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오늘의 시 - 내 손바닥 위의 숲

솔뫼들 2021. 6. 27.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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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손바닥 위의 숲

​                         김태정

꽃이삭을 늘어뜨린 상수리
열푸름한 꽃을 피운 회잎나무
흰꽃 잔조롬한 덜꿩나무
연보랏빛 물이 빠진 현호색
그 옆의 작은 개별꽃 노란 금붓꽃

부질없는 세간의 말로나마
이 숲의 삶들을 손바닥에 받아적고 나니
손바닥은 또하나의 숲을 이루었습니다

뒷모습을 불러 세우는 듯한 휘이, 휘요호
새초롬하니 토라진 삐친삐친삐친
어눌한 날 놀리는 쥬비디쥬비디쥬비디
오래된 흉터를 쪼아대는 쑤잇쑤잇쑤잇
넋과 바람을 부르는 휘휘휘요 휘용휘용휘용
그리고, 산밑 길을 돌아 내게로 오는
물소리 바람소리

이 숲이 부르는 진혼가를
손바닥에 받아적고 나니
당신께 보낼 말이 달리 없습니다

쉰 목청으로 우는 산꿩의 간절함과
불러도 불러도 허공으로나 되돌아오는
수취인불명의 메아리와
바위에 돋을새김으로 남긴 물의 발자국과······
그 모든 간절함과 추억을 받아적고 나니
당신께 보낼 전언이 달리 없어
흐르는 물에 가만히 저들을 띄워보냅니다

흙으로 누워 상수리가 되고
현호색 금붓꽃 박새 후투티가 되고
물소리 바람소리가 되어
내 손바닥 위 숲으로 돌아오는 당신
빗돌 아래 제비꽃은 세상에서 가장 낮은 향기로
당신께 타전하는데

오늘밤 달은 없고
이름만 덩두렷한 망월에서
솟 솟쩍, 쓴 울음 삼키는 소리까지 적고 나니
당신께 보낼 것은 단지 슬픔밖에 없어
차라리 입을 다물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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