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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여행기 40 - 칠레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푼타 아레나스로

솔뫼들 2023. 4. 22.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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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는 푼타 아레나스를 향해 달린다.

파타고니아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비행기를 이용하는데 가장 가까운 곳이 푼타 아레나스이다.

귀국편 비행을 위해 칠레 수도 산티아고를 거쳐야 하는데 푸에르토 나탈레스보다 위도상 아래인 푼타 아레나스로 가는 것이다.

 

 차는 잘 달린다.

자다깨다 반복하다 보니 푼타 아레나스에 도착했다.

거친 땅 파타고니아에 있다 와서 그런지 조용한 도시 푼타 아레나스가 정겹게 느껴진다.

 

 호텔에 짐을 풀었다.

호텔은 낮은 건물인데 아주 단아하고 푸근해 보인다.

게다가 한국계 직원이 있어서 여러 가지 편의를 봐 주니 더 반갑네.

 

 

  푼타 아레나스는 세계 최남단 도시이다.

남극에 관련된 책을 볼 때 많이 등장한 도시가 푼타 아레나스였다.

책을 읽을 때는 그저 내가 갈 일 없는 곳이려니 생각했는데 막상 푼타 아레나스에 오니 감개가 무량하다.

남극으로 금방 달려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들고.

 

 남극의 우리나라 세종기지 대원들도 주로 푼타 아레나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에는 남극 방문 여행 상품도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사실 남극에서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뒤뚱거리는 펭귄과 빙하를 보는 것이 전부 아닐까.

그래도 사람들은 세상의 남쪽 끝인 남극 방문을 한다.

나름대로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하겠지.

 

 여기는 태양이 늦게 퇴근을 한다.

그래서 일몰 사진을 제대로 찍으려면 밤 11시는 되어야 한단다.

풍경 사진에 조예가 깊으신 유사장님이 "잠을 안 잘 수도 없고..." 하시면서 투덜거리신다.

일출과 일몰 사진을 찍으려면 무척 부지런해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지.

새해 첫날 일출을 보러 동해로 떠나고, 그 추운 새벽에 산에 오르는 건 모두 정성이다.

한때 나도 그랬는데 이제 게을러지고 꾀가 나서 핑계를 댄다.

'날마다 뜨는 해인데...'라면서.

 

 

 도시 구경을 하러 발길을 한다.

호텔로 오는 도중 거쳐온 바닷가에 나가 보기로 했다.

바닷가에 가야 남극에 좀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므로.

 

 도시는 비교적 조용했다.

깨끗하고 단정한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그런데 생각보다 여행객이 많이 보인다.

푼타 아레나스는 특별히 볼거리가 많은 도시 같지는 않은데 모두 파타고니아에 오가는 사람들인가?

 

 

 금세 바닷가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바닷가에 만들어놓은 'Punta Arenas' 조형물에 올라 사진을 찍는다.

확실하게 이곳에 다녀왔다는 증표가 되겠네.

우리도 번갈아 증거물을 남겼다.

 

 언뜻 바다를 바라보는데 바다로 뻗은 시설물에 무언가 잔뜩 붙어 있다.

무언가 하고 자세히 보니 새들이 앉아 있는 것이었다.

정말 '덕지덕지'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새들이 많이 앉아 있다.

저 새들은 갈매기일까 가마우지일까?

멀어서 잘 알아볼 수는 없지만 검고 흰 물체를 보며 생각한다.

 

 

 바닷가를 따라 걷는다.

가다 보니 커다란 조형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본 조형물이다.

마젤란 해협을 알리는 조형물도 보인다.

 

 마젤란 해협은 대서양과 태평양을 이어주는 해협으로 푼타 아레나스와 티에라 델 푸에고 섬 사이에 있다.

1520년 스페인의 후원을 받아 항해하던 포르투갈인 마젤란이 최초로 이 해협을 항해했는데 결국 배를 이용해 최초로 세계 일주를 한 탐험가가 되었다.

