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푸에르토 나탈레스의 아침이 밝았다.
아침 6시에 트레킹 가이드 안드레가 오기로 했다.
일찌감치 준비를 하고 가이드를 기다리는데 좀 늦네.
푸에르트 나탈레스 마을은 아직 새벽이다.
불을 밝힌 곳이 많아 어제 사납던 날씨를 잊고 마을 구경을 한다.
따스한 느낌의 불빛이 정겹다.
오전 6시 30분 차에 오른다.
파타고니아 트레킹은 트레일의 모양이 알파벳 W자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W트레일이라고 불리는 코스와 파타고니아를 한 바퀴 도는 O트레일이 있다.
W트레일은 보통 78km로 3박 4일~ 4박 5일 정도 걸리고, O트레일은 101km로 7박 8일 정도 걸린다고 한다.
우리는 3박 4일간 W트레일을 걸을 예정이다.
차는 고속도로를 달리다 비포장도로를 덜컹거리기도 하며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으로 달려간다.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은 대부분 국유지인데 일부는 러시아 이민자가 소유를 하고 있다고 한다.
한때 유럽인들이 이곳으로 많이 유입되었다고 하더니 그런 일도 있네.
하기는 유럽인들이 노후를 보내고 싶어하는 곳이 칠레 파타고니아 지역이라고 한다.
지나다 보면 꽤 근사한 주택이 종종 보인다.
오가기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파타고니아 대자연의 품에 안겨 휴식을 취하기에 좋으리라.
중간에 안드레가 방문자 센터에서 입산 신고를 한 후 차는 다시 달린다.
생각보다 거리가 꽤 멀다.
트레킹 시작도 하기 전에 진이 다 빠지겠는걸.
가는 길에 창문 밖으로 양치기들이 말을 타고 가는 모습이 보인다.
양몰이 개들도 함께 있군.
양몰이 개들은 어렸을 때부터 양과 친해지도록 양젖을 먹이기도 하고 양떼에 둘러싸여 지낸다고 하는 걸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거세도 시킨다고 했던 것 같다.
여행을 오기 전 찰스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에서 읽었던 내용이다.
오래 전에 쓰인 책이기는 하지만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었다.
이 여행을 통해 다윈은 자연선택에 관한 이론을 정립했다고 하던가.
양떼들이 우루루 몰려가는 모습이 장관이다.
양이 순한 줄 알지만 고집이 세고 생각보다 사납다고 한다.
그런데도 양이 양몰이 개들과 잘 지내는 것이 신기하기는 하다.
동료라고 생각하는 걸까?
오전 9시쯤 차에서 내려 준비를 한다.
모자도 쓰고, 고글도 착용하고, 스틱도 꺼내고, 장갑까지 껴야 완벽하겠지.
라스 또레스 산장 뒤로 설산이 장엄하게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주 가이드 안드레가 선두에 서고, 보조 가이드 조나단이 맨 뒤에서 걷는다고 한다.
오늘 걸을 거리는 22km라고 했지.
4시간 올라가고 4시간 내려온단다.
휴식과 점심시간 포함해 총 10시간 걸린다고 하네.
그나마 고도를 900m밖에 올리지 않으니 급경사는 아니라는 말이다.
급경사가 아닌 건 다행이지만 짧은 거리는 아니니 좀 긴장이 된다.
드디어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된다.
초반에는 평지길이 이어진다.
안드레를 따라 비장한 마음으로 걸음을 옮긴다.
날씨가 맑아 발걸음이 가볍다.
작은 내를 건너는데 앞장서 가던 안드레가 멈춰 서서 설명을 한다.
한번에 두 사람씩만 건널 수 있는 다리라고.
나무 다리가 약해 보이기는 한다.
다리를 튼튼하게 만들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도 자연을 가능하면 훼손하지 않으려는 이들의 노력이겠지.
한동안 평지가 이어지더니 살그머니 경사길이 나타난다.
산이니 어쩌면 경사가 있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
그런데 가다 보니 말과 사람이 다니는 길이 구분되어 있다.
만국공통어인 그림으로 표현을 해 놓았네.
말도 다니는구나.
힘들면 말을 타고 내려올 수도 있는 건가?
생각보다 속도가 빠른 안드레를 바짝 따라간다.
마음을 놓을 때쯤 가파른 고개가 나온다.
평소에 얼마나 바람이 심하기에 고개 이름이 '윈디 패스'일까?
헉헉거리며 고개에 올라서서 발 아래 빙하 계곡을 내려다본다.
이제는 내려가는 길이다.
내려가는 길이라고 좋아라 할 일이 아니다.
내려가면 다음에 올라가야 한다는 걸 아니까 산행 중에 한참 내려가는 길이 나오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그래도 하는 수 없지.
뚜벅뚜벅 내리막길을 걷는다.
눈 앞에 펼쳐진 설산을 바라보며 걷는 길은 생각보다 힘들지는 않다.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고, 나무가 빽빽한 숲도 지나고, 계곡도 건넌다.
들꽃과 눈인사도 주고받고 계곡 물소리도 들으며 기분좋게 걷는다.
오가며 만나는 서양 트레커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올라!'
이렇게 얼마쯤 갔을까?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린다 싶었더니만 산장이라고 한다.
산장에서 묵은 사람에, 카페에서 잠시 쉬어가는 사람에 산장은 어디든 늘 사람들로 붐빈다.
여기도 마찬가지지.
칠레노 산장에서는 대부분의 트레커들이 쉬었다 간다.
간식을 먹기도 하고, 화장실도 이용하고, 필요한 걸 구입하기도 하고 ...
그런데 화장실 사용료가 1000페소나 한단다.
1달러 정도 되는 셈이니 무척 비싸다.
참 인정머리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지키는 사람이 없어서 모두들 무료로 이용하기는 했지만.
올라올 때 말이 오는 길이 따로 표시되어 있더니만 말이 여기까지 오는 것이었군.
산장에 필요한 물건을 말을 이용해 운반하는 모양이다.
내려갈 때 힘든 사람이 타고 가도 되겠지.
말과 사람들로 칠레노 산장은 만원이다.
30분 정도 쉬었나?
다시 배낭을 멘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안드레는 좀 딱딱한 표정을 짓지만 정확하게 가야 할 길을 알려주고, 뒷사람을 확실하게 기다렸다 간다.
늘 빨리 걸으라고 하고, 'One team'을 강조하는데 뒷사람들이 자꾸 처지는게 신경이 쓰이는 눈치이다.
내가 안드레 뒤를 따라 걷다가 답답해 옆으로 갔더니만 'Thls way'라고 하면서 안드레가 제지를 한다.
야단 맞았네.
가이드가 철저한 것은 장점이겠지.
걷다가 안드레가 계곡 근처에서 발을 멈췄다.
그러더니만 물통의 물을 버리고 물통에 계곡물을 담아 온다.
빙하수라고 하면서 우리 보고도 떠서 마시라고 하네.
친구가 역시 있던 물을 버리고 빙하수를 떠와 한 모금 마셨는데 시원하고 깔끔한 맛이 일품이었다.
내려갈 때 담아 가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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