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크를 따라 걷는 길이 끝나고 차도로 올라섰다.
바닷가를 꽤 오래 걸어서인지 평소에 그리도 싫던 차도가 오히려 반갑다.
차도 옆에도 어김없이 블루로드를 알리는 안내판이 바닥에 붙어 있다.
정말 블루로드에서는 길 잃을 일이 없겠다.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던 강릉과 양양 해파랑길 기억이 엊그제인 양 떠오른다.
도보여행자들은 아무래도 짐에 치이고 걷다 보면 지치게 마련인데 참으로 친절하고 고마운 일이다.
길은 다시 해안으로 이어진다.
해안가를 따라 만들 수 있는 곳에는 최대한 데크를 만들었구나 싶다.
가다가 해안길로 갈 수도 있고, 도로를 따라 갈 수도 있고...
걷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가라는 말인지 양쪽에 다 리본이 붙어 있다.
가는 도중 지나치게 아래쪽까지 계단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오면 나는 이제 도로를 택해 걷는다.
가다가 이번에는 해녀상을 만났다.
예부터 노물리와 석리는 미역이 유명했단다.
해안가에 물질을 끝내고 올라온 해녀상을 만들어서 지역 주민들의 삶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정말 해녀는 세계적으로 생활력 강한 여인의 표상 아닐까 싶다.
멀리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가 쉴 곳이 멀지 않다는 말이다.
한동안 죽도산 전망대가 내 뒤를 졸졸 따라오는 바람에 긴 시간 걷고도 많이 걷지 않은 것 같은 느낌에 시달렸는데 이제 겨우 따돌린 것 같다.
대탄해수욕장을 지나 또 해안길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데크로 만든 길에 그만 질려 버렸다.
데크로 만든 길을 걷다 보면 바윗길이 나오고, 이번에는 계단길이 이어지고...
게다가 지친 몸으로 이정표를 보며 희망을 품고 걸었는데 다시 멀어지는 거리를 보면 나는 투덜이가 된다.
이정표가 많으면 뭐 하남?
거리 하나 제대로 측정하지 못 해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데...
이제 해안절벽의 기암괴석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단지 얼마쯤 가야 이 데크길이 끝나고 진짜 해맞이공원이 나오는지 궁금할 뿐이다.
오늘 따라 기운이 쌩쌩 나시는지 고문님은 저만치 앞서 가시고 뒤를 따르던 나는 그만 계단에 주저앉고 말았다.
누가 나 좀 데려다 주소!
애원이라도 하고 싶다.
그런다고 파도소리와 바람소리만 요란한 곳에서 내 목소리가 들릴 리도 없고
사람은커녕 개미새끼 한 마리 없는데 누구에게 하소연을 한다는 말인가.
억지로 다시 몸을 일으켜 힘겹게 계단길을 오른다.
가는 길에는 흔적 남기기에 선수인 우리나라 사람 아니랄까 봐
아예 줄을 매달아 놓은 곳에 산악회 등 모임 이름이나 다녀간 사람 이름이 빽빽이 달려 있다.
간혹 낯선 길에서 길 안내 역할을 하던 리본이 이제 어떤 모임에 대한 홍보 역할로 바뀐 것 같고
지나치게 매달린 것은 오히려 반감을 주기도 한다.
여기도 이쯤에서 그만 해야 하지 않을까.
꼬불꼬불한 길을 여러 번 돌아 드디어 해맞이 공원에 도착했다.
평소에는 야생화와 갈대 등 볼거리가 많은 것 같은데 겨울인데다 이미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상황이다.
천근만근 하는 몸으로 어디를 둘러볼 엄두도 나지 않는다.
겨우 창포말등대를 올려다보고 사진 한 장 찍는 것으로 대신 한다.
그런데 주변에 숙소며 음식점이 많을 거라 예상을 했는데 모두 차량을 가진 사람들 위주인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낭패인걸.
멀리 풍력발전 단지 아래 건물이 몇몇 보이기에 숙박업소 아닌가 해서 조금 더 가기로 했다.
고문님께서 근처에서 매점을 운영하시는 분께 물으니 펜션은 몇 개 있단다.
해파랑길 21코스를 끝냈다는 만족감도 잠시 다시 도로를 따라 발길을 옮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그곳에 있기를 바라면서.
언덕 아래로 내려가자 펜션단지라고 되어 있다.
펜션은 5~6개 정도 있는데 아무리 찾아도 음식점이 없다.
아직 제대로 자리가 잡히지 않은 모양이다.
오늘은 배낭을 탈탈 털어서 저녁을 때워야 할까 보다.
일단 펜션 몇 군데 전화를 해 보고 한 군데를 정했다.
푸근해 보이는 주인은 분당에서 내려와 펜션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짐을 풀고 근처에 슈퍼마켓이 있느냐고 물으니 10여분 가면 구멍가게가 있기는 하단다.
그곳까지 차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해 라면과 햇반 등등을 샀다.
바가지를 왕창 쓰기는 했지만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라면에 햇반을 말아서 김과 김치를 반찬으로 간소한 저녁을 먹었다.
종일 힘들게 걷고 이렇게 부실하게 먹어서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하시는 고문님.
그럴 때도 있는 거지요.
간단히 저녁을 먹고 나서 오늘 걸은 거리를 확인하니 23km이다.
그리 많은 거리를 걸은 것도 아닌데 유독 피곤하다 싶었더니만
해안길이 계속 이어지는데 바위도 많고 데크에도 계단이 많아서 줄곧 긴장을 하고 걷지 않았나 싶다.
오늘은 정말 푹 자야겠다.
내 하나의 목숨으로 태어나
바다에 누워
해 저문 노을을 바라본다
설익은 햇살이 따라오고
젖빛 젖은 파도는 눈물인들 씻기워 간다
일만(一萬)의 눈초리가 가라앉고
포물(抛物)의 흘러 움직이는 속에
뭇 별도 제각기 누워 잠잔다
마음은 시퍼렇게 흘러 간다
바다에 누워 외로운 물새가 될까
물살이 퍼져감은
만상(萬象)을 안고 가듯 아물거린다.
마음도 바다에 누워 달을 보고 달을 안고
목숨의 맥(脈)이 실려간다
나는 무심(無心)한 바다에 누웠다
어쩌면 꽃처럼 흘러가고 바람처럼 사라진다
외로이 바다에 누워 이승의 끝이랴 싶다.
박해수의 < 바다에 누워> 전문
'여행기, 산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파랑길을 걷다 ( 20코스 - 경북 영덕) (0) | 2015.02.25 |
---|---|
해파랑길을 걷다 ( 20코스- 경북 영덕) (0) | 2015.02.24 |
해파랑길을 걷다 (21코스 - 경북 영덕) (0) | 2015.02.21 |
해파랑길을 걷다 (22코스- 경북 영덕) (0) | 2015.02.17 |
해파랑길을 걷다 ( 22코스- 경북 영덕 ) (0) | 2015.0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