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인도 라다크 여행 열이틀째 - 판공초를 떠나며

솔뫼들 2019. 10. 8.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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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형!


 날이 밝기 전 주섬주섬 짐을 챙깁니다.

친구는 자기가 앓는 소리에 다른 사람이 잠을 못 잤을까 봐 걱정을 합니다.

모두 비슷한 상황인데 말입니다.

추워서 잠을 못 잤다는 사람도, 머리가 아파서 잠을 못 잤다는 사람도 있네요.

어차피 숙면을 취하기는 어려운 환경이었지요.

 

 어제 저녁을 먹으며 일찍 레로 돌아가 쉬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에 따라 새벽 5시 30분에 아침을 먹습니다.

정말 음식을 입에 우겨 넣는 상황이군요.

그래도 새벽잠을 반납하고 아침을 준비해 주시느라 애쓰신 숙소 주인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숙소를 나섭니다.

평생 살아오신 태도가 표정에 드러나는 것 같은 분들입니다.

주어진 일에 성심성의껏 임하는 분들과 숙소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습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봅니다.

제 남은 생에 여기를 다시 오는 일은 쉽지 않겠지요.



 새벽 바람이 차갑습니다.

차에 올라 어제 덜덜거리며 온 길을 거슬러 갑니다.

역시나 사라진 길을 찾느라 두리번거리며 차는 힘겹게 앞으로 나아갑니다.

모래에 바퀴가 빠지기도 하고, 여러 번 물을 건너는 이런 길에서는 시속 10km 정도밖에 속도가 안 난다더군요.


 오른편으로 이어지는 호수는 오늘도 눈이 시리도록 파란색을 띠고 있습니다.

감청색 잉크 한 방울 물에 떨어뜨리면 이런 빛깔이 나올까요?

'판공초'는 티베트어로 '길고 좁은 마법의 호수'라는 뜻이라지요.

폭에 비해 정말 길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호수 빛깔이 뇌리에 박혀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가다가 잠시 쉬어 갑니다.

미련이 남은 사람들은 다시 호숫가로 달려가고 일부는 화장실을 찾아 분주합니다.

고산지대에 오면 고산증 때문에 물을 많이 마시게 되니 당연한 일이지요.

다행히 여기 화장실은 돈을 받지 않는군요.

여행하는 동안 화장실 사용료로 지불되는 돈도 꽤 됩니다.

아낄 수 있는 돈이 아니니까요.


 이 부근은 텐트형 숙소와 음식점, 카페 등이 줄지어 있습니다.

해발고도가 높기는 하지만 여기도 조만간 관광지처럼 변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물질문명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는 것이지요.

판공초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판공초 초입인 스팡믹에 머무는 모양입니다.

여기에서 '세 얼간이'라는 영화를 찍었다고 하지요.

잠깐이기는 하지만 눈에, 카메라에 판공초를 다시 한번 담습니다.



 차는 포장도로에 들어서서 속도를 올립니다.

그래 보아야 시속 20km 정도이지만요.

가는 길에는 가능하면 창 밖을 안 보려고 합니다.

아래쪽으로 깎아지른 벼랑에서 몇 번이나 추락한 자동차를 보았거든요.

얼마만에 한번씩 나타나는, 종잇장처럼 우그러지고 부서진 자동차를 보니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도로는 좁고 차는 서로 비켜가야 하고...

도로 옆에 돌멩이를 박아 놓은 것이 도로 경계선 같기는 한데 사고 예방에 아무 도움이 안 되는 걸 왜 해 놓았을까 싶습니다.


 가다가 차가 멈추었습니다.

누런 빛을 띤 동물들과 사람들이 놀고 있군요.

마못을 가까이에서 본 것은 처음이라 신기합니다.

생각보다 크기가 크네요.

초식동물인 마못은 사람들이 주는 초콜릿 등을 잘 받아 먹습니다.

여행객들이 주는 것에 적응이 되었나 봅니다.



 마못과 놀다 다시 차에 오릅니다.

이제 창라를 향해 갑니다.

창라는 해발 5360m로 차로 오를 수 있는 세계에서 세번째로 높은 고개라지요.

