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오늘의 시 - 모르는 척

솔뫼들 2020. 9. 6.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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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르는 척

                                         이문재

 

     감나무가, 감 꽃잎 놓아준 자리마다 감 빚어내기 바쁜

   감나무가, 매미를 위해 곧추서 있을 리 만무하다.

     기껏해야 이레쯤이니, 날개 닳아 없어질 때까지 맘껏

   울고 가도 좋다고, 감나무가 저렇게 우두커니 서 있을 리

   만무하다.

 

     매미도 그렇다, 일곱 해를 땅속에서 난 매미가, 여린

   날개 말리며 감나무로 오른 매미가 우화등선하기 위해

   오는 것은 아니다.

     일곱 날을 낮밤 안 가리고 ,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우는

   것은 오직 짝을 얻기 위한 것, 짝을 짓기 위한 것, 깨끗이

   말라 죽기 위한 것.

 

     감 익으면 내려놓아야 할 감나무는, 그래서 모르는 척하

   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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