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앵강다숲길에서 ; 남해 바래길 2코스 (3)

솔뫼들 2016. 5. 23.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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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 주인의 배웅을 받으며 다시 길로 나선다.

남해 바래길 이정표를 따라 내려가니 저쪽에 우리 같은 도보 여행자가 보인다.

남해 바래길에서 처음 만난 것 같다.

어디선가 이정표를 놓치고는 차도를 따라 왔단다.

길도 제대로 안 만들어 놓고 홍보를 했다고 불평을 했다나.

 

 잠깐 서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먼저 길을 따라 바닷가로 내려섰다.

이제 화계를 거쳐 원천까지 가면 된다.

숙소는 어디든 찾을 수 있는데 또 먹을 만한 데가 있을까 모르겠다.

저녁이 가까워지면 일단 그런 걱정을 하게 된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니까,.

더군다나 종일 걷고 먹는 것마저 부실하면 다음 날 일정을 어떻게 소화하나?

 

 

걷는 길 한쪽으로 마을 사람들이 멸치를 말리는 모습이 보인다.

통영도 그렇지만 남해도 멸치가 특산물이었지.

어떤 멸치는 정말 손가락보다 훨씬 굵어서 멸치 맞나 싶기도 하다.

도보여행자가 아니라면 질 좋은 멸치를 구입해 가면 좋으련만 늘 짐 때문에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하게 된다.

아쉽기는 하지.

 

이곳 역시 바닷가에 숲이 많다.

늘 그렇지만 숲이 있는 마을은 푸근해 보이지.

비록 보도블록 사이에 낀 소나무가 안쓰럽기는 하지만 소나무가 터널처럼 늘어선 길을 걷노라니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바다의 푸른색과 숲의 푸른색이 만나 이루는 조화라고나 할까.

새삼스럽게 이 길 이름이 앵강다숲길임을 생각하게 된다.

 

 

커피 마시면서 충전을 해서 그런지 금세 화계를 지났다.

이제는 원천까지 가는 길이다.

계속 바다를 오른편에 끼고 걷는 길인데 가다 보니 조개를 캐는 아낙이 보인다.

오는 도중에 바지락을 양식하고 있으니 외부인은 갯벌에 출입하지 말라는 안내문을 보았는데

바지락을 캐고 있는 것일까?

허리를 굽히고 호미질을 하는 나이 지긋한 아낙네의 모습이 느른해 보인다.

 

 

 

오후 4시 55분 미국마을에서 1시간쯤 걸려 원천에 도착했다.

안내지도상에 벽련마을까지는 아직도 점선으로 되어 있는 걸 보니 길이 미처 만들어지지 않은 모양인데

여기도 하루 묵을 만한 지역은 아닌 것 같다.

아직 해가 있으니 차도를 따라 걷더라도 벽련마을까지 가기로 했다.

평지이니 3.5km라고 하더라도 걸을 만하겠지.

 

차도를 따라 걷는다.

차가 자주 다니지 않으니 그나마 걷기에 그리 부담스럽지는 않다.

그리고 아직 길이 조성되지 않은 곳을 걸으면서 만약 길을 낸다면 어느 곳으로 갈까 생각해 보는 재미도 있다.

바다쪽 길이 이어지기 어려워서 아직 개통이 되지 않은 것 같다.

가능하면 차도를 피해야 하니 그러면 산길로 가게 된다는 말인데...

 

길 옆으로 벌써 등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늘어졌고 꽃을 찾은 벌들이 잉잉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올 봄 기온이 유난히 높더니 모든 꽃들이 서둘러 피는구만.

녹색 물결이 일렁이는 저것은 무엇이지?

보리 같기도 하고 밀 같기도 하고...

그런데 몽당연필처럼 짧으니 이상하기도 하지.

내가 모르는 다른 곡식인가?

 

 

 거리가 그리 멀지도 않고 약간의 경사가 있기는 하지만 도로변을 걷는 것이다 보니

30분만에 벽련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길 옆에 서포 김만중 유배지를 알리는 입간판이 보인다.

앞바다에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섬이 보이더니만 거기가 노도인가 보다.

구운몽과 사씨 남정기의 작가 서포 김만중은 이곳에서 56세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노도 방문은 다음으로 미루고 벽련마을로 내려선다.

작은 마을에 숙소는 몇 개 있지만 여기도 하룻밤 머물 만한 곳은 아니네.

어디에서 남해읍내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느냐고 마을로 내려가는 길에 주민에게 물으니

다시 도로를 따라 올라가란다.

올라가서 도로를 따라 더 걸어가니 버스 정류장이 나온다.

여기 붙어 있는 버스 시간표만으로는 확실하게 알 수가 없어 또 버스를 운행하는 회사에 전화를 해 보니

그리 오랜 시간 기다리지 않아도 버스가 올 것 같다.

늘 예상보다 버스가 늦게 오기는 하지만 이제 그 정도는 익숙해졌지.

 

 

 40분쯤 기다려 버스에 오르니 몸과 마음에 긴장이 풀린다.

오늘도 용문사 다녀온 것까지 20km 넘게 걸었구나.

내일 비가 온다고 했지만 내일 걱정은 내일 하기로 하고 잠깐 눈을 감는다.

처음 만난 석방렴이며 제법 울창했던 숙호숲이며 눈앞에 아른거린다.

새로운 것을 만난다는 것은 늘 설레는 일이지.

다음 길에는 어떤 것들이 나를 기다릴까 생각을 하다가 버스에서 내렸다.

이제는 고향처럼 익숙해진 읍내에서 또 잘 곳을 찾아 발길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