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해파랑길을 걷다 ( 23코스- 경북 울진, 영덕)

솔뫼들 2015. 1. 30.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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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은 후포 해변을 따라 이어진다.

날렵하게 뻗은 선에 갈매기를 형상화한 은빛 조형물이 햇살에 반짝인다.

그 조형물 아래에 혼자 앉아 있는 사람은 무얼 하고 있을까?

겨울이라고 해도 한낮 기온이 영상 5도를 오르내리니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도 밝고 활기차다.

 

 

 솔숲이 있는 해변에 쉬기에 안성맞춤으로 보이는 벤치가 있기에

일행에게 커피 한 잔을 제안하니 친구는 한동안 내처 걷자고 한다.

쉬었다가 걸으면 발이 더 아프다고.

하기는 아침에만 해도 친구가 지금까지 함께 걸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잘 버티고 있는 셈이지.

 

 간간이 겨울 바다를 즐기는 연인이 눈에 띈다.

다정해 보이는 모습에 저절로 눈길이 간다.

우리처럼 무지막지하게 배낭을 메고 걷는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다.

푹하기는 하지만 한겨울에 길 위를 떠도는 사람들이라니...

 

 

 가는 도중 주변을 살펴보니 그다지 관광객들이 몰릴 것 같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깨끗하고 산뜻하게 지어진 펜션들이 꽤 많다.

사람들이 여가를 즐길 수 있다는 말이겠지.

시간적, 물질적 여유에 더해 정신적인 여유까지 생기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본다.

나부터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면 좋을텐데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개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자 수족관에 대게를 가득 채운 횟집들이 줄지어 있다.

올해 날씨 덕분에 대게에 살이 통통하게 찼다는 이야기를 매스컴에서 들었는데

어부도, 상인도, 소비자도 모두 즐거운 비명을 지를 수 있으면 좋겠다.

사방에서 보이는 대게와 관련된 것들이 새삼스레 이 지역을 확인하게 해 준다고나 할까.

 

 

 걷다 보니 백암 휴게소에 도착했다.

여기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멋들어지게 만들어 놓은 조형물 아래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한 잔씩 마신다.

그러고 보니 이 조형물에도 게가 한 마리 붙어 있었네.

지금이야 대게철이니 그렇다고 해도 게를 잡을 수 없는 여름이 되면 이곳이 썰렁해지지 않을까 갑자기 걱정이 될 정도이다.

 

 친구는 쉬는 동안 고래불해변에서 펜션을 운영한다는 지인에게 전화를 했다.

미리 쉴 만한 공간을 예약해 놓으면 아무래도 마음이 편하겠지.

서두르지 않고 쉬엄쉬엄 고래불 해변까지만 가기로 하니 마음이 느긋해진다.

그래도 해 지기 전에는 도착하는 것이 좋으니 다시 몸을 일으킨다.

 

 

 길은 한동안 7번 국도를 따라간다.

포장도로를 따라 걸으려니 발바닥이 괴롭다.

발에 물집이 잡혀 엉망이 된 친구는 훨씬 더 하겠지.

그런데 반갑게도 간혹 차도 옆에 나무로 된 데크가 만들어지는 중이었다.

해안선을 따라 있던 철책을 뜯어내고 그 자리에 데크를 만드는 모양이다.

아직 완성된 것 같지는 않지만 바다를 온전히 국민에게 돌려주는 것 같아 어찌나 반가운지...

 

 지도를 보고 계속 7번 국도를 따라가야 하나 보다 걱정을 했더니만 이번에는 바닷가로 난 샛길로 접어든다.

그러자 작은 어촌이 나오는데 언덕을 따라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전통적인 마을이었다.

골목을 따라 올라가면 왠지 어릴 적 친구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소박하고 정겨운 동네이다.

그런데 파도가 심하게 치면 금세라도 마을을 집어삼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늘 바다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는 하지만 두려움도 있으리라.

다시 한번 마을을 돌아보는데 작은 개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짖어댄다.

평소에 외지인이 드나들 일이 별로 없을테니 개에게 우리가 볼거리를 제공해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파도는 사정없이 포말을 흩뿌린다.

그런 파도를 맞으며 바닷가에서 종일 낚시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참 대단한 인내심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낚시 자체를 즐기는 것인지 아니면 잡는 물고기의 양에 관심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낚시에 빠진 사람들을 보면 三昧境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道를 닦는 것 같다고나 할까.

 

 뚜벅뚜벅 걷다 보니 길 옆 숲에 산불조심을 강조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데 '영덕군'이라고 씌어 있다.

드디어 영덕에 들어선 모양이다.

7번 국도를 계속 걸어왔다면 울진과 영덕을 가르는 안내문이 있었을 법도 한데

바닷가 마을을 거쳐 왔으니 언제 영덕으로 들어섰는지 모르면서 걸은 것이다.

 

 

 옛길(구도로)을 따라 걷는다.

특별한 것이 없으니 길가에 보이는 건물에 눈을 주게 된다.

앞에 하얀 펜션 건물이 보이는데 작은 고래 한 마리를 그려 넣고 '고래 이야기'라는 이름을 붙여 놓았다.

커다란 간판보다 오히려 더 눈길을 끄는 그림과 이름이 예뻐서 사진을 한 장 찍는다.

고래불 해변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말이겠지.

혼자 그런 생각을 하며 씩 웃는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앉았네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삼등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간밤에 꾸었던 꿈의 세계는
                                        아침에 일어나면 잊혀지지만
                                        그래도 생각나는 내 꿈 하나는
                                        조그만 예쁜 고래 한 마리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우리들 사랑이 깨진다 해도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는 다 해도
                                        우리들 가슴 속에는 뚜렷이 있다
                                        한 마리 예쁜 고래 하나가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최인호 작사, 송창식 작곡, 송창식 노래


 조금 더 가니 칠보산 산림욕장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칠보산에는 친구랑 두 번 가 보았었다.

눈이 무릎까지 쌓였을 때 칠보산을 걷고는 후포항까지 갔었고,

한번은 자연휴양림에서 쉬고 다음날 아침에 싱그러운 솔향을 맡으며 숲을 거닐었었지.

벌써 한참 된 일인데도 칠보산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칠보산을 옆에 끼고 걷는다.

사진을 찍기가 불편해 장갑을 끼지 않고 걸었더니

어스름이 내려오기 시작하자 손이 시려온다.

아무래도 친구가 걷는 속도가 느려서 밤이 되어야 숙소에 도착할 것 같다.

그래도 영덕으로 접어들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볍기는 하다.

 

 눈 앞에 칠보산 휴게소가 불을 밝히고 있다.

대형버스들이 여러 대 서 있는데 친구 말에 따르면 이곳의 밥맛이 유난히 좋단다.

영덕 등산 동호회에서 산에 다니면서 오가는 길에 많이 이용을 한 모양이다.

동해안을 따라 올라가면 산이 수없이 많으니 매번 다른 산을 오르는 기분도 좋으리라.

나는 그저 눈요기만 하고 다음을 기약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