비록 마젤란이 필리핀에서 살해되기는 했지만 그 후 후안 세바스티안 데 엘카노에 의해 세계 일주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단다.

태평양이라는 이름도 마젤란이 지었다고 하는군.

 

 

 마젤란 해협까지 갔다가 발길을 돌린다.

색색깔 벽화가 그려진 건물도 지나고, 군인들의 단체를 나타내는 건물도 지나간다.

무엇이 있나 궁금해 유기농산물을 파는 가게에 들어갔다.

모든 유기농산물을 무게로 달아 파는 곳이었다.

포장을 하지 않으니 환경에 일조를 하겠구나 싶다.

문을 닫기 직전이라 시간 여유가 없었는데 말린 베리류를 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쉽게 발길을 돌렸다.

 

 이탈리아 음식점은 갈 때도 그렇더니만 올 때도 보니 손님으로 꽉 찼다.

푼타 아레나스의 소문난 맛집인가 보네.

호텔에서 저녁이 제공되지 않으면 이곳에서 저녁을 먹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음식점 입구에 세워 놓은 메뉴판을 들여다보다 이내 길을 따라 걷는다.

 

 

  이번에는 공원으로 발길을 옮긴다.

사람이 어쩌다 오가는 공원에 쭉쭉 뻗은 나무들이 싱그럽다.

여기는 남극이 가까워서인지 서늘한 날씨이지만 소풍을 오고 싶은 공간이다.

나무도 살펴보고 공원 분위기도 느껴보며 공원을 살짝 한 바퀴 돌았다.

 

 호텔로 돌아왔다.

저녁 시간이 되어 식당으로 갔는데 사람들이 안 보인다.

기훈씨가 저녁 시간이라고 다시 '단톡방'에 올렸는데도 사람들이 안 모여 온 사람들만 칠레 대구 멜루사 요리를 먹으려는데 뒤늦게  일행들이 우루루 몰려왔다.

한국 신라면을 끓여주는 곳에 다녀왔단다.

그러면서 라면을 먹고 또 제공되는 대구 요리를 먹는다네.

에구, 위장이 크시군요.

 

 

 밥과 멜루사 요리가 나온 접시를 깔끔하게 비우고 예쁘게 나온 디저트까지 먹은 후 늘 함께 어울리던 사람들끼리 마지막 밤을 기념하는 와인 파티를 한다.

그 동안 고마운 일이 참 많았다.

기훈씨도 그렇고, 재석씨도 그렇고.

유사장님 덕분에 재미도 있었네.

남미 여행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이다.

 

 재석씨에게서는 라면집에서 만났다는 여인 이야기를 듣는다.

라면집에서 만난 한국 여인과 재석씨의 인연을 만들어주려고 사람들이 꽤나 노력을 한 모양이다.

좋은 인연이 만들어지면 어렵게 한국까지 가서 스마트폰을 개통해 다시 남미에 온 보람이 있을 것이다.

라면집에서 처음 보고 서로 호감을 느낀 것 같은데 잘해 보라고 축하와 격려를 해 주었다.

 

 저녁을 먹은 후 무엇이 아쉬운지 밤이 늦었는데 다시 푼타 아레나스의 밤바다를 보러 나갔다.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저기 반짝이는 곳은 어디지?

평소 우리나라에서도 바닷물에 거의 손을 담그지 않았는데 푼타 아레나스 바닷물에 손을 담가 본다.

혹시 남극이 가까우니 바닷물이 차갑지 않을까 하면서.

그런데 그건 착각이었다.

 

 

 바닷가를 거닐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다.

세계의 끝에 있는 칠레의 도시 푼타 아레나스의 밤이 깊어간다.

남극이 가까운 바닷가에 내가 서 있다.

 

 호텔로 돌아와 짐을 정리한다.

내일이면 귀국길에 오른다.

정말 남미의 마지막 밤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크고 작은 사건과 사고가 있었지만 사람 사는게 다 그런 것이겠지.

그런 일보다는 즐겁고 재미있던 일만 추억으로 남기를 바라면서 눈을 감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