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에 다녀온 한려해상 바다백리길을 마무리하러 이번에는 거제로 떠난다.
매물도와 소매물도는 통영보다는 거제에서 뱃길이 더 가깝다고 한다.
그래서 고속버스를 이용해 거제로 내려갔는데 오후 2시 장사도행 뱃시간에 맞추기 위해 하는 수 없이
저구항까지 택시를 탔다.
지방 소도시에는 차를 안 가지고 가면 대중교통이 불편해 허비되는 시간이 많다.
이번 같은 경우는 섬을 다니니 차가 도리어 거추장스러운 애물단지가 되겠지만
시내 관광 같은 경우는 차가 없으면 불편한 점이 많지.
저구항에서 장사도행 표를 사 놓고 백반으로 점심을 먹었다.
평일임에도 섬 트레킹이나 장사도 관광을 위해 대형버스가 여러 대 들어오는 것이 보인다.
뱃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장사도 관련 자료를 읽어본다.
장사도는 6년 전인가 개장을 한 해상공원으로 자연을 최대한 살린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섬이 긴 뱀과 같이 생겨서 '長蛇島'라고도 하고, 섬의 형상이 누에를 닮아 '蠶絲島'라고도 하였으며
누에의 경상도 방언인 '늬비'를 써서 '늬비섬'이라고 옛부터 불리웠단다.
동백꽃이 질 무렵 동백터널 아래를 지나는 것이 일품관광이라던가.
한때는 주민 80여명이 살아서 학교도 있고 교회도 있었는데 지금은 개인 소유가 된 섬이란다.
오후 2시 배를 탔나 싶은데 바로 내리라는 안내방송이 들린다.
그리고 안내문을 따라 번호 순서대로 관람을 하라는 친절한 설명도 함께 곁들여서.
몇 년 전 거제도에 왔을 때 장사도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연일 풍랑 때문에 배가 안 떠서 포기했던 적이 있다.
이번에는 무사히 들어갈 수 있다니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
번호를 따라 길을 올라간다.
길가에 작은꽃들이 무리 지어 피어 있다.
다른 곳에서 핀 다음 옮긴 꽃들인가?
들꽃인데도 여기만 피어 있는 것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카메라를 들이댄다.
올라가다가 활짝 핀 천리향을 만났는데 이름값을 하는지 향기가 진짜 진하다.
일부러 코를 들이대지 않아도 향기가 느껴질 만큼.
누가 이름을 지었는지...
정해진 길을 따라 천천히 걷는다.
생각보다 꽃이 덜 피었다.
동백도 반쯤밖에 피지 않았고 수선화꽃도 볼 수가 없다.
시기를 잘못 선택한 것 같지만 어쩌랴.
곳곳에 볼거리를 위해 무지개다리도 만들어 놓았고, 눈길을 끄는 조각도 있다.
한때 장사도 분교가 있었다는 곳에는 온갖 분재가 채우고 있었다.
나무의 자연적인 성장을 비틀어 가꾸는 분재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여기 것은 그래도 나아 보인다.
장사도 분교를 돌아보고 다리를 건너간다.
발 아래 동백꽃이 활짝 핀 곳은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어 가까이 지나갈 수도 없을 지경이다.
우리는 그대로 그곳을 통과해 야외공연장까지 걷는다.
어디에선가 노랫소리가 들리더니 그곳에서는 공연이 한창이었다.
통영에서 들어온 팀인지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는 사람들도 보인다.
가끔씩은 그런 사람들이 부럽다.
그렇게 한바탕 놀고 나면 스트레스가 확 날아갈 것 같다.
야외공연장 바깥쪽에 설치된 얼굴 조각들이 눈길을 끈다.
가까이 가면 규모가 꽤 큰 조각인데 모두들 제각각인 표정과 모습을 하고 있다.
작가는 이 조각들을 많은 사람들이 보고 즐기고 느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적어 놓았다.
예술은 어렵다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친근하게 느끼고 공감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겠지.
2시간 후 배가 뜬다고 해서 시간이 부족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넉넉하다.
다시 안내도를 보면서 걸음을 옮긴다.
야외공연장을 지나 오르니 부엉이전망대가 나온다.
까만 부엉이 조형물이 있는 곳이다.
특이한 조형물 앞에서 사진을 찍고 거기에 쓰인 시도 읽어 본다.
재미있는 걸.
이번에는 야외갤러리로 향한다.
