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모르는 척
이문재
감나무가, 감 꽃잎 놓아준 자리마다 감 빚어내기 바쁜
감나무가, 매미를 위해 곧추서 있을 리 만무하다.
기껏해야 이레쯤이니, 날개 닳아 없어질 때까지 맘껏
울고 가도 좋다고, 감나무가 저렇게 우두커니 서 있을 리
만무하다.
매미도 그렇다, 일곱 해를 땅속에서 난 매미가, 여린
날개 말리며 감나무로 오른 매미가 우화등선하기 위해
오는 것은 아니다.
일곱 날을 낮밤 안 가리고 ,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우는
것은 오직 짝을 얻기 위한 것, 짝을 짓기 위한 것, 깨끗이
말라 죽기 위한 것.
감 익으면 내려놓아야 할 감나무는, 그래서 모르는 척하
는 것이다.
...
'오늘의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의 시 - 산에 사는 날에 (0) | 2020.09.20 |
---|---|
오늘의 시 - 소를 웃긴 꽃 (0) | 2020.09.13 |
오늘의 시 - 반 뼘 (0) | 2020.08.30 |
오늘의 시 - 산 (0) | 2020.08.23 |
오늘의 시 - 부패의 힘 (0) | 2020.08.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