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복궁
(1) 조선의 法宮으로 조선 태조에서 세종대까지 지어짐.
태종은 왕자의 난 이후 주로 창덕궁에서 기거함.
(2) 500여 동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임금이 政務를 보는 공간과 私殿의 기능을 함께 함.
(3) 풍수지리상 동으로 낙산, 서로 안산, 남으로 관악산, 북으로 인왕산과 북악산.
동문은 건춘문, 서문은 영추문, 남문은 광화문, 북문은 신무문.
(4) 임진왜란시 소실된 것을 흥선대원군이 복원하고( 그러므로 임진왜란 이후 왕들은 창덕궁에 기거)
고종이 親政을 위해 건청궁을 건립.
을미사변으로 아관파천 후 경복궁은 비어 있었음.
문민정부 후 복원에 나섬.
(5) 임진왜란 이후 왕들은 창덕궁과 창경궁에서 기거하며 정무를 봄.
* 조선은 兩宮 체제 法宮인 경복궁/ 離宮인 창덕궁, 창경궁
* 일본은 광화문을 옮기고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를 지음.(조선의 맥을 끊으려는 의도)
기를 끊으려고 남산 神宮 방향으로 14도 정도 돌려 조선총독부를 지음.
* 근정전과 광화문 사이 공간에서 3번씩이나 박람회를 개최하며 민족적 성지를 훼손.
* 근정문 좌우는 행랑(복도)이고, 동서쪽은 행각( 행사를 위한 칸막이 가능한 구조)
* 지붕 ; 맞배 지붕- 박공지붕.
양 옆이 '人'자 모양의 경사를 이루며 지붕의 완각이 수직으로 잘려진 지붕
팔작 지붕- 위쪽 절반은 박공지붕처럼 세모꼴이고,
아래쪽 절반은 우진각 지붕처럼 네모꼴이다.
용마루, 내림마루, 추녀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우진각 지붕- 네 면에 모두 지붕이 만들어진 형태.
전후면은 사다리꼴, 양측면은 삼각형이다.
cf) 임금이 관련된 곳만 지붕을 6각 또는 8각으로 할 수 있었다.
* 勤政殿은 정도전의 제안으로 이름을 붙인 편전으로 현존하는 최대의 목조건물.
웅장하고 인공적인 아름다움이 잘 표현되어 있다.
반면 근정전 앞의 薄石은 화강암을 그대로 사용하여 자연미를 드러내준다.
인공미와 자연미가 부딪히지 않는 것이 바로 이 공간의 가장 큰 멋.
* 건청궁; 고종이 지은 한옥 공간으로 양반 한옥 구조를 하고 있다.
러시아인 사바친이 설계한 觀文閣이 최초의 서양식 건물.
집옥재는 고종의 서재로 중국풍의 건물.
* 경복궁의 건물 사이에는 이동할 수 있는 공간(다리)이 있었으나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건청궁에서 향원정으로 가는 動線도 다리가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나 6.25전쟁으로 소실된 것으로 보이
고, 지금은 관람객의 동선을 고려해 반대편에 다리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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