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雪國 小白山에서 (2)

솔뫼들 2015. 2. 5.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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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2시,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섰다.

비로봉까지 4.3km란다.

2시간쯤 걸리리라.

능선에만 올라서면 마음이 놓일 줄 알았는데 거리를 알게 되니 늑장을 부릴 수가 없다.

고문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조금 내려서시더니 바로 뒤돌아가신단다.

 

 

 나는 선두에서 비로봉을 향해 걷는다.

바람은 다시 사정없이 내 몸을 후려갈긴다.

바람과의 싸움에 승산이 없어서 결국 이벤트 자켓을 하나 덧입고

장갑도 두꺼운 것으로 바꿔 꼈다.

길 옆에 쌓인 눈 깊이를 알아보려 스틱을 꽂았더니 스틱이 반 이상 들어간다.

거기 빠지면 내가 눈사람이 되겠는걸.

앞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길을 비켜주기도 쉽지는 않다.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에게 겨울이 없다면
무엇으로 따뜻한 포옹이 가능하겠느냐
무엇으로 우리 서로 깊어질 수 있겠느냐

 

이 추운 떨림이 없다면
꽃은 무엇으로 피어나고
무슨 기운으로 향기를 낼 수 있겠느냐
나 언 눈 뜨고 그대들 기다릴 수 있겠느냐

눈보라 치는 겨울밤이 없다면
추워 떠는 자의 시린 마음을 무엇으로 헤아리고
내 온몸을 녹이는 몇 평의 따뜻한 방을 고마워하고
자기를 벗어버린 희망 하나 커 나올 수 있겠느냐

아아 겨울이 온다
추운 겨울이 온다
떨리는 겨울 사랑이 온다

 

                 박노해의 < 겨울 사랑> 전문

 

 바람이 거세질수록 설경은 더욱 매혹적이다.

손이 시려워도 사진은 찍어야겠지.

우리가 내려온 연화봉이 금세 멀어지고 간간이 오가는 사람들이 눈길에 까만 점으로 바뀐다.

빼어난 수묵화 병풍을 펼쳐 놓은 것 같다.

바람에 쓸려 고개를 한쪽으로 돌린 풀들의 모습 또한 장관이다.

온갖 풍파를 다 겪으면 사람도 세상사에 그렇게 체념을 하게 되겠지.

 

 

 

 

눈 쌓인 나뭇가지들이 얽혀 눈 터널을 만들었다.

눈 터널 사이로 걸으면서 영화 속 설국공주라도 된 양 잠시나마 환상에 빠진다.

그래. 이렇게 눈길을 걷고 나면 다시 한 해를 힘차게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을 것 같다.

길은 미끄럽고,

손은 시리고, 바람 때문에

모자를 눌러 써야 해도 이런 겨울이 지나면 꽃 피는 봄이 오는 것 아닌가.

 

 한동안 신사장님과 비슷한 속도로 오시던 강대장님이 휙 앞서 가셨다.

체력이 좋으니 답답하셨던게지.

나는 사진을 찍으면서 신사장님과 보조를 맞추어 걷는다.

신사장님은 가끔씩 나오시지만 체력 관리를 잘 해서 연세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참 잘 걸으신다.

본받아야 할 점이다.

 

 

 

이제 키큰 나무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길가에 드리워진 줄이 보호구역임을 가리킨다.

정상 부근에 주목이 있었지.

오래 된 주목은 지리산과 덕유산, 한라산 등 몇몇 산에만 있는 보호수로 알고 있다.

사람들의 발길에 훼손되는 나무를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대책이리라.

 

얼마쯤 가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전망대였다.

전망대에서 우리가 온 길을 보니 설원에 한 줄로 보인다.

우리가 가야 할 길 또한 마찬가지이고.

장엄한 대자연의 서사시 한 편을 감상하는 시간이다.

 

 

앞에 가신 강대장님을 눈으로 확인하고 뒤에 오시는 신사장님을 기다렸다가 발길을 옮긴다.

이제 비로봉이 바로 코 앞이다.

나즈막한 계단으로 이루어진 길이 이어져 있다.

오르막길이니 다시 숨이 차다.

 

오후 3시 45분, 비로봉(해발1439m)에 도착했다.

오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았는데 다른 방향에서 올라온 사람들인지 정상에는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꽤 많다.

주변을 둘러보니 한쪽에는 경북 영주에서 해 놓은 정상 표지석이 커다랗게 서 있고

한쪽에는 자그마하게 충북 단양에서 표지석을 만들어 놓았다.

서로 정상이 자기 지역이라고 주장이라도 하고 있는 것 같다.

