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캐리어는 남겨두고 배낭만 메고 롯지를 나선다.
가볍게 콘도르 전망대를 오른다고 했지.
차를 타고 멀리 이동하지 않으니 편하기는 하다.
그리 높지 않은 산자락 앞에 차를 세운다.
안드레를 따라 산길로 접어든다.
이곳이 콘도르 전망대라고 한다.
이 주변에 콘도르가 많이 사는 것일까?
아니면 풍경이 좋은 곳을 콘도르의 시선에서 바라보라는 것일까?
콘도르는 일반적으로 안데스 산맥 주위에 사는 안데스콘도르를 말한다.
안데스콘도르는 최대 맹금류로 알려져 있다.
날개 길이가 2.7 ~ 3.2m에 몸무게 7.7 ~ 15kg 정도로 조류 중 압도적인 덩치를 가졌단다.
콘도르는 사냥을 하지 않고 오랜 시간 활공하며 작은 동물이나 시체를 찾아 먹는 식으로 살아간다.
수명도 길어서 안데스콘도르는 75년 이상도 살 수 있다고 한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콘도르를 '하늘 신의 사자'라 여기며 신성시한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다.
콘도르는 잉카의 말로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라는 뜻이라고 한다.
페루에는 영웅이 죽으면 콘도르로 부활한다는 전설이 있다고.
그러고 보니 페루의 가요 '엘 콘도르 파사'가 생각난다.
쿠스코 음식점에서 들었지.
우리나라에서 들을 때와 느낌이 달랐던 기억이 난다.
나즈막한 산을 쉼없이 오른다.
낮기는 하지만 계속 오르막길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운동은 되겠는걸.
1시간쯤 올랐을까?
설산이 한결 가까워 보인다.
그리고 발 아래 빙하호가 싱그러운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다.
아! 이걸 보고 느끼기 위해 올라온 거구나.
정상(?) 에 올라 환호하며 다함께 사진을 찍는다.
오늘이 파타고니아 아니, 남미여행 마지막날이라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포함되어 있겠지.
평소에 만들어진 그룹끼리 사진을 찍기도 하고, 남정네들끼리 사진을 찍기도 한다.
늘 그렇듯이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듯.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칼을 어쩌지 못 하다가 다른 팀이 올라와 자리를 내 주었다.
바로 내려오려니 좀 서운하기는 하네.
정말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파타고니아 여행 아닐까.
저 아래 점점이 푸른 지붕을 인 건물은 무얼까?
개별 숙소라면 분위기가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에 콘도르 전망대 가볍게 올라갔다 오거나 호숫가를 산책하기 좋은 곳.
우리 같은 단체 여행객들은 정해진 트레킹 일정에 따라야 하니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이런 숙소는 대부분 개인 여행자들이 묵겠지.
다 내려와서 보니 어떤 동양인 여성이 길가 바위에 걸터앉아 있다.
나이가 70 가까이 되어 보이는데 태국에서 왔다고 하네.
혼자서 파타고니아 이곳저곳을 차를 운전하며 다니는 모양이다.
그 나이에 쉽지 않은 일인데...
그 여행자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워 주었다.
사실 남미 여행같이 긴 시간이 필요한 여행은 열정에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대부분 나이가 들면 자신감과 함께 열정도 줄어들지 않던가.
열정과 체력 두 가지가 다 가능한 나이가 언제까지일까 가끔 혼자 생각해 본다.
사람마다 다르기는 하겠지만 70 언저리 아닐까 싶다.
그때까지 열심히 이곳저곳 다녀야겠지.
콘도르 전망대를 알리는 표지판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기로 했다.
운전기사가 사진을 찍어준다고 하는 찰나 우리가 타고온 차가 구르기 시작했다.
근처에 사람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얼마나 놀랐는지...
1월에 무등산 자락 눈덮인 경사로에서 버스가 구르던 사건이 순식간에 오버랩되면서 온 몸이 굳어졌다.
여기서도 운전기사가 브레이크를 제대로 채우지 않은 실수를 한 모양이다.
구르던 차는 근처에 있던 차와 부딪치면서 멈췄다.
당연히 부딪힌 차는 차체가 찌그러들었고.
그런데 운전기사는 놀란 기색도 없다.
여기에서는 그런 일이 별 일 아닌가?
