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해파랑길을 걷다 ( 20코스 - 경북 영덕)

솔뫼들 2015. 2. 25.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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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쉬다가 몸을 일으켜서 좌회전한다.

길은 예쁘게 이어진다.

적당한 경사를 갖고 오르락 내리락 하는 길이.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않다면 얼마든지 즐기면서 갈 수 있는 길이다.

 

소나무의 이름은
솔이야
그래서 솔밭에
바람이 솔솔 불면
저도 솔솔 하고
대답하며
저렇게 흔드는 거야

 

이문구의 <소나무> 전문

 

소나무가 빽빽해서 솔향을 맡으며 걸으니 좋고,

그리 가파르지 않아서 힘이 덜 드니 좋고,

흙길이라 먼지가 나기는 하지만 발이 편하니이 좋은 길이다.

 

 

 

 가다 보니 아래쪽에서도 보이던 커다란 안내판이 보인다.

우리 어릴 적에 주로 보던 '산림 녹화'라는 글씨가 씌어 있다.

지금은 무조건적인 산림 녹화보다 제대로 가꾸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한다고 알고 있는데...

좋은 내용이지만 구시대의 유물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뿐일까.

 

 헐벗었던 우리나라 산이 박정희 대통령 시절 산림 녹화를 강조하며 푸르게 변했다는 사실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세계적으로 산림 녹화 정도만 따진다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고 했었지.

독일이나 일본처럼 나무를 심는데에는 성공한 나라라고 했는데

심어진 나무가 제대로 관리되지 못 하고 있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 때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잡목이 우거진 곳도 많으니 적당한 간벌도 중요하고 가지치기도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나무를 심는다면 어떤 나무를 심어야 할지도 심사숙고해야 하지 않을까.

 

 

 

 가는 길에는 강구항까지 거리가 수시로 나온다.

그런데 이게 또 웬 일?

거리가 줄었다 늘었다 고무줄이다.

또 내가 지쳐가는지 알고 있는 모양이다.

이런 길은 거리를 재기도 어렵지 않을텐데 너무 성의가 없는 것 아닌가.

 

 한동안 먼지만 풀풀 나는 길을 걸었다.

작은 봉우리 하나 넘고 나면 또 봉우리.

갈수록 태산이라는 말이 맞는 걸까.

말을 한 마디 하면 기운이 빠져나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묵묵히 앞만 보고 걷는다.

 

 

 

 그런데 앞쪽이 시끌벅적하다.

여태까지 사람 한 명 못 만났는데 무슨 일이람?

고개를 갸우뚱하며 걸으니 길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는 사람들이 보인다.

날씨가 조금 풀리자 블루로드를 걷는 무리인 것 같다.

우리를 제외하면 다른 사람들이 없기는 하지만

특유의 사투리로 목소리 큰 경상도 아주머니들 참 시끄럽구만.

반가워해야 할 것 같은데 소음을 피해 걸음을 재촉한다.

 

 걷다 보니 앞에 푸른 다리가 보인다.

아하! 안내지도에 있던 금진구름다리로구나.

여기도 차도로 내려갔다 오지 않게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를 구름다리로 이어 놓았다.

구름다리를 건너 봉화산으로 가는 길이다.

 

 

 

 길 옆에는 블루로드가 < 2015 테마관광부문 '소비자 선정 최고의 브랜드 대상' >을 받았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여러 가지를 보건대 충분히 가능한 일일 것이다.

어제 걸은 길은 해안을 따라 갯바위와 파도를 벗 삼는 길이고, 오늘 걸은 길은 해맞이광장에서 풍력발전단지를 지나 오솔길 같은 숲길이 이어지니 여유있게 걷는다면 참으로 그만한 길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다른 곳에 비해 비교적 이정표도 잘 되어 있고 불편한 길에는 단정하게 데크를 갈아 놓았으니 그런 정성이면 하늘도 감동하겠지.

내 마음이 조급해 앞만 보고 걷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인 것이지.

 

 이제 오가는 사람들이 눈에 띄는 걸 보니 강구항이 멀지 않은가 보다.

간단한 운동복 차림으로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꽤 있다.

발 아래 강구항을 내려다보며 걷는다.

긴장이 풀리면 다리가 꺾이듯 마음이 한 자락 꺾이는 것 같다.

오는 내내 참 오래 걸었다고 느꼈다.

 

 

 

 도로로 내려서서 길을 건넌 후 달동네 같은 골목길을 지나 항구로 들어섰다.

강구항은 오래 전 방영된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로 인해 유명세를 탄 곳이다.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찾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고 했었지.

그 전까지만 해도 그저 그런 동해안 항구의 하나였는데 사람들의 뇌리 속에 드라마의 내용과 관련이 되어 정감있는 항구가 된 것이다.

 

 강구항은 영덕대게의 집산지로 알려져 있다.

강구항 영덕대게거리는 평일임에도 사람들로 북적이는 것이 이름값을 한다는 생각이 든다.

곳곳에 영덕대게를 알리는 모형이 있어서 모름지기 누구나 여기가 영덕 대게의 고장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오래 전 방문했을 때보다 활기가 넘치는 곳에서 잠시나마 눈요기를 하고 오십천을 건넌다.

 

 

 오십천에는 배 모양을 한 강구대교가 눈길을 끌고 있다.

개천을 건너 친구가 알려준 탐라식당을 찾아 강구시장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대구탕이 유명하다고 했다.

 

 오후 2시 45분, 골목 안에 있는 탐라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점심시간이 지나 손님이 많지 않은데도 식당 안은 분주했다.

대구탕을 시키니 점심에 단체손님이 많아 식재료가 떨어졌단다.

메뉴에서 이것저것 고르니 되는 음식이 도리어 드물다.

하는 수 없이 성게미역국을 시켰다.

그런데 고문님께서는 미주구리회덮밥이 궁금하다고 1인분을 또 시키셨다.

결국은 다 못 먹고 싸 가지고 가게 되었고.

 

 

 벽면에 붙은 사진을 보니 정치인, 연예인 등등 유명한 사람은 죄다 다녀갔네.

그만큼 유명하다는 말일텐데 맛도 맛이지만 가격이 참 마음에 든다.

생대구탕이 8000원이란다.

착한 가격에 빼어난 맛, 거기에 친절까지 더하면 금상첨화 아닐까.

원하는 음식을 못 먹기는 했지만 마음에 드는 식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