道界가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피식 웃음이 나온다.

 

 

 소백산의 정상인 비로봉의 이름은 불교의 '비로자나불'에서 온 것이란다.

'비로자나'는 '빛나는 존재'라는 뜻이라고.

비로봉이 빛날 때는 바로 지금같이 눈이 쌓인 한겨울 아닐까.

그러니 우리는 비로봉의 진면목을 확인하고 있는 셈이다.

 

 강대장님은 일찍 올라오는 바람에 사람들 사진을 찍어주느라 손이 시리다 못해 아플 지경이라고 하신다.

연초에 소백산에서 덕을 쌓으신 겁니다.

사실 연화봉에서 사진 부탁을 받고 손이 시려운 것을 경험한지라 충분히 이해가 된다.

얼마나 손이 시리다 못해 아린지.

 

 모자를 안 쓰고 귀마개만 한 강대장님 머리가 허옇다.

땀이 얼어붙은 것 같은데 30분쯤만 더 여기 머물면 강대장님 머리에도 상고대가 피겠네.

기온이 영상이라고 했지만 여기는 해발고도가 1000m를 넘으니 최소 7 ~8도는 낮을테고 결국 영하의 기온이라는 말이겠지.

물통의 물도 얼어붙어 뚜껑이 잘 안 열린다.

 

 신사장님을 기다리는 동안 여기저기 사진을 찍는데 정말 눈물이 나올 만큼 손이 시리고 춥다.

소백산 칼바람은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지.

이건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오후 4시, 신사장님께서 도착하셔서 우리도 단체사진을 찍고 바로 하산을 시작한다.

길이 미끄러워 오래 걸리면 하산을 완료하기 전에 해가 질 수도 있으리라.

삼가리 주차장까지 이정표상의 거리는 5.5km. - 안내지도에는 5.8km였다.

눈길에 경사가 심할테니 서둘러도 대략 2시간은 걸리지 않을까.

이래저래 마음이 바쁘다.

고문님께 보고 전화를 드리니 생각보다 일찍 하산을 시작한 것 같다고 하신다.

 

초반부터 급경사길이 기다린다.

스틱에 의지에 뛰다시피 걷는데 앞으로 고꾸러질 것만 같다.

그렇다고 꾀를 부릴 수는 없지.

나도 모르게 발이 빨라진다.

 

길은 한동안 미끄러지기 좋게 살짝 언 길이었다가 진흙탕으로 변했다가 변덕을 부린다.

삼가리 방면은 남사면이니 종일 해를 받은 곳은 눈이 녹았다가 저녁이 가까워지니 살짝 어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조심스러워 자꾸 스틱을 짚은 팔에 힘을 주게 되니 팔과 어깨가 뻐근하다.

그래도 하는 수 없지.

 

 

급경사길이 이어지는가 싶었는데 계단길이 나오더니 길이 순해졌다.

선두에서 사람들을 추월해 속보로 걷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소나무숲이다.

올라올 때는 여러 가지 나무가 섞여 있었는데 이곳 나무는 주로 적송이네.

쯕쭉 뻗은 적송이 서 있는 모습이 시원스럽다.

 

부지런히 걸었더니 달밭골이란다.

이름이 순박해서 전에 이리로 올라갔던 기억이 난다.

전에는 없던 달밭골을 알리는 이정표도 서 있는데 정감록에 십승지설 중 일승지라고 했단다.

풍수지리상 그만큼 안전하고 평안한 지역이라는 말이겠지.

 

 

 조금 더 가자 이제 반은 진흙길이다.

길 옆 눈에 아이젠을 닦아 벗어 넣고 다시 발길을 옮긴다.

비로사 일주문 앞에 서니 포장도로가 나타난다.

비로사에 잠시 들를까 고민을 하다가 그냥 내처 걸으며 고문님께 전화를 드리니

주차를 하고 걸어서 올라오는 중이라 하신다.

 

 5분쯤 내려가서 고문님을 만난 후 일행을 기다렸다.

잠시 후 신사장님이 오셨다.

정말 잘 걸으시더라고 하니 안 걸으면 어떻게 하느냐, 하는 수 없이 걸었다고 하신다.

아랫사람들한테 완등 축하 현수막 걸으라 시켰다고 농담을 하면서 걸었다.

 

 오후 5시 30분경 캠핑장에 도착했다.

전에 왔을 때 없던 곳이다.

고문님께서 차를 여기에 주차하시는 바람에 포장도로를 조금 덜 걷게 되었다.

해가 길어져 아직 어둠이 들어차지는 않았다.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