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雪國 소백산에서 (1)

솔뫼들 2015. 2. 2.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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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겨울은 눈이 많다고 했다.

그런데 겨울을 중반 넘기도록 산에서 눈다운 눈을 밟아보지 못 했다.

설산이 그리웠다.

덕유산에 눈이 많이 왔다는데, 소백산에 눈이 많을텐데 생각을 하다가 오랜만에 소백산에 가기로 했다.

 

 소백산은 국립공원이다.

경북 영주와 충북 단양군, 그리고 강원도 영월에 걸쳐 있는 산으로 백두대간이 이어지는 곳이다.

다른 국립공원보다 규모가 크지 않고 산세가 부드러워 여성적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데

연화봉과 비로봉, 국망봉에 이르는 평원이 넓게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겨울 북서풍의 영향으로 설경이 멋지기로 유명하지만 철쭉이 피는 계절 또한 천상화원이 되어 산꾼들을 불러모으기에 손색이 없는 산이다.

오랜만에 찾는 소백산 설경을 머리에 그리다가 잠을 설쳤다.

 

 다들 바쁜지 참여 인원이 그다지 많지 않다.

고문님과 강대장님, 그리고 내가 가기로 했는데 신사장님이 반 정도 갈 의사를 밝히셨다.

간다고 해도 열차를 이용할 예정이니 아침에 통화를 하자고 하셨다.

 

 새벽 6시 30분 어둠 속에 집을 나와 오전 7시 40분경 야탑역에서 강대장님 차에 올랐다.

차는 경부고속도로를 힘겹게 빠져나가 영동고속도로로 갈아탔는데 스키 시즌이라 그런지 통 앞으로 나가지를 못 하네.

뭐 마음이 바쁘다고 빨리 갈 수 있는 건 아니니 운전하시는 분께는 죄송하지만 뒷자리에 앉은 사람은 부족한 수면을 보충해도 되겠지.

 

 

 졸다 깨다 반복하는 동안 차는 중앙고속도로로 접어들어 치악휴게소에서 쉰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지도를 보면서 우리가 갈 코스를 확인하고 신사장님께 확인 전화를 드렸다.

그랬더니만 벌써 열차가 단양을 지나가고 있다고 하신다.

우리보다 먼저 도착하시겠는걸.

 

 여기서부터는 차가 씽씽 달린다.

그런데 차창 밖 풍경에 눈이 그다지 보이지 않네.

혹시 여기서도 눈 구경을 못 하는 건 아닐까?

설산 산행을 위해 왔는데 여기서도 눈 구경을 못 하면 얼마나 실망을 하게 될까?

걱정을 하면서 구불구불한 길을 오른다.

 

 

 희방사 입구에 도착하니 신사장님께서는 택시를 타고 먼저 와 계셨다.

산행 준비를 하고 우리가 갈 길을 올려다보니 눈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눈길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눈이 많을테니 눈 구경을 못 할까 하는 것은 기우였다.

날씨는 그리 춥지 않다.

소백산의 추위와 눈바람은 익히 경험을 해서 알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주차장에서 연화봉까지는 거리가 3km란다.

계속 오르막길인데다 눈길이니 2시간 정도 걸리지 않을까 싶다.

 

 오전 11시 5분, 중무장을 하고 앞으로 한 발 내딛는다.

길은 생각보다 미끄럽지만 일단 견딜 수 있는 데까지 견뎌보기로 했다.

다른 분들은 일찌감치 아이젠을 하고 출발을 하셨다.

얼어붙은 희방폭포를 지나고 본격적인 오르막이다.

다녀간 지 워낙 오래 되었고, 또 늘 이 코스로는 내려오기만 했는지라 길이 어떠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초반부터 가파른 오르막에 절절 매니 휴게소에서 먹은 우동과 호두과자가 거꾸로 올라오는 느낌이다.

고문님께서 점심이 늦어질테니 먹어두라고 하셔서 먹기는 했는데 속이 마구 볶인다.

 

 

 헉헉대고 가다가 주루룩 미끄러졌다.

맨등산화로는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다.

정신이 번쩍 들어 얼른 아이젠을 하고 씩씩하게 걷는다.

경사가 심해서인지 아니면 정말 배가 무거워서인지 유난히 힘이 든다.

그런데 나뿐이 아니고 모두들 힘들어하는 기색이다.

그러고 보니 깔딱고개였네.

당연히 숨이 '깔딱' 넘어갈 정도로 힘이 든 거지.

 

 겨우 안부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몇몇 쉬고 있는데 쉴 때 등산장비를 걸어둘 수 있도록 만든 옷걸이 비슷한 시설물이 눈에 보인다.

여러 산에 다녀 보았어도 이런 시설물은 처음 본다.

그런데 나는 사절이다.

모자나 스틱을 걸어두고 십중팔구 깜빡 잊고 가기 십상이겠는걸.

산에서 나무에 걸어둔 장비를 깜박 잊고 온 경험은 많은 사람이 갖고 있을 것이다.

