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를 따라 걷는 길은 편안하다.
가는 길에는 읍천 벽화마을이 이어진다.
길 이름도 그래서 경주에서 '주상절리 펼친 그림 있는 몽돌길'이라고 붙였겠지.
과일이 가득한 그림, 매화에 새들이 날아든 벽화, 어선과 갈매기가 날아드는 벽화 등등
심심풀이 삼아 그림 구경을 하며 걸음을 옮긴다.
그렇게 걷다 보니 유명한 양남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이 나온다.
작년 이맘때 마음 먹고 걸었던 길이다.
부채 모양, 기둥이 서 있는 모양, 누워 있는 모양 등등 다양한 모양의 주상절리를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제주도 바닷가에 만들어진 주상절리를 처음 보고도 놀랐었는데 여기는 얼마나 특이하던지...
정말 자연의 섭리는 인간이 헤아릴 수가 없다.
한 발만 더 디디면 벼랑인데
바로 거기서 뿌리를
내리는 소나무가 있다 자세히 보면 소나무는
늘 바르르 떨고 있는데, 에멜무지 금방 새로 변해
날아가도 아무도 탓하지 않을 아슬함으로 잔뜩
발돋움한 채 바르르 떨고 있는데, 아직도 훌쩍
날아가지 않고 서 있는 저 나무가
기다린 것은무어냐
송재학의 < 소나무 > 전문
이곳은 많이 알려진 곳이라 그런지 관광 삼아 걷는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 중년 남녀가 대형버스로 경주 관광에 나섰다가 들러 가는 곳이겠지.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커다란 배낭을 메고 씩씩하게 걷는 내 모습이 사람들 이목을 끄나 보다.
사람들 눈길이 느껴진다.
걸음을 빨리 옮겼다.
빗방울이 자주 떨어진다.
그래도 버티는 데까지 버티기로 하고 내처 걷는다.
주상절리길이 끝나고 '동네카페'라는 소박한 이름을 가진 상가를 지난다.
아무 생각 없이 툭툭 스틱을 번갈아 짚으며 거기 맞추어 발길을 옮기는 길...
길은 바닷가를 지나자 자그마한 공원으로 이어진다.
최근에 만들어진 공원인지 공원 가로수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비실거린다.
깨끗하기는 한데 아직은 썰렁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공원을 만든 후 해파랑길 표시를 새로 해야 하는데 이전과 그대로여서 한참을 가다 보니 안내리본과 만난다.
두발로 앱은 수시로 업데이트가 가능하겠지만 지도는 바로바로 수정이 불가능하니 아무래도 착오가 있겠구나 싶기는 하다.
가다가 개천을 또 만났다.
하서천을 바로 건너는 다리가 있으면 좋으련만 다리는 아직 완공이 안 되었는지 안내 리본은 차도로 빙 돌아가란다.
가면서 멀리 건설중인 다리를 보니 한 사람이 오락가락 한다.
완공은 안 되었다지만 사람이 오갈 수 있는 것 아닌가?
혹시 그곳으로 갔다가 또 '알바'를 할까 싶어서 아픈 다리를 끌고 돌아가면서 공연히 구시렁거린다.
몇 번 잔머리를 굴리다가 제 꾀에 제가 넘어간 적이 있으므로.
길 옆으로 양남면 소재지인지 금융기관이며 마트가 보이고 어떤 목적인지 알 수가 없는데
피라미드처럼 생긴 물체(?) 보인다.
간이건물 같고 방갈로 같은데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해변도 아니라 방갈로가 위치할 만한 곳도 아닌데...
이러저리 살펴보다가 사진 한 장 찍고 돌아선다.
길은 계속 해변을 따라 이어진다.
이제 하루가 기우는 느낌이다.
아니 날씨가 흐리고 우중충해서 그렇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비는 계속 오락가락 하는데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에서 잠깐 다리를 쉰다.
다리가 무겁다 못해 감각이 없는 것 같다.
아! 내 다리의 고달픔이여.
대신 걸어줄 사람이 없으니 어떻게 할 것인가.
오늘 이 시간도 내 몫의 삶인걸.
감각이 없는 다리를 그저 움직인다.
정말 걷기 싫다.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데 길 옆으로 무슨 비석이 보인다.
다가가서 보니 무장공비 격멸 전적비란다.
울진, 삼척, 영덕에 이어 경주까지 무장공비는 참 끈질기게 침투했던 모양이다.
내 기억에 있는 것은 몇 안 되지만 그때마다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을테니
새삼스럽게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생각하게 된다.
그래도 쉬고 나니 조금 낫다.
한참을 그저 터벅터벅 걸었다.
그나마 솔숲이 나오고 길이 모래와 흙이 섞인 곳이어서 한결 걷기가 수월하다.
거기에 어디에선가 구수한 냄새도 난다.
낙엽을 태우는 냄새인가 아니면 나무를 태우는 냄새인가?
가는 길에 해파랑가게를 발견했다.
핑계김에 쉬어가자면서 고문님께 혹시나 해파랑가게 안에 해파랑길 안내지도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씀드렸다.
대부분 해파랑가게가 문을 닫아 놓았는데 여기는 문을 열어 놓았고 해파랑길 안내지도도 구비되어 있었다.
얼마나 고마운지...
고문님께서는 해파랑길 안내지도를 얻고 맥주 한 병을 사 오셨다.
기분이 좋다고 거스름돈도 안 받으시고.
맥주로 목을 축이며 한참 쉬기로 했다.
신발을 벗고 다리를 긴장사태에서 풀어주고 배낭을 벗었으니 팔도 이리저리 돌리며 운동을 해 준다.
정말 몸이 으아악 비명이라도 지르는 것 같다.
생각보다 잘 걷고 있으니 그리 서둘 것은 없다고 늑장을 부리면서 쉬다가 기운을 내어 다시 배낭을 멘다.
관성해변을 따라 걷는 길이 이어지는데 주변에는 건물을 짓는 모습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보나마나 숙박업소를 짓고 있겠지.
건설현장 인부들이 피워 놓은 모닥불에서 나는 냄새가 저물녘 대기 속으로 퍼져간다.
갈 길이 먼데도 웬지 마음이 넉넉해진다.
해변을 따라 작은 소나무를 줄지어 심어 놓은 곳이 보인다.
지금은 작지만 어느 틈에 자라 무성한 솔숲을 이루겠지.
그리고 그때쯤 해파랑길 중에서 몇몇 곳을 골라 나들이 겸 들르면 청청한 그늘을 만들어 주리라.
작은 소나무가 줄지은 길을 따라 걷다가 길은 다시 31번 국도로 올라선다.
차들이 속도를 내어 지나가는 길이지만 조금 걷자 금세 잘 만들어진 데크가 나타났다.
길 옆으로는 하늘하늘거리는 벚꽃잎이 흩날리고 있고.
이번 봄 벚꽃은 이곳 경주에서 본격적으로 만나고 있는 셈이다.
데크를 따라 걷는 길 아래로는 바다가 펼쳐져 있는데 발 바로 아래에는 동화 속에 나오는 그림 같은 펜션이 보인다.
저기에서 묵는다면 나도 공주가 될까?
혼자서 피식 웃으며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곳을 기웃거려 본다.
벚꽃 흐드러진 길을 따라 걷다가 길은 다시 해변으로 내려선다.
내려오면서 보았던 바위와 나무가 잘 어우러진 건물이 무엇인가 궁금했는데 코오롱 직원 휴양소였나 보다.
참 멋진 곳에 직원을 위한 장소를 마련했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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