다시 차에 오른다.
이번에는 어딜 가는 거지?
차가 선 곳에서 10여분 평지를 따라 걷는다.
옆에 키작은 들꽃들이 도열해 있는 길이다.
봄 날씨 같은 오늘 걷기 딱 좋은 길이네.
조금 걸어올라가자 폭포가 나온다..
그란데 폭포라고 한다.
시퍼런 물줄기가 물보라를 일으키면서 힘차게 흘러내린다.
높이가 20m에 폭이 14m나 된다고 하던가.
물줄기에 휩쓸리거나 미끄러질까 싶어 가까이는 가지 못 하지만
폭포를 바라보노라니 가슴 속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잠시 세상 소음을 잠재운 폭포 소리에 젖어보는 시간이다.
걸어서 이쪽저쪽 오가면서 구경을 한다.
빙하수 폭포는 트레킹을 하면서도 만나지 못 했지.
방향에 따라 폭포의 수량도 달라 보이고 모양도 달라보인다.
저 멀리 보이는 설산의 눈과 얼음이 녹아 이렇게 흘러내리는 것일텐데 가능하면 인류가 기후 위기를 막아 이런 자연을 영원히 보존했으면 좋겠다.
편리함에 길들여진 인간에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차를 타고 다시 이동한다.
이번에 내린 곳에도 사람들이 꽤 있다.
발 아래를 내려다보니 빙하호수가 있는데 가장자리가 허옇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소금 같아 보인다.
소금 외에 호수를 허옇게 만들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지.
더구나 이 지역은 예전에 지각 변동으로 바다였던 곳이라고 하지 않던가.
내륙에서 鹽湖를 보니 느낌이 묘하다.
볼리비아 우유니에서 소금사막을 보는 것 같다고나 할까.
호숫가에 내려가서 소금을 만져보고 호숫물이 얼마나 짠가 한번 맛을 보고 싶네.
하지만 경사도 있고 내려가는 길도 없어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한다.
아쉽지만 하는 수 없지.
파타고니아와 이제 '안녕'이다.
3박 4일간 비도 만나고, 싸락눈과 싸우고, 바람에 격렬하게 대항했던 시간.
정말 변덕스런 날씨와의 조우도 안녕이다.
나도 모르게 자꾸 고개가 뒤로 돌려지지만 어쩌겠는가.
차는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달린다.
가는 도중 점심을 먹고 기념품도 살 겸 중간에 한번 멈췄다.
2층 카페에 올라가 여행사에서 제공한 도시락을 먹는데 역시 입맛에 잘 맞지 않는다.
도시락을 깨지락거리다가 포크를 내려놓고 가지고 다니던 간식으로 배를 채운다.
기념품 구경도 할 겸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다른 기념품점이 근처에 없어서인지 사람과 물건이 뒤엉켜 있는 것처럼 복잡하다.
물건도 제대로 진열되어 있지 않다.
가짓수도 많고 물건도 쌓여 있는데 마음에 드는 것이 별로 없다.
이것저것 뒤적거리다가 그냥 가자니 섭섭해 냉장고에 붙이는 자석 두어 개 사서 상점을 나온다.
푸에르토 나탈레스에 도착했다.
며칠 만에 기훈씨를 만나니 막내 동생이라도 만난 듯 반갑다.
기훈씨가 머문 곳은 숙소가 좁고 안 좋았다고는 하지만 인솔자 임무를 잠깐 내려놓고 잘 쉬었겠지.
기훈씨는 우리가 점심을 제대로 못 먹었다는 소리에 초밥집에 갔다가 음식을 포장해 왔단다.
마음 씀씀이가 참 고맙다.
햇살이 뜨겁기는 하지만 공원에서 햇살을 받으며 기훈씨가 나누어준 음식을 기분좋게 먹는다.
그리고 나흘간 우리와 함께 한 가이드 안드레와 작별을 한다.
안드레는 우리가 느리게 걸어 답답했을텐데 아주 좋은 팀이었다고 덕담을 해 준다.
36살밖에 되지 않았다는데 전문가다운 면모를 지닌 가이드였다.
알고 보니 이곳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또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까지 왕복 4시간을 오갔다고 한다.
아침 시간에 맞추려면 새벽에 나가야 했겠네.
직업이라고는 하지만 새삼스레 고마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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