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인도 라다크 여행 일곱째날 - 누브라밸리를 향해

솔뫼들 2019. 9. 24.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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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형!


 오늘은 2박3일 일정으로 짐을 챙기라는 가이드의 말이 있었습니다.

누브라밸리를 거쳐 뚜루뚝으로 간다고 하더군요.

본래 일정에서 순서를 바꾸어 움직인다고 합니다.


 간단히 아침을 챙겨 먹고 차에 오릅니다.

오늘은 또 얼마나 차에 시달릴까 미리 걱정이 됩니다.

게다가 차로 오를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개라는 카르둥라(해발 5606m)를 지나가야 합니다.

미리 대비한다고 고소방지약을 먹었지만 걱정이 되기는 마찬가지네요.

그래도 제가 선택한 일이니 당당히 맞서야지요.

여행을 시작한 지 이레째입니다.


 차는 레를 벗어나 달립니다.

달린다고 해도 우리나라 고속도로를 달리는 상상을 하면 곤란합니다.

덜컹덜컹 간다고 해야 맞겠지요.

도로 상태 안 좋지, 간혹 길이 좁아 교행이 안 되는 곳에서 앞에서 오는 차 기다려야 하지, 끊임없이 구불구불 九折羊腸이지...

대략 시속 20km 정도를 달립니다.



 가다가 잠깐 쉬어 갑니다.

이렇게 험한 자연인데도 생명력은 여전하군요.

노란색, 분홍색 자잘한 꽃들이 무리지어 피어 있습니다.

뭉쳐야 산다는 듯이 말입니다.

꽃을 보면서 기운을 얻습니다.


 아침에 출발할 때 파랗던 하늘이 흐려집니다.

그러더니 멀리 설산이 구름 아래 보이네요.

설산과 구름 색깔이 비슷해 보입니다.

먼곳에는 눈이 내릴 수도 있겠군요.

모두 차에서 내려 설산을 카메라에 담습니다.

설산을 처음 본 것처럼 말입니다.


 사실 인도에 와서는 델리 이틀을 제외하고는 덥다는 생각을 별로 안 합니다.

차에서 답답하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여름처럼 덥지는 않지요.

보름간 인도로 확실하게 피서를 온 셈입니다.

더구나 간간이 보이는 설산은 보는 것만으로 서늘해지지 않나요?



저 울울창창한 결빙의 침묵을

보라, 끝없이 막막한 산등성이 너머

높게 치솟은 영하의 봉우리들


가파른 적막이 깃든 은백의 능선 따라

고요를 움켜쥔 새떼가 회색 멀미를 일으킨다


산은 까마득히 높고 몸은 시리도록 맑은데

협곡 사이 몰아치는 긴장의 바람결


누구도 감히 닿을 수 없는 산정의

위태로운 절대 고독 아래


풋사랑의 몸짓도, 오랜 노역의 흔적도

분노의 칼날마저 하나의 점에서

말없이 반짝이는 곡선으로 이어질 뿐


저 단단하게 벼린 바위의 대열 앞에서

하늘과 바람과 사람 모두

허공이 그리는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무욕의 눈부신 그물에 걸리는 찰나

전신을 관통하는 전율, 아스라이 깊다


              문현미의 < 설산 > 전문


 다시 차에 오릅니다.

얼마쯤 갔을까?

앞차가 섭니다.

덩달아 서고 보니 여기가 그 유명한 카르둥라입니다.

오가는 사람들이 꽤 많군요.

다들 멀쩡해 보이는데 저는 아무리 약을 먹었다고 하더라도 어질어질합니다.

그래도 차에서 내리지만 표지석 사진만 대충 찍고 얼른 다시 차에 오릅니다.

몸의 움직임을 적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니까요.



 삭막하다, 황량하다, 사막 같다, 거칠다...

보이는 주변을 보고 떠오르는 단어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곳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눈으로 확인하는 건 다른 느낌이더군요.


  몇 번이나 앞차가 서는 바람에 덩달아 섭니다.

사진을 찍는다는 이유로 수시로 서는 앞 차량이 살짝 불편해집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랑 다니면 이런 불편함이 있군요.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끼리 다녀야 여러 가지로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풍경이 지나갑니다.

그런데 저건 무슨 일일까요?

두 강이 만나는데 한 쪽은 투명하도록 맑은 물이고 다른 쪽은 흙탕물입니다.

두 물이 만나면 어느 쪽이 이길까요?

아이처럼 단순한 생각을 하면서 혼자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오늘은 그래도 아주 오랜 시간 차를 타지는 않습니다.

어느 덧 누브라밸리에 도착했군요.

비슷한 숙소가 줄지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중 한 곳에 들어갑니다.

'코라 밸리 캠프'가 우리의 숙소입니다.

정원도 널찍하고 정원 안으로 물이 흐르는 운치 있는 곳입니다.



 숙소 안 정원에 흐르는 물이 아주 맑습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놓은 개울입니다.

맑은 물이 흐르는 걸 보면 우선 손으로 만지고 싶지요.

그런 제 마음을 아는 것처럼 가이드가 말하네요.

이 물은 식수원이라 손을 담그면 안 된다고 말이지요.

자세히 보니 한쪽에 영어로 식수원임을 알리는 안내문이 적혀 있군요.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풍경입니다.


 우리는 오늘 텐트에서 숙박을 합니다.

저는 국내에서 캠핑을 할 때는 텐트에서 숙박을 해 보았지만 이렇게 외국 여행 중 텐트 숙박은 처음입니다.

몽골 여행을 하면 게르라는 텐트에서 자야 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텐트 숙박시설은 아무래도 시설이 열악하지요.

온수가 거의 나오지 않으니 샤워는 고사하고 머리를 감을 수도 없습니다.

그냥 고양이 세수를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지요.

전기 사용도 시간 제약이 있습니다.

저절로 게을러지겠군요.


 정원에서 쉬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누군가 가이드가 말한 대로 하면 총 16일의 여행 중 하루가 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고산증과 여러 가지 증상으로 다들 빌빌거리는데 총기가 반짝반짝하네요.

나중에 들으니 가이드가 실수로 3박4일 일정을 2박3일로 착각을 해서 이야기를 했답니다.

가이드가 참 헐렁하지요?

지하철에서 일행과 헤어지기, 스마트폰 로밍 안 해서 정확히 스리나가르행 비행기가 뜨는지 마는지 오락가락한 일, 이번 일정 오류 등등.

엄청한 실수는 아니지만 실수도 참 다양하네요.

인간적으로 허허실실 하는 면이 좋기도 하지만 답답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