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매물도 해품길에서 (2)

솔뫼들 2016. 3. 29.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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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몸을 일으킨다.

작은 산인데도 길은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

마냥 들뜨지 말라고 그러는지 울근불근한 바윗길도 있고,

그러다가 다시 순한 양같은 길이 이어지고...

룰루랄라 콧노래라도 부르며 걷고 싶은 길이다.

 

 

 가다가 노랑 나비를 만났다.

올해 들어 처음 보는 나비이다.

아직 꽃이 별로 없으니 서둘러 나온 나비가 힘들지 않을까 공연히 안쓰러운 느낌이 든다.

팔랑팔랑 날아가는 나비를 눈으로 따라가 본다.

 

수평선 저 너머에서

노랑나비 한 쌍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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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날고 싶었을 나비는

눈부신 햇살을 타고

푸른 파도를 건너와서

내 가슴에 금빛 봄을 달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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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금빛으로 난 작은 나비가 되어

포르르 날아가 날개 접고 싶은 곳은

야윈 네 가슴에 피어있을 하얀 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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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란 꿈을 위해 오늘도

난 겨드랑이에 날개 다는 연습을 한다

 

목필균의 < 나비가 되는 꿈> 전문

 

 이번에는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그러면 저 멀리 보이는 장군봉은 바닥부터 다시 올라가야 한다는 말이네.

까마득해 보이지만 그것 또한 한 발자국씩 옮겨가다 보면 닿게 되겠지.

 

 

 내리막길 끝 삼거리에 도착했다.

앞서가던 부부가 벤치에 앉아 쉬고 있다.

오전 11시 40분 배를 타기 위해 바로 대항마을로 내려갈 예정이란다.

저구항에 차를 두고 왔다고 하면서.

 

부부와 헤어져 장군봉을 향해 걷는다.

가는 길 중간에 사람들 발길이 잦은 곳이 있어 올라가 보니 대항마을이 바로 발 아래 펼쳐져 있다.

산자락에 오롯이 안기듯 기대어 바다를 향해 있으니 편안해 보인다.

비록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속살은 바다와 싸우느라 해졌을지라도.

 

다행히 길은 된비알이 아니라 빙빙 돌아가며 이어져 있다.

거리는 조금 멀겠지만 숨을 헉헉거릴 일은 없네.

오전 10시 40분, 생각보다 빨리 장군봉에 도착했다.

그리 높아 보이더니만 겨우 해발 210m란다.

살짝 속은 느낌마저 든다.

 

 

봉우리의 높이와 크기에 비해 이름이 너무 묵직하다 싶었더니만

봉우리의 모습이 장군이 군마를 탄 형상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란다.

그래서 정상에 말과 사람의 형상을 만든 조각이 있구만.

봉우리와 썩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슬며시 웃음이 나기는 하네.

 

잠깐 사진을 찍고 조형물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친구가 빨리 가면 오전 11시 40분 배를 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소매물도 가서 여유를 부리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대항마을 선착장까지 2.5km란다.

마음이 바빠지는 순간이다.

 

 

 

친구가 뛰다시피 걷는다.

친구는 주로 뒤에서 천천히 오는데 마음만 먹으면 걸음이 빨라진다.

그럴 때면 내가 따라가기도 벅차지.

길이 편평해서 빨리 걷는데 문제될 건 없다.

가팔라 고꾸러질 것 같은 길만 나오지 않으면 크게 무리는 없으리라.

 

아무리 바빠도 볼 건 보아야지.

등대 전망대에서 잠시 멈춘다.

소매물도 등대섬이 가장 잘 보이는 위치라는데 오늘은 날씨 때문에 멋진 조망은 글렀다.

그저 뿌옇게 형체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이다.

아쉽기는 하지만 소매물도 가면 아무래도 가까우니 낫겠지 하면서 自慰해 본다.

 

내려가는 길은 잠깐씩 긴장하게 만들지만 전체적으로 무난하다.

대나무가 나오기도 하고, 두릅나무가 줄지어 있기도 하고,

동백나무 군락지도 있고, 후박나무 군락지도 있고...

 

 

거기에 슬픈 전설을 가진 '꼬돌개'라는 지명도 나온다.

꼬돌개는 초기 정착민들이 살았던 곳이라는데

오랜 흉년으로 모두 '꼬돌아졌다(고꾸러졌다)'는데서 생긴 이름이란다.

주변에 그들이 어렵게 살았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단다.

돌을 쌓아 층층이 만든 다랑논도 그 중 하나 아닐까 싶다.

 

깨끗한 펜션들과 나지막해 기어들어가게 생긴 집들이 대비되는 마을을 지난다.

저렇게 예쁘고 곱게 단장해 놓은 펜션들은 외지인들이 들어와 만든 것 아닐까.

돈 몇 푼에 땅을 팔고 떠난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생각이 천리만리 달린다.

보기에는 좋지만 혹시나 거기에 다른 사람들의 눈물이 어려 있는 건 아닌지...

 

 

오전 11시 10분 선착장에 도착했다.

부지런히 걷느라 등에 땀을 줄줄 흘렸다.

기록을 보니 5.7km 걷는데 2시간 걸렸네.

그래도 산길인데 정말 빨리 걸었군.

 

 승선장에 들어가니 삼거리에서 내려온 부부가 배를 기다리고 있다.

정신없이 걸어서 그런지 출출하다.

아직 배가 오려면 멀었으니 간식이라도 먹어야지.

친구가 배낭을 뒤져 빵을 꺼내곤 부부에게 권한다.

그러자 남정네가 하는 말이

아침 일찍 저구항에 와서 밥을 먹으려 했는데 문을 연 식당이 없어서 아침밥을 굶었단다.

그래서 부인이 더 불만이 많았는지도 모르겠네.

배가 고프니 기운도 없었을테고 걷기도 싫었을테지.

 

 빵을 먹고 나자 여유가 생긴다.

카메라를 들고 주변을 둘러본다.

매물도를 알리는 표어 '머물수록 매물도'라는 문구가 산뜻하고 인상적이다.

그래, 나도 한번 더 오고 싶은걸.

 

 

 선착장 근처 바닥에 말리는 미역을 보고 있는데 멀리서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배가 들어온다.

우리를 소매물도로 태우고 갈 여객선이다.

배를 타러 가면서 사람들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소매물도는 어떤 곳일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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