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도록 비가 내렸다.
그래서인지 바위산 꼭대기는 더욱 멋스럽다.
산에는 눈이 내렸겠지.
짐을 챙겨 버스에 오르며 빗물로 세수한 풍경을 바라본다.
눈 내린 뒤 싸리비로 쓱쓱 비질이라고 한 듯 선이 생긴 巖山을 보며 버스는 달린다.
다시 오지 않을 곳을 눈과 마음에 담으려 차창으로 보이는 엘 찰튼 풍경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섭섭하다는 듯이 무지개가 떴네.
이제 아르헨티나와는 정말 작별이다.
칠레로 가는 길이다.
아르헨티나 엘 찰튼에서는 육로를 통해 칠레로 간다.
이번에도 휴게소에 잠깐 들렀다 간다.
엘 찰튼 올 때 잠시 들렀던 그 휴게소이다.
이번에 아르헨티나를 떠나니 모두들 남은 아르헨티나 돈을 쓰기 위해 분주하다.
짝꿍은 지난 번 살까 말까 망설이던 레몬케잌을 두 조각 샀다.
새콤달콤 새로운 맛의 세계인 걸.
다시 차에 오른다.
가뭄에 콩 나듯 자동차가 지나간다.
인구가 매우 적으니 오가는 차량이 많을 수가 없다.
파타고니아 여행을 위해 오가는 자동차가 대부분이겠지.
역시나 차창을 통해 보이는 풍경은 황량함 그 자체이다.
1년에 고작 강수량이 200mm밖에 되지 않는다던가.
그러니 식물이 자라기 어려운 환경이 되겠지.
사막화가 가속화되지 않을까 짐작을 해 본다.
그래도 이곳에서 바닥에 깔리다시피 난 풀을 먹으며 동물들이 살아간다.
가축화된 라마며 과나코, 레아 등등이 보인다.
레아는 여기에서 처음 보았다.
남아메리카 원산으로 타조처럼 날지 못하는 새이다.
어미와 새끼인지 레아가 보이자 차를 잠깐 세워 준다.
자세히 보니 크고 작은 새 두 마리가 나란히 서 있다.
어디라고 할 것 없이 가혹해 보이기까지 하는 벌판 가장자리에 철조망이 쳐져 있다.
소유권을 표시하기 위해 그런 것인가 했더니만 동물들이 차도로 넘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다지 높지 않아서 겅충 뛰면 넘을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구나.
칠레는 자국 농축산물을 보호하기 위해 검역이 까다롭다고 한다.
아침에 버스에 탈 때 기훈씨가 이야기를 하더니만 버스에서 다시 한번 자신의 짐에 있는 농축산물을 확인해 보라고 한다.
누룽지에 육포, 컵라면, 홍삼편, 환으로 된 한약 등등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것이 다르다.
사람마다 체력이 다르고 식성이 다르니 준비해온 것도 다르겠지.
오후 3시경 아르헨티나에서 출국심사를 하고 칠레 입국심사를 하기 위해 차들이 줄을 선다.
오래 걸리는 것 같다.
하기는 공항에서 하는 것처럼 여권 확인하고 짐 검사까지 해야 하니 출국심사보다야 더 걸리겠지.
그런데 살짝 긴장이 된다.
내 캐리어를 열어 보라고 하면 어쩐다?
긴장하고 입국 심사를 받는 줄에 섰는데 일행들이 생각보다 수월하게 통과한다.
여행객이니 우리에게 그다지 까탈을 부리지는 않는 모양이군.
휴! 어찌 되었든 잔뜩 긴장했는데 무사히 통과했다.
마지막 다섯번째 나라에 드디어 들어왔구나.
칠레는 2004년 우리나라와 가장 먼저 FTA를 체결한 나라이다.
칠레 하면 떠오르는 건 남미에서 서쪽에 위치하는데 태평양을 접하고 남북으로 무척 긴 나라라는 것이다.
약 4300km에 이르는 길이로 다양한 기후가 나타난다고 하네.
안데스 산맥이 국토 중앙을 가로지르고 있어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이 그다지 많지는 않단다.
그래도 칠레는 남미에서 비교적 정치가 안정되어 있고, GDP도 높은 편이라 남미에서 처음으로 OECD에 가입한 나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칠레를 와인으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다.
유럽 와인이 비싼데 칠레 와인은 가격 대비 품질이 좋아 찾는 사람들이 많다.
칠레 와인이 대량으로 수입된 이후 우리나라에서 와인이 대중화되지 않았을까?
내가 기억하는 칠레는 '파블로 네루다의 칠레'이다.
파블로 네루다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시인이자 정치가였던 파블로 네루다와 관련된 영화 '일 포스티노'도 있다.
두 번인가 영화를 보았던 기억이 난다.
이탈리아의 작은 섬을 배경으로 유명한 시인과 우편배달부의 우정을 그린 아름다운 영화였지.
그러니까 그 나이였을때... 시가
나를 찾아왔다. 모른다. 난 그게 어디서 왔는지,
그게 겨울이었는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인지 나는 모른다.
아니다. 그건 누가 말해준 것도 아니고 책으로]
읽은 것도 아니며 침묵도 아니다.
내가 헤매고 다니던 길거리에서,
밤의 한자락에서,
뜻하지 않은 타인에게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혼자 돌아오는 고독한 귀로에서
그곳에서 얼굴 없이 있는
나의 가슴을 움직였다.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은 멀었으며,
내 영혼 속에서 뭔가 시작되고 있었다.
熱이나 잃어버린 날개,
또한 내 나름대로 해 보았다.
그 불을
해독하며,
나는 어렴풋한 첫 줄을 썼지.
여렴풋한, 뭔지 모를, 순진한
난센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순수한 지혜,
그리고 문득 나는 보았다.
풀리고
열린
하늘을,
유성들을,
고동치는 논밭,
구멍 뚫린 그림자,
화살과 불과 꽃들로
들쑤셔진 그림자,
구부러진 밤, 우주를.
그리고 나, 이 微小한 존재는
그 큰 별들 총총한
허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지.
파블로 네루다의 < 詩 >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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