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이따금 다니는 한적한 길을 따라 걷는다.
걸으면서 이정표를 보니 고래불 해변이 4km 남았단다.
슬슬 지쳐갈 무렵 이정표를 보자 힘이 불끈 솟는다.
4km라면 기어서라도 갈 수 있겠군.
가는 길 내내 도로 옆에 세워져 있는 허술한 입간판에는 멸치를 판다는 글씨가 씌어 있다.
여기는 또 멸치가 잘 잡히는 지역인가 보다 했더니 친구 왈,
예전에는 전국적으로 유명했다는데 지금은 다른 곳에 선두 자리를 내주었다고.
주로 기후의 영향이지만 농산물이나 수산물이나 주산지가 바뀌는 일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났다.
그만큼 기후 변화가 심하다는 말이겠지.
동네 이름이 白石里이다.
친구가 오른쪽의 산꼭대기쯤을 가리키면서 동네 이름에 얽힌 이야기를 한다.
산 꼭대기에 있는 바위에 아침 햇살이 비치면 하얗게 빛난단다.
그래서 동네 이름이 백석리가 되었다고 전해져 온단다.
오래 전에 묵었던 영덕 심층수 온천은 펜션이었는데 모텔로 바뀌었네.
팔각산 등산 후 이곳 온천에서 피로를 풀고 대게를 먹었었지.
해변을 따라 서 있는 소나무의 자태가 예사롭지 않다.
석양을 받은 구부정한 모습조차 신비로워 보인다고나 할까.
길은 이제 차도에서 벗어났다.
지은 지 얼마 안 된 것으로 보이는 펜션 건물들이 연달아 보인다.
'1km 마음의 거리', '씨클라우드 펜션'...
주인들이 심사숙고해서 이름을 지었을텐데 왜 마음의 거리가 1km나 될까?
그런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라면 와서 마음의 거리를 좁히고 갈까 아니면 아예 수십 km로 벌려 더 멀어질까?
아니 우리처럼 걷는 사람들에게 1km가 마음의 거리이지 실제 걸으면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고 위로라도 해 주려는 것일까?
공연히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걷는다.
보는 사람의 관심을 끌 수는 있을텐데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이름이다.
언덕을 오르자 다양한 숙소가 나타난다.
민박에, 펜션에, 모텔, 그리고 게스트하우스까지 정말 골고루 있다.
친구가 병곡중학교에 근무할 10년 전쯤에는 한적한 어촌이었는데 어느 새 휘황찬란한 곳으로 바뀌었다.
고래불 해변이 이렇게 넓었던가 기억이 까마득하네.
정말 桑田碧海라는 말이 실감난다.
해는 이미 산 너머로 떨어지고 붉은 기운만 하늘에 남겼다.
순간 고래 모형에 불이 들어왔다.
여러 가지 빛깔로 변하는 고래를 보면서 고래불 해변이라는 이름에 대해 생각한다.
'고래불'이라는 말은 목은 이색 선생이 하얀 분수를 뿜으며 노는 고래들을 보고 '고래들이 노니는 뻘'이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란다.
그 당시 근처에 고래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해변에서 잠시 고래 모양을 본떠 만들어 놓은 조형물 사진을 찍고 주변을 살펴본다.
영덕의 걷기 좋은 길인 블루 로드 안내판 앞에서 오늘 일정을 마무리한다.
오늘은 24km를 걸었다.
우리 속소가 어디인지 친구에게 물어본 후 저녁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의논을 했다.
혹시나 숙소 주인에게 부탁해 대게를 살 수 있으면 펜션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을 수 있겠다 싶다.
대게를 살 수 있다는 말에 햇반과 주류 몇 가지를 사 들고는 숙소로 향했다.
해변에서 좀 떨어진 곳에 위치한 펜션은 논이었던 곳에 지어졌단다.
농지가 점점 상업시설로 변하고 있다는 말이니
그만큼 고래불 해변이 사람들의 관심 지역이 되었다는 말에 다름 아닐 것이다.
친구를 따라 5분쯤 걸었을까.
'바다 스케치'라는 이름의 펜션이 우리를 맞아 준다.
나름대로 멋을 부린 건물의 지붕 모양이 눈에 들어온다.
복층으로 된 방을 주겠다고 했다더니 봉긋 솟아오른 곳이 복층인가 보다.
어둠 속에서 본 것이기는 하지만 단정하게 정리된 정원이며 건물이 주인을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주인과 인사를 나누고 방으로 들어갔다.
정말 시설도 좋고 깨끗하다.
관리가 잘 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미리 난방을 해서인지 따뜻해서 금세 몸이 노곤해진다.
그렇다고 이대로 쓰러질 수는 없지.
일단 배달된 대게를 먹기로 했다.
친구는 가위로 다리와 몸통을 먹기 좋게 잘라 놓는다.
그리고는 게딱지에 김을 넣고 밥까지 비벼서는 먹어보란다.
달콤하고 담백한 게살이 쪽쪽 입으로 들어간다.
점심에 저녁까지 이렇게 포식을 하니 몸이 깜짝 놀라겠는걸.
친구는 영덕에 사니 아무래도 먹을 일이 많고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며 조금만 먹는다.
고문님께서는 또 노력 대비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적어서 귀찮다며 조금만 드시고.
그러면 결국 나머지는 다 내 차지네.
평소 해산물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감사하면서 지구력있게 먹어대는 내 모습이라니...
저녁상을 치우고 마지막 밤을 보낸다.
내일은 안 걷고 바로 상경할 예정이니 잠이 부족하면 버스에서 자도 되겠지.
친구와 밀린 이야기를 하다가 자정을 훌쩍 넘겨 버렸다.
조금은 자 두어야지 싶어 자리에 눕는다.
종일 들은 파도소리가 꿈결을 어지럽힐 것 같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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