차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인 카르둥라를 넘어서인지 긴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이제 고소에 적응이 되었다 방심하고 약을 안 먹었더니만 머리가 어지러운 것은 물론 땅이 마구 흔들리는 느낌이 드는군요.

내 몸도, 지구도 지진이 나서 흔들리는 것 같습니다.

다리가 휘청거려 걷기도 힘이 드는군요.


 그래도 휴게소에 들어가 일행들과 밀크티를 한 잔씩 합니다.

그리고는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 바로 차에 오릅니다.

일행 중 고산증에 제가 가장 취약한가 봅니다.

늘 '저 아파요.',' 저 힘들어요.'를 외치던 일행도 얼굴색이 안 좋기는 하지만 잘 버티고 있네요.


판공초 가는 길



 이제 내리막길이 주로 이어지겠지요.

그저 눈을 감고 시간이 가 주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차는 호텔로 바로 가나 했더니 어느 곰파로 가는군요.

카페 주인인 한국인과 친밀한 린포체를 친견할 기회를 만든다고 합니다.

곰파를 오르는데 몸이 말을 안 듣습니다.

에베레스트 막판에 고산증으로 다섯 발자국 걷기도 힘들었던 것과 같은 상황이군요.

짧은 오르막길을 가다가 주저앉아 쉬고 가다가 주저앉아 쉬고...


 겨우 곰파 안으로 들어가 마당 한쪽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어디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동자승이 계시네요.

가이드에게 들으니 '다시 태어나도 우리'라는 다큐 영화에 등장했던 주인공이랍니다.

정말 많이 컸군요.



  '다시 태어나도 우리'

제목만 언뜻 들으면 남녀간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 같습니다.

하지만 세속적인 사랑이 아니라 老軀를 이끌고 제자로 만난 린포체를 부모 이상으로 보살피고 성인이 되도록 뒷바라지를 하는 스승과 린포체였던 제자의 이야기입니다.


 인도 북부 라다크에서 한 아이가 태어납니다.

그 아이가 린포체로 인정을 받아 교육을 받는데 전생에 기거하던 절에서 시람들이 찾아와 확인을 해 주어야 한답니다.

그런데 그 절에서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절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인도를 떠돌며 자신이 전생에 살았던 절을 찾아 헤매기도 하는 둥 우여곡절을 겪습니다.

힘든 인생이지요.

하지만 그 어려운 길을 노스승과  어린 린포체는 묵묵히 해 냅니다.

사실 동자승보다는 어린 린포체를 정성으로 보살피는 노승의 모습이 참으로 지극해 눈물겨웠던 기억이 납니다.




 꽤 한참 기다렸는데 소식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기다리던 린포체가 기도하러 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아쉽지만 발길을 돌립니다.

린포체를 만나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거든요.

오늘은 점심이 좀 늦었지만 레의 음식점에서 라다크 음식을 먹기로 합니다.

현지 음식도 당연히 먹어 보아야지요.

음식도 문화이니 입맛에 맞든 안 맞든 말입니다.


 취향에 따라 템뚝과 뚝바, 그리고 피자를 시킵니다.

하나는 칼국수 비슷하고, 하나는 수제비 비슷하네요.

저는 그리 맛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우리나라 만두 비슷하다는 모모를 먹어 보고 싶습니다.


 이제 호텔로 들어가 쉽니다.

하루에 8시간 차량에 시달리는 강행군 정말 쉽지 않습니다.

저는 진작부터 내일과 모레 이틀에 걸쳐 이어지는 초모리리 방문을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저야 그렇지만 친구의 의견을 들어야겠다 싶었는데 친구도 이제 자신이 없다는군요.

평소에 안 그러시던 어머니께서 여행 전 찾아뵐 때 제발 하나라도 더 보겠다고 무리하지 말라 당부를 하시더니만 이런 일이 발생했습니다.

무언가 예견하셨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결정을 하고 나니 긴장이 풀어지는군요.

초모리리 가는 길은 포장도로라고 하지만 왕복 14시간입니다.

호텔에 남아 한가하게 레 주변 구경도 하고 쉴 예정입니다.

결국 공식적인 우리 여행 일정은 이렇게 마감을 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