가족의 모습, 만선의 기쁨을 함께 하는 사람들, 낚시를 하는 사람 등등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우리를 맞는다.
중간에 핀 하얀 꽃을 유심히 살핀다.
미선나무 꽃 같다.
미선나무는 멸종위기종 아니던가.
갸냘픈 흰꽃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리고 살기가 그렇게 힘드냐고 물어본다.
음악에 맞추어 고개를 끄덕이다가 카페테리아로 발길을 옮긴다.
그러고 보니 배가 고프다.
배낭을 못 가지고 들어오는 바람에 간식거리도 없다.
무엇이 있나 살피다가 거제 특산품이라는 유자빵을 샀다.
새콤달콤한 맛에 내가 좋아하는 빵이라 얼른 손이 간다.
그러다가 발견한 작은 건물이 있다.
아하! 저기가 '작은교회'라고 되어 있는 곳이구나.
이름 그대로 정말 작다.
장사도 분교에 근무하던 선생님이 만든 개척교회란다.
지금은 주민이 없으니 여행차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간간이 이용하는 곳으로 쓰이고 있고.
도시에서 무조건 확장을 하려는 교회를 많이 보아서인지
이런 작은 교회를 보니 반갑고 신도가 아닌 나 같은 사람도 그 안에서 저절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고 싶어진다.
진정한 교회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시간을 보내기 위해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선착장으로 향한다.
바람이 차다.
선착장 한곳에 자리잡고 해산물을 파는 곳에 사람들이 몰려 있다.
지역 특산물을 사서 그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되는 것도 좋은 일이지.
나 같은 배낭여행자는 짐이 겁나 물건을 사는 것이 망설여지지만.
친구나 나나 장사도에서는 특별한 매력을 발견하지 못 했다.
늘 산야를 헤매고 다니니 자연 그대로의 매력이 더 좋게 느껴지는 것이리라.
그저 잘 가꾼 공원이라는 정도의 느낌만 가지고 장사도를 떠난다.
오후 4시 30분 배를 타고 다시 저구항으로 돌아왔다.
이제 숙소를 정해야 한다.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눈에 띄는 한 곳에 전화를 해서 여객선 터미널 앞에 짐을 풀었다.
생각보다 깔끔해서 기분이 좋다.
이제 저녁을 먹으러 나가야지.
아무래도 해산물을 며칠 내리 먹어야 할 것 같아 중국음식점을 찾았으나 폐업을 한 모양이다.
하는 수 없이 생선구이 전문점 '해미가'를 찾았다.
접시에 나온 6가지 전부 국산 생선이라는데 근해에서 잡은 싱싱한 생선이라 그런지 맛깔스럽다.
특히 뽈락과 같은 종류의 '열기'라는 생선은 이름도 처음 들어보고 먹는 것도 처음이다.
열심히 발라먹다가 험상궂은 가시에 찔리면서도 얌냠.
생선에 대해 설명을 하는 주인은 아주 시원스러운 여장부 스타일이다.
직접 모든 요리를 하는 것 같은데 거기에 대한 자부심도 가지고 있고.
식당에 켜 놓은 텔레비전 여행 프로그램에 태국 치앙마이가 나오니 거기에서 살고 싶었단다.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 꿈이라고 하면서.
그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듣는다.
내일 매물도와 소매물도에 들어갈 예정이라는 우리 이야기를 듣고
소매물도에 들어가면 어떤 식당을 이용하라고 소개를 해 주고는
혹시나 거기에서 하루 묵게 되면 불빛이 없는 곳에서 별빛을 감상하라는 이야기도 해 준다.
그래, 불빛 없는 바닷가에서 별빛의 속삭임에 몸을 맡기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되리라.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낭만적인 음식점 주인이 주는 허브차까지 얻어 마시고 이제 피곤한 몸을 뉘일 공간으로 들어갈 시간이다.
음식점에서 나오니 사방이 깜깜하다.
햐! 시골 같은 느낌이 드는걸.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가게를 찾으니 대부분의 상점이 초저녁인데도 불구하고 문을 닫았다.
하기는 오가는 사람들도 안 보이기는 하네.
겨우 문 닫은 상점 문을 두드려 원하는 것을 사고 숙소로 향한다.
새벽에 서울에서 출발해 거제에 내려와서 장사도에 들어갔다 나오기까지 오늘 꽤 긴 하루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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