 왜 이렇게 일찍 할 일을 접었니?

유난히 더워서 진을 빼던 여름에 너도 지친 거니?

혼자 중얼거리며 걷는다.

 

 

 다 내려왔나 싶은데 군부대와 헬기장이 나온다.

당연히 군부대로 갈 일은 없으니 직진이다.

그런데 남망산은 어디야?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래도 바닷가까지 다 내려갔다 다시 올라가는 모양이네.

 

 빗속을 그저 거리만 줄이며 걷는다.

길을 따라 내려가니 彌助港이 나온다.

친구는 비도 오는데 남망산은 건너뛰자고 한다.

어차피 원점회귀라 한 바퀴 돌아내려오는 코스라고.

평소 같으면 코스대로 걷자고 했으련만

날씨도 안 좋고 바래길은 어차피 미완성이라 지난번에도 엉뚱한 길에서 헤맨 적이 있으니 그다지 미련이 없다.

 

 

 선뜻 친구의 뜻에 동의하고 설리 방향으로 걷는다.

비 때문에 한번도 못 쉬었다.

어디 앉아서 물이라도 한 모금 마시며 쉬고 싶다.

쉴 만한 곳을 찾다가 들어가지 말라고 줄을 띄워 놓은 곳으로 들어가 비를 그으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친구가 챙겨온 캔맥주 하나를 나누어 마시며 숨을 돌린다.

 

 그칠 듯하던 비는 계속 내리고 갈 길은 멀다.

몸이 힘든건 아닌데 비에 축축 처지는 느낌이 드네.

그래도 일어서야지.

배낭을 메고 이제는 설리를 향해 걷는다.

 

 

 한동안 포장도로를 따라 걷는다.

금세 설리를 지난다.

에너지를 보충해서 그런지 아니면 비 속에 보이는 것이 별로 없어 그런지 빨리 걷게 된다.

낡은 등산화 속으로는 물이 들어가 자꾸 신경이 쓰인다.

이러니 컨디션이 안 좋아지지.

내일도 만약 비가 오면 어떻게 한다?

덕유산 종주할 때, 알프스 TMB 걸을 때 비를 맞은 생각이 떠올라 머리가 지끈거린다.

제대로 말리지 못한 등산화를 신고 걸을 생각을 하면 걱정이 앞서는군.

 

 이 등산화는 해파랑길에서부터 무려 1000km 가까이 함께 한 친구인데

이번 남해 바래길을 마무리하면 비록 정이 들었지만 작별을 해야겠다 생각하던 신발이다.

곳곳이 해어져 정말 오래 신었다 싶은 생각이 들기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