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타 샘물이라는 이정표를 지나니 오전 7시 40분, 드디어 두타산( 해발 1353m) 정상이다.
이 공간을 오롯이 혼자서 즐기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벅차오른다.
와! 목청껏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다.
하기는 아무도 없으니 소리를 질러도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없기는 하네.
두타산(頭陀山)은 강원도 삼척과 동해에 걸쳐 있는 산으로 부처가 누워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여 그런 이름을 얻었다.
'頭陀'는 '의식주에 대한 탐욕과 세상의 모든 번뇌망상을 버리고 수행, 정진한다.'는 불교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고 한다.
댓재에서부터 두타산을 거쳐 청옥산까지 이어지는 등줄기는 백두대간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山峰이다.
두타산은 정상부가 뾰족하고 날렵한 반면 청옥산은 완만하고 묵직한 느낌을 준다.
두타산은 삐죽 솟아 있어 오르기 힘들다 하여 산꾼들 사이에 우스갯소리로 '頭打山' 즉 '골 때리는 산'이라고도 하니 얼마만큼 오르기가 고생스러운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동해를 끼고 있는데다 우뚝 솟은 산세가 예사롭지 않아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으로 지정이 되었으니 산꾼이라면 한번쯤 꼭 찾아야 할 산이 바로 지금 내가 서 있는 두타산이다.
두타산은 박달령을 사이에 두고 청옥산과 마주하고 있다.
두 산에서 흘러내리는 바른골과 박달골이 합해지는 곳에 雙瀑을 만들어놓고 무릉계곡에 이르는데 무릉계곡은 그 경관이 뛰어나 명승지로 지정이 되었다.
무릉계곡이라는 이름은 이승휴가 은거할 때 계곡의 아름다움에 반해 중국의 무릉도원 같은 仙景이라 하여
그렇게 이름 짓고 극찬했다고 하는 말이 전해져 온다.
4년 전에 왔을 때 보이지 않던, 백두대간과 두타산 정상을 알리는 표지석이 눈에 들어온다.
얼른 그쪽으로 걸어가니 표지석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이 있네.
자욱하게 깔린 雲海!
해돋이를 못 본 아쉬움을 달래주고도 남을 장관이다.
부지런히 스마트폰 셔터를 누르며 감격에 겨워 환호성을 지른다.
혼자 보기 아까운 풍광이다.
두타산 정상, 여기 이 자리에 혼자 서 있다는 사실이 감격적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운해는 수고했다며 나를 적극 환영해 준다.
덕분에 눈[目]이 호사를 하는 시간이다.
사실 새벽에 산행을 해도 운해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기억에 남는 운해는 덕유산 종주시에 설천봉에서 만난 운해와 전북 진안 운장산에서 만난 운해였다.
두번 다 얼마나 환상적이었는지 오래 되었는데도 기억이 생생하다.
운해가 내 발길을 붙잡는 바람에 그 풍경 속에 한참 머물렀었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실실 추워진다.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이 식으면서 금세 체온이 내려간다.
겉옷을 하나 덧입고 반장갑까지 꺼내 끼었다.
그러고 나서 여유를 갖고 주변을 둘러보고 있으려니 로미가 도착했다.
얼른 운해를 가리키며 '오늘의 행운'이라고 했다.
로미 역시 운치있는 운해에 정신을 빼앗긴 모양이다.
우리 둘만 있는 두타산 정상에는 이 아침 사뭇 정적이 흐른다.
산에 가거든
그 안에 푹 젖어 보아라
가만히 귀를 대고
산의 맥박이 뛰는 소리를 들어보아라.
세상의 모든 언약이 서서히
깨어지고 있는 소리를
산에 가거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풀바람이 되어 보아라
고만고만한 인연들이 모여
제각기 만들고 있는 이야기를
들어보아라.
산에 가거든
그 경사진 산맥의 늙은 생애를,
울음소리를 들어보아라
주인 없는 무덤가에 피어난
탄식 같은 햇살 한 움큼
소리 죽여 울고 있는 소리를
들어보아라
김지헌의 < 산에 가거든 > 전문
배가 고프다.
새벽 5시쯤 무얼 먹기는 했지만 계속 오르막길에서 헤매느라 에너지 소모가 많았겠지.
바람을 피해 자리를 펴고 아침을 먹기로 했다.
나는 주먹밥, 로미는 빵.
스프로 따뜻하게 속을 달래는데도 와들와들 떨린다.
강원도 삼척이 서울보다는 당연히 기온이 낮고, 여기는 해발고도 1400m 가까이 되는 곳이니 섭씨 8도 이상 떨어질텐데 산중이니 더할 것 아닌가.
거기에다 하루 중 가장 기온이 내려갈 시간이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입에다 우겨넣다시피 주먹밥을 먹고는 자리를 정리했다.
그때 사람들 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린다.
아까 갈림길에서 들리던 웅성거림이 이 사람들 소리였나 보다.
오늘 산행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네.
건장한 남정네 셋이 올라왔는데 무릉계곡 방면에서 오전 3시 30분에 출발했단다.
우리보다 더 일찍 출발해 무려 5시간쯤 걸린 셈이다.
그 사람들도 운해를 보면서 감탄을 거듭 한다.
우리도 함께 찍은 사진이 없어 품앗이로 사진을 찍어 주면서 풍광을 즐긴다.
그 사람들이 자기네는 두타산이 초행이라며 박달령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묻는다.
이 산을 자주 다니는게 아니니 나도 알 수가 없다.
지도를 꺼내 보여주면서 설명을 하니 우리 보고는 어느 코스로 갈 예정이냐고 한다.
우리는 청옥산을 거쳐 연칠성령에서 하산을 할 거라고 하니 대단하다며 엄지를 치켜 세우는군.
일행 중 멀쩡해 보이는 한 사람이 '저질' 체력이라 자기네는 불가능하다고 하면서 키득키득 웃는다.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갑자기 속으로 어깨가 '으쓱' 해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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