귓가를 어지럽히는 바람 소리에 잠을 설쳤다.
오늘 얼마나 바람에 시달리려나 정말 걱정이 앞선다.
한파주의보까지 내린 날씨 탓을 하며 늑장을 부려 오전 9시 35분에 숙소를 나선다.
오늘은 축산항에서 점심을 먹고 해맞이공원 근처에서 묵을 예정이다.
영해 시내를 지나 걷는다.
영해관광시장은 5일장이 서다 보니 상가 문은 열었지만 오가는 사람이 드물어 썰렁하다.
오래 전에 보았을 때보다는 현대식 시설이 갖추어져 깨끗하고 편리해 보이기는 한다.
시장 구경을 하는 재미도 쏠쏠한데 약간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어제 걸어왔던 길을 따라
괴시리 마을로 향한다.
산길을 따라 오르니 도리어 나무가 바람을 막아주어 걸을 만하다.
양쪽에 우거진 대나무 사잇길을 지나자 솔숲이 우거진 길이 나타난다.
솔숲 사이로 약간의 경사가 있는 길이 이어진다.
관어대 탐방로로 이어지는 갈림길을 지난다.
날씨만 덜 춥다면 콧노래라도 부르며 가고 싶은 길이다.
폭신폭신해 도리어 먼지가 일기는 하지만 적어도 발바닥이 고생할 일은 없지 않은가.
출발 며칠 전에 경북 북부 지역을 포함한 영동지방에 대설주의보가 내렸다고 하여 걱정을 많이 했다.
그래서 신발도 발목이 높은 등산화로 갈아신고 아이젠도 제대로 된 것으로 준비했다.
장갑도 얇은 것과 두꺼운 것을 각각 준비했고, 모자도 햇볕을 가리는 용도와 추위에 대비한 것으로 챙겼다.
이래저래 배낭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는 여행이 된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시내는 물론이고 산에서조차 눈을 찾아볼 수가 없다.
유비무환이라고는 하지만 杞憂였던 것 같다.
능선에 오르자 바람은 더 사나워졌다.
한쪽 뺨을 사정없이 후려갈긴다.
눈을 뜰 수도 없을 지경이다.
나무에 매달린 블루로드 안내리본은 세찬 바람에 바람개비 돌듯 팔랑팔랑 돌아간다.
나비가 날아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멈추지 말라고
흐르는 바람이 내게 말했습니다
삶에 지쳐 세상 끝에 닿았다 생각되더라도
멈추지 말라고 멈추지는 말라고
흐르는 바람이 내게 말했습니다
길은 어디까지 펼쳐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길은 그 어디까지 우리를 부르는지
아직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오직 내일이 있기에 여기 서서
다시 오는 내일을 기다려 봅니다
누가 밀어내는 바람일까
흐느끼듯 이 순간을 돌아가지만
다시 텅 빈 오늘의 시간이 우리 앞에 남겨집니다
내일은 오늘이 남긴 슬픔이 아닙니다
내일은 다시 꽃 피우라는 말씀입니다
내일은 모든 희망을 걸어볼 수 있는
오직 하나의 먼 길입니다
정공량의 < 멈추지 말라고 > 전문
한동안 키큰 소나무숲이 이어지더니 이번에는 소나무 키가 작아졌다.
고문님께서는 바람에 시달려 키가 작은가 보다 하시지만 새로 조성한 숲인 게지.
키작은 소나무숲을 따라 걷다 보니 다시 소나무들 키가 커졌다.
다른 나무는 거의 보이지 않고 온통 소나무만 있으니 산이 깊지는 않지만 이곳에서는 송이버섯이 잘 자라지 않을까.
영덕 특산물 중에 송이버섯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런 소나무숲에서 나는 것이겠지.
적당한 경사로를 따라 오르락내리락 몇 번을 하고 나니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멀리 보이기는 하지만 역시나 파도가 세다.
바람소리인지 파도소리인지 구별이 안 되는 소리에 다른 소리는 묻혀 버렸다.
오로지 자연의 소리로 꽉 찬 공간에서 인간의 목소리는 소음이 되리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묵묵히 걷는다.
얼마나 걸었을까?
아래쪽에 빨간 무언가가 눈에 들어온다.
아하! 사진구름다리라고 안내지도에 있더니 저거였구나.
望日峰과 望月峰을 이어주는 구름다리는 예상보다는 작고 아담했다.
구름다리가 있어서 내려갔다 올라오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인가.
구름다리 너머로 사진리 마을이 얼핏 보인다.
오전 11시, 구름다리를 지나자 다시 오르막길이다.
망월봉을 오르는 길이다.
해발 고도가 300m도 되지 않는데 숨을 헐떡인다.
날씨는 쌀쌀하고 바람이 거세도 계속 이어지는 산길을 걷자니 등에서는 땀이 흐른다.
잠깐 쉬면서 커피 한 잔을 마시는데 그 동안에는 땀이 식어 금방 싸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적응하기 힘든 날씨이다.
쉬지 않고 꽤 걸었다.
대소산(해발 278m)이라는 안내판을 지나가지 대소산 봉수대가 나온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 본 봉수대와는 모양이 다르다.
조선 초기 영덕 주변의 동태를 서울까지 알리는 봉수대였다는데 돌로 쌓은 무덤 같아 보인다.
봉수대 아래쪽에도 돌로 울타리를 쌓아 놓은 것이 눈에 띄고.
형태가 독특해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제 내리막길이 이어지는 모양이다.
지금까지 걸은 길도 산길이라고 한결 마음이 가볍다.
축산항을 내려다보며 걷는 길이다.
길게 이어진 방조제와 등대, 그리고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것 같은 집들이 평화스러워 보인다.
도로로 내려섰다.
도로를 따라 점심 먹을 곳을 찾아가면 되려니 마음을 푹 놓고 있는데
고문님께서 아무래도 다시 산길로 올라야 할 것 같다고 하신다.
아니 이건 또 무슨 심보래?
동네 야산에다 이런저런 것 만들어놓고 모두 올라가보라고 하니 말이야.
하는 수 없이 투덜거리며 오르막길로 들어선다.
층층이 이어지는 파도가 금방이라도 내 발밑을 때릴 것처럼 몰려오는 것이 보인다.
이 산도 와우산이라는 이름을 가졌네.
작다고 무시하면 안 되겠구만.
걷다 보니 일광봉, 월광봉이라고 씌어진 비석이 이어서 나타나는데 오래 된 비석 옆에 새로 만든 비석을 나란히 세워 놓았다.
그런데 글씨는 오래 된 비석의 글씨가 훨씬 힘차고 멋들어졌는걸.
영양김씨, 영양남씨 발상지를 지나 골목길을 내려가자 드디어 축산항이다.
오늘 오전 일정, 그리고 해파랑길 22코스가 여기에서 끝난다.
두리번거리며 혹시나 안내판을 찾아보았으나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 친구가 추천해준 음식점이나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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