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자마자 날씨를 확인한다.
방 안까지 들어오는 햇살이 반가워 얼른 커튼을 젖힌다.
산뜻한 날씨와 눈에 들어오는 상쾌한 바닷가 풍경이 얼마나 고맙던지...
일기예보가 안 맞아 다행스럽게 여겨지는 날이다.
오전 8시 30분 숙소를 나와 상주 은모래 해변을 돌아본다.
깔끔하고 시원스럽게 펼쳐진 모래사장을 맨발로 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 산책을 즐기는 연인이 발가락을 간질일 것 같은 모래사장을 걷고 있다.
가끔씩 몰려오는 파도와 장난치며 걷는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버스를 타러 이동한다.
버스를 타고 川下에서 내려 오전 9시 8분 걷기 시작했다.
어제 버스를 기다렸던 곳에서 위로 올라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파란 하늘과 드문드문 떠 있는 흰구름이 무척이나 기분을 들뜨게 만든다.
어제 내린 비가 오염된 공기를 깨끗이 씻어가 버렸겠지.
서정주 시인의 '푸르른 날'이라는 시가 떠오르는 날이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고 했던.
널찍한 시멘트 도로를 따라 걷는다.
길 옆의 누런 호박이 계절을 말해주는 듯하다.
보기만 해도 넉넉한 느낌이 드는 풍경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차량이 통제되는 임도로 들어섰다.
비포장도로라 그나마 나은데 비슷비슷한 길이 빙빙 돌아가며 이어진다.
지루한 길이다.
오르막길이라 속도는 나지 않고 땀이 뚝뚝 떨어진다.
그래도 바람이 서늘해 금방 식기는 하네.
가을이라 가을 바람 솔솔 불어오니
푸른 잎은 붉은 치마 갈아 입고서
남쪽 나라 찾아가는 제비 불러 모아
봄이 오면 다시 오라 부탁하누나
가을이라 가을 바람 다시 불어오니
밭에 익은 곡식들은 금빛 같구나
추운 겨울 지낼 적에 우리 먹이려고
하느님이 내려주신 생명의 양식
백남석 시, 현제명 곡 < 가을 >
가다가 친구를 기다려 물 한 모금 마시면서 쉰다.
멀리 암릉이 이어진 산이 보이는데 금산 아닐까?
거기 중턱에 암자가 하나 보이는데 그게 바로 보리암이고.
남해 바래길을 걷기 위해 내려와서 두 번이나 찾았는데
그때마다 비바람과 안개로 인해 멋진 조망을 즐기지 못해 아쉬움이 컸지.
다시 한번 도전할까 싶다가 보리암 부처님이 나를 거부하시나 싶고,
두 번이나 안개 속을 헤매던 기억에 그만 마음을 접는다.
다시 배낭을 멘다.
지칠 때쯤 멀리 흰 건물이 언뜻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전망대이다.
남해 편백자연휴양림에서 산책 삼아 올라올 수 있는 곳이다.
근처에서 여기가 가장 높으니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군.
휴!
한숨을 쉬고 여유를 부려 본다.
전망대 주변으로 빨갛게 핀 배롱나무 꽃이 파란 바다와 숲을 배경으로 대비되어 무척이나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이호우 시인은 살구꽃 핀 마을이 어디나 고향 같다고 했던가.
나는 100일 동안 핀다고 해서 목백일홍이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배롱나무 꽃이 핀 곳이 어디나 고향 같다.
전망대에 올라 바다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다.
내가 올라온 길이 보이고 발 아래 바다와 섬이 아득하다.
손에 잡힐 듯한 근사한 풍광에 반해 한동안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힘들게 걷다가 만나는 이런 풍경들이 피로를 말끔히 풀어준다고나 할까.
혹자는 사진을 보고는 풍경 좋은 데만 골라다닌 줄 알지만 그 풍경을 만나기 위해 발품을 판 것은 기억을 안 하지.
이 풍경을 만나기 위해 꼬박 1시간 30분 오르막길에서 무거운 배낭을 메고 씨름을 했는데 말이다.
이제 내려가는 길이다.
휴양림으로 이어지는 길이 올라올 때와 반대로 구불구불 내려간다.
그리 오래 걷지 않았는데 코스가 단조로워 그런지 오래 걸은 느낌이 든다.
좀 이르기는 하지만 휴양림 데크에서 점심을 해 먹는다.
머리 위로 피톤치드가 많이 분비된다는 편백나무를 이고 계곡 물소리를 친구 삼아 먹는 점심은 언제 힘들었나 싶게 만든다.
점심을 먹고 정리를 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휴양림 직원이 밤에 춥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우리는 야영을 하지 않았는데 데크에서 점심을 먹는 걸 보고 그렇게 생각을 한 모양이다.
아무래도 나이가 있으니 그런 질문을 한 것이겠지.
또 갑자기 기온이 내려갔으니 침낭이 있다 해도 산중이라 추웠을 수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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