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소매물도 등대길에서 (3)

솔뫼들 2016. 4. 2.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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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기다리는 곳에서 배낭을 메고 망태봉 방향으로 뒤돌아간다.

이번에는 망태봉을 거치지 않고 100m 짧다는 옆길로 가기로 했다.

아까는 조금 지쳐서 그랬을까 아니면 계단길을 오르느라 그랬을까?

멀게 느껴졌는데 생각보다 금세 갈림길이 나왔다.

 

 

이제 정말 여유를 부려도 되는군.

선착장으로 가는 갈림길 벤치에 앉아 동백꽃 사진도 찍고 멀리 가익도 전망도 즐긴다.

가익도는 등대길을 걷는 동안 쭉 보였는데 작은 섬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앙증맞아 계속 셔터를 누르게 만들었다.

 

가익도는 소매물도 앞바다에 떠 있는 섬인데 조수 간만의 차 때문에 5개로 보였다가 6개로 보였다가 하는 바람에

오륙도라고도 불린단다.

언뜻 보면 섬이 하얗게 보이는데 가마우지 배설물 때문이라고.

생각해 보니 오래 전 중국에 갔을 때 배를 타고 민물 가마우지가 물고기를 잡아오는 모습을 본 기억이 난다.

일본과 중국에서는 때로 어부들이 민물 가마우지를 길들여서 물고기를 잡아오게 했다는데

그 모습이 재미있어서 거기에서 더 나아가 쇼를 하는 곳이 생긴 것이겠지.

 

 

물을 마시고 쉬면서 우스갯소리를 한다.

섬마다 흑염소가 많았는데 이 섬에서는 흑염소를 한 마리도 못 봤다고.

그랬더니 친구가 뱀이 흑염소를 모두 잡아먹은 모양이란다.

독사가 출몰하는 지역이라는 안내문도 없었는데 독사는 그럼 흑염소를 다 잡아먹고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어서 사라졌나?

이 섬에만 독사 운운 하는 말이 없으니 문득 궁금증이 생긴다.

 

뱀을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란다고

말하는 사람들

 

사람들을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랐을

뱀, 바위, 나무, 하늘

 

지상 모든

생명들

무생명들

 

함민복의 < 소스라치다 > 전문

 

한참 쉬다가 배표를 사 놓고 주변을 둘러보자고 했다.

저구항에서 배가 들어왔는지 올라오는 사람들이 꽤 많이 보인다.

숨을 몰아쉬면서 얼마나 가면 되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조금만 가면 된다고 일러주면서 걷는다.

 

 마을길로 접어들었나 싶은 곳에 골목장터가 섰다.

온갖 해산물이 많은데 마음은 굴뚝 같지만 아직도 일정이 남았으니 섣불리 손을 댈 수가 없네그려.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될 겸 신선한 해산물을 사면 좋을텐데 눈만 바쁘다.

물건을 파는 분들에게 감태 요리법을 듣고 집에 있는 감태를 어떻게 해 먹을까 생각을 하면서 발걸음을 내딛는다.

감태를 구워 조선간장과 참기름을 넣고 조물조물 무쳐 먹어도 되고, 밥맛이 없을 때 매생이처럼 황태와 함께국을 끓여 후루룩 밥을 말아 먹어도 좋겠다.

 

 

폐가가 된 곳들도 눈에 많이 띈다.

여기 살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아니면 노인들끼리 살다가 세상을 뜨신 걸까?

한쪽 구석부터 허물어지고 있는 빈 집을 보며 내 마음도 덩달아 스산해진다.

 

배표를 산 후 목이 말라 캔맥주를 하나 앞에 놓고 바다를 내려다본다.

여러 가지 음료와 음식을 파는 곳인데 비교적 느슨해서 가져온 음식을 먹어도 된단다.

저녁이 늦어질테니 배낭에서 치즈와 견과류를 꺼내 먹으며 쉰다.

 

 그러면서 표를 팔던 청년에게 물으니 이곳 숙박비도 눈이 등잔만해지게 만든다.

2인실이 80,000원이란다.

전에 갔던 비진도와 같은 수준이네.

음식점에서 파는 메뉴도 그 밥에 그 나물이라 질렸고.

그러니 사람들이 가능하면 당일에 왔다 가려고 하겠지.

하루쯤 묵어도 좋으리라 생각했다가 그만 정나미가 떨어졌다.

다시 오고 싶은 섬을 만들려면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

 

 

선창가에 등대섬에 못 가면 소매물도를 반밖에 못 본 것이라는 현수막이 보인다.

궁금해서 나가 보니 등대섬을 한 바퀴 도는 배가 있는데 1인당 13,000원을 받는단다.

진작 알았으면 이용했을텐데 이제는 막배 시간이 다가와 아쉽네.

소매물도는 정말 예쁜 섬이라 다시 오고 싶은데

다음에 다시 온다면 물때가 안 맞아 등대섬에 못 갈 경우 배를 타고 한 바퀴 돌면 되겠구나.

 

오후 4시 20분 배가 들어온다.

이번에는 통영으로 나가기로 했다.

배에 올라 바닥이 따뜻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잠시 꿈나라를 왔다갔다 한다.

그러다가 얼마쯤 왔을까 밖으로 나가니 바로 앞에 통영국제음악당 건물이 다가온다.

지난 번에 이어 이번에 또 통영으로 발길을 하니 통영이 갑자기 친근하게 다가오는군.

마음까지 푸근해져서 통영 여객선 터미널에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