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5시 30분, 두타산을 향해 출발한다.
지도상으로는 2시간 걸린단다.
천은사에서부터 두타산까지 이정표상으로는 5.1km.
천은사에서 쉰움산까지 걸었으니 적어도 1/3은 오지 않았을까.
날이 좀 훤해졌다.
랜턴을 끌 정도는 아니지만 사물이 언뜻언뜻 구별이 되는 시간이다.
혹시나 두타산 오르는 길에 장엄한 해돋이를 볼 수 있을까 기대를 했는데 구름이 낮게 깔려 희망을 접으라고 말하는 것 같다.
눈 감고 있다 해도
새벽은 열리기 마련이다.
반짝이는 깨우침이 찌르르 떨려오고
가려운 속살 헤치고
빼꼼이 내다보는 얼굴.
입 다물고 있다 해도
새벽은 싱싱할 뿐이다.
잉어처럼 몸이 더운 우리들의 어깨 너머
나직한 비명소리로
바람이 인다.
강세화의 < 새벽 > 전문
그래도 주변 경치에 반해 눈이 바쁘다.
삐죽삐죽 늘어선 바위 병풍에 소나무가 더해져 산수화 한 폭을 보는 느낌이고, 가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돌탑들도 거기 한 풍경을 더한다.
로미는 뒤에서 걸으며 아직 걷히지 않은 어둠 때문에 제대로 된 경치를 감상할 수 없는 것을 아쉬워 한다.
환한 날 보면 쉰움산은 또다른 맛으로 우리를 반하게 하리라.
가는 길에는 계속 소나무와 바위가 만들어내는 풍광이 눈길을 잡아끈다.
14년 전 기억은 온데간데 없고 새삼스럽게 감탄하느라 입을 다물 수가 없네.
이런 기운이 무속인들을 불러모았을 수도 있겠구나.
바위가 있는 산이 氣가 세다고 하지 않던가.
사진이 잘 나오든 말든 연신 스마트폰을 들고 바쁘다.
부옇게 밝아오는 것이 해가 뜰 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낮게 깔린 구름 때문에 해돋이는 포기했지만 분위기라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해 본다.
동해에서 떠오르는 해를 산 위에서 본 것도 참으로 오래 되었네.
마음을 편하게 먹고 출발했는데 여기도 내리 오르막길이다.
하기는 쉰움산보다 두타산은 해발고도가 700m쯤 높으니 당연한 일인데 긴장을 풀었다가 나타나는 된비알이 한층 힘겹기만 하다.
쉰움산에서 무언가 먹기는 했지만 그래도 허기가 느껴지는지 로미는 뒤따라 오면서 아까 편의점에서 컵라면이라도 먹을 걸 그랬단다.
나보다 젊은데도 벌써 지치나 보네.
쉬다 걷다를 반복한다.
발 밑에는 도토리가 잔뜩 떨어져 있다.
참나무 종류가 많다는 말이겠지.
다람쥐란 녀석도 도토리의 떫은 맛 때문에 밤을 더 좋아한다고 하지만 적어도 식량 걱정을 하는 일은 없겠군.
오기 쉽지 않은 코스이니 사람들 손이 타지 않는가 보다.
이제 헤드랜턴을 꺼도 되겠다.
사방으로 퍼진 아침 햇살에 사물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막 단풍이 들기 시작한 나무도 그렇고, 두타산에서 청옥산으로 이어지는 능선도 그렇고.
아! 이렇게 상쾌한 느낌이라니...
온몸에 찌릿찌릿 기분 좋은 기운이 흘러들어가는 것 같다.
다시 앞만 보고 걷는다.
'중간에 갈림길이 있었는데...'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사실 산에서 100m는 왜 그리 먼가.
도시 평지에서는 엎드리면 코 닿을 곳이건만 지친 몸으로 산을 오를 때 100m는 천리보다 멀게 느껴진다.
오전 6시 50분, 무거운 몸을 질질 끌다시피 하고 걷다 보니 갈림길이 나왔다.
무릉계곡에서 두타산성을 거쳐 올라오는 길이다.
뒤에 오는 로미에게 갈림길이라고 소리친다.
그때 어디선가 웅성웅성 사람 소리가 들린다.
우리처럼 꼭두새벽에 산행을 시작한 사람이 있는게지.
이정표는 엉망이다.
거리 표시는 다 지워졌고 한쪽 방향을 가리키는 표지판은 떨어져 나갔다.
여기는 동해 관할인가 아니면 삼척 관할인가?
이정표가 엉망이니 거리와 소요시간 표시는 믿어도 되나 의심이 된다.
쉰움산에서 허위허위 1시간 넘게 걸었는데 두타산까지 1시간이 훨씬 넘게 남았단다.
갑자기 기운이 빠지는걸.
그래도 하는 수 없지.
대신 걸어줄 사람도 없고 여기에서 하산할 수도 없으니 다시 물 한 모금 마시고 힘을 내 보자.
그나마 산봉우리에 걸쳐진 구름이 멋진 풍경을 연출해 힘을 내게 해 준다.
산뜻한 하늘과 봉우리에 걸린 구름, 그리고 끝간데 없이 넘실넘실 이어진 능선을 배경으로 서로 사진을 찍어준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도 멋지지만 높은 구름이 걸려 있는 하늘이 훨씬 근사한 풍경을 자아낸다.
그런 면에서 오늘 날씨는 기대 이상이다.
힘들여 여기에 오니 이런 풍광을 만날 수 있는 것이겠지.
동해에서 올라오는 찬란한 햇살에 눈이 부신 아침이다.
다시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멀리 보이던 봉우리가 가까워졌으니 정상도 멀지는 않으리라.
쉬지 않고 발걸음을 옮긴다.
로미는 어디에 오는지 소리가 없는 걸 보니 많이 처졌나 보다.
험하지 않은 길이니 편한 마음으로 앞으로 향한다.
'여행기, 산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시 한번 도전을 - 두타, 청옥 종주 (4) (0) | 2018.10.15 |
---|---|
다시 한번 도전을 - 두타, 청옥 종주 (3) (0) | 2018.10.12 |
다시 한번 도전을 - 두타, 청옥 종주 (1) (0) | 2018.10.10 |
영덕 여행 6- 울진 금강소나무숲길 트레킹 (0) | 2018.10.05 |
영덕 여행 5 - 후포항, 고래불 해수욕장에서 (0) | 2018.0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