지나친 친절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안부를 지나쳐 바로 앞을 향해 걷는다.

사진을 찍으면서 부지런히 걸었다.

그런데 바로 뒤에 오시던 강대장님도 안 보이고 다른 분들도 올라오시는 기미가 안 보인다.

안부에서 쉬시나 보다 싶었는데 한참 안 오시기에 서서 기다렸더니

우리가 내려갈 삼가리까지 택시를 부르면 어떨까 확인 전화를 해 보셨단다.

고문님께서 연화봉까지만 갔다가 차를 가지고 삼가리로 간다고 하시기에 택시를 이용하자 했었는데

고문님 고집도 만만치 않네.

감사한 일이기는 하지만 인원이 몇 되지도 않는데 이산가족이 된다니...

 

 경사가 완만해지기는 했지만 계속 오르막이 이어진다.

걸을수록 길에 눈[雪]은 더 많아지고, 눈[目]은 더 바빠진다.

강대장님은 살짝 생긴 상고대를 보고 좋아라 하면서 사진을 찍으신다.

아이고, 아직 숙성이 덜 되었는걸요.

조금 더 가면 푹 익은 상고대가 나올 겁니다.

 

 

 어찌 되었든 나무에 얹힌 눈 모양이 점점 더 시선을 잡아끈다.

눈바람이 애써서 만들어 놓은 작품이다.

그리고 멀리 켜켜이 눈 쌓인 마루금이 신비스럽게 펼쳐져 있다.

사방 어디를 보아도 흰색이다.

바야흐로 겨울산임을 확실히 느끼면서 걷는 길이다.

 

 우리가 산행을 시작한 시간이 늦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등산로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안내산악회가 대부분 단양쪽으로 안내를 한다더니 그래서 그런가.

아니면 산꾼들이 이쪽은 많이 다녀서 이제 싫증이 난 건가.

그것도 아니면 겨울이라 짧은 산행거리를 선택한 것인가.

아무튼 덕분에 호젓한 산행을 즐길 수 있어서 좋다.

 

 

 

 

 가다가 앞서가던 사람들을 추월했다.

우리 걷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말이겠지.

12시를 넘기자 반대로 하산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하기는 큰 산인데다 겨울이니 부지런히 올랐다 내려가는 것이 낫겠지.

 

 부지런히 걸으니 등에 땀이 나는가 싶더니 몰아치는 찬바람에 금세 식어 싸늘해진다.

귀가 시려워 모자에서 귀마개를 내려 덮으며 바람을 막아 본다.

드디어 소문난 소백산 칼바람과 싸울 시간이 된 것이구나.

그나마 기온이 그다지 낮지 않으니 견딜 만하다고나 할까.

그리고 올라갈수록 달라지는 상고대와 설경에 반해 눈을 돌리느라 눈바람도 아직은 그리 밉지가 않다.

 

 

 천체관측소가 보이는가 싶더니 오후 1시 5분 연화봉(해발 1383m)에 도착했다.

연화봉에는 사람들이 꽤 많다.

연화봉 표지석 사진을 찍으려 하니 다른 사람 배려를 안 하고 독사진을 찍는 사람이 줄을 서 있는 바람에

그만 포기했다.

그리고 우리 일행이 도착하기 전에 사진을 찍어달라는 사람들을 위해 장갑을 벗으니 금세 손이 아릴 정도이다.

히야! 정말 이름난 바람답군.

 

 오후 1시 20분, 고문님과 신사장님까지 모두 오신 후에 연화봉 표지석 뒤편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고문님께서는 여기에서 내려갈 예정이라 하시니 단체사진은 이걸로 끝이네.

사진을 찍고 나니 신사장님께서 배가 고파 더 이상 갈 수가 없다고 하신다.

어차피 고문님도 내려가셔야 하니 근처에 자리를 잡기로 한다.

 

 

 바람을 피할 마땅한 장소가 없다고 하니 고문님께서 방풍막이 있으니 상관없다고 하신다.

그래서 지난 주에 시험 삼아 써본 방풍막을 뒤집어쓰고 네 명이 오붓하게 앉았다.

이렇게 비닐막 안에 앉아 있으니 밖에 북풍한설이 몰아쳐도 상관이 없겠는걸.

비닐막은 커다란 비닐에 바느질을 해서 아래쪽이 오므라들도록 만든 것인데 아주 간단한 것임에도 이럴 때면 무척이나 유용한 장비인 셈이다.

 

 방풍막 안에서 각자 싸온 점심을 꺼낸다.

밥을 먹기에는 날씨가 추우니 요즘은 간단히 인스턴트 떡국을 가지고 다닌다.

그런데 신사장님은 고구마에 연밥까지 건강한 음식만 싸오셨다.

덕분에 내 떡국 다 먹고 고구마까지 얻어 먹는다.

또 과식을 한 것 아닌가 모르겠다.

바람을 피해 화기애애하게 점심을 먹는 우리를 부러워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린다.

정말 오늘은 방풍막 덕을 톡톡히 보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