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가 보아야지 마음 먹었던, 그래서 수없이 자료를 찾아 보았던 섬.
靑山島로 떠난다.
말 그대로 푸른 섬이다.
산도 푸르고, 바다도 푸르고, 하늘도 푸르러 그런 이름을 얻었다던가.
청산도는 2007년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로 선정이 되었다.
슬로 시티는 이탈리아에서 슬로 푸드 운동으로 시작되어 발전이 되었고.
'느리지만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이 운동은 그 후 세계적으로 느림의 미학을 전파하며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우리나라도 그 후 담양이나 예산, 증도 등 여러 곳이 슬로시티로 선정되어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는 섬, 슬로시티 청산도에서 어떤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청산도는 전남 완도군에 속한 작은 섬이다.
하늘에서 보면 청산도는 둥근 소라 모양을 닮았다고 한다.
인구가 2,500명 남짓 되며 대부분 어업이나 소규모 농업에 종사한다.
이 섬에서 전통적인 것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이 자못 궁금해진다.
서울 센트럴시티에서 첫차로 5시간 걸려 완도로 간다.
완도항에서 청산도까지는 배로 50분.
걱정되어 멀미약까지 준비했는데 잔잔한 호수 같은 바다 위를 배는 날듯이 간다.
한 나절이 넘게 걸리니 꽤나 먼 거리이지만 한껏 들뜬 때문인지 봄나들이 여행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다.
배를 타고 예약한 숙소 사장님께 전화를 드리니 도청항에 내리면 바로 건어물 가게로 오라고 하신다.
배에서 내리자마다 가게를 찾으니 배에서 바로 옆자리에 계시던 분이 바깥 사장님이라고 하시네.
덕분에 차를 얻어 타고 바로 청산도 게스트하우스로 향한다.
알록달록 외관이 예쁜 청산도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바람을 쐬러 나간다.
텃밭에 노랗게 장다리꽃이 피었다.
어릴 적에 장다리꽃을 꺾어 먹던 기억에 저절로 입에 침이 고인다.
후배는 얼른 한 송이 꺾어 내게 내민다.
남의 밭에서 이래도 되나 모르겠네.
이 정도는 애교라 괜찮다는 후배 말에 줄기를 입에 넣고 씹는데 달큼하고 푸른 향기가 이내 입안에 퍼진다.
금세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마법의 열차라도 탄 듯 기분이 둥둥 떠오른다.
장다리꽃을 구경하고 꺾어 먹으며 놀다가 지리해변으로 슬슬 내려간다.
지리는 마을이 형성되었을 무렵 마을 가운데 큰 연못이 있어서 그런 이름을 얻었단다.
노을이 아름답다는 지리해변에는 방풍림이 자리잡고 있고 그 뒤로는 갈대가 무성하다.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서 묵힌 땅에 갈대가 그렇게 자랐다던가.
그것도 나름대로 생태계 균형을 이루는데 한 몫을 했겠지.
바닷가에 도착하니 한 사람이 바위에 앉아 낚시를 하고 있다.
호기심이 많은 후배가 무슨 물고기를 낚느냐고 하니 금세 숭어가 잡힌다고 한다.
밑밥을 뿌려 놓았다고 하는데 가만히 보니 숭어가 물을 차고 뛰어오르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정말 낚싯대만 던져 놓아도 금세 어망이 가득 찰 것만 같다.
옆에 앉아 말동무를 하면 회를 얻어 먹을 것 같은데 그것보다는 해변에서 노는게 더 좋지.
모험심 많은 나는 후배를 남겨 두고 바위가 첩첩 쌓인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바위에 올라 커다란 바위 사이로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늘 그렇듯 상념에 잠긴다.
언젠가부터 수없이 바다를 따라 난 길을 걸었다.
많은 추억이 파도를 타고 넘실거렸지.
쏜살같이 달려가는 기억을 붙잡아 앉히며 '지금'을 생각한다.
내 발이 놓인 지금 여기.
바위를 타 넘어 가려다가 물이 들어오는 느낌이라 발길을 돌린다.
후배는 아직도 낚시꾼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바로 앞에 있는 숙소 주인이 여행자에게 어디를 가면 좋은지 친절하게 알려 줄 거라고 하기에 가서 물었더니만 우리가 다른 숙소에 묵는 줄 알고는 그 주인한테 가서 물어보라고 했다나.
그래서 그 사람이 외지인일 거라고 하며 웃었다.
적어도 청산도 출신이라면 자기 고향을 찾은 여행자에게 그렇게 무관심하고 불친절하지는 않겠지.
요즘 같이 SNS가 발달한 시절에 한 마디 친절이 자신에게 어떻게 돌아오는지 생각하지 못 하고 코 앞만 바라보는 우물 안 개구리 아니었을까.
모래사장이 펼쳐진 해변으로 걸어간다.
푸른 해초가 널려 있고,
조개 껍데기가 발에 걸리고,
계절이 이른데도 불구하고 가는 모래가 맨발이 되라고 부추기는 곳.
막 달리고 싶기도 하고,
소리치고 싶기도 하고,
파도와 함께 장난하고 싶기도 하고...
'힐링'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럴 때 쓰는 단어이겠구나.
바닷가에 있는 매끈한 조약돌을 다듬는 것은
거친 정이나 끌 같은 도구가 아니라
날마다 말없이
쓰다듬어 주는 파도의 손길이니라.
- 법정 스님 -
조개껍데기를 주워 뾰족한 부분으로 후배와 함께 모래사장에 글씨를 써 본다.
내가 열심히 써 놓아도 내일이면 파도가 다 지워버릴 테지만 지금 이 순간 생각나는 아름다운 말, 글귀, 그리고 사람을 떠올리면서.
그렇게 한참을 놀다가 후배가 사방치기를 해 보자고 제안했다.
내가 대구 여행을 떠올리면서 생각처럼 몸이 따라주지 않더라고 하니 그래도 우리끼리 재미로 하는데 어떠냐고 한다.
후배가 사각형으로 금을 그리고 작고 둥근 돌을 주워다 금에 걸치지 않도록 발로 찬다.
살짝 젖은 모래 위에서 돌을 찼을 때 어느 속도로 움직일지 예측을 할 수가 없다.
물론 예측이 잘 맞으면 도리어 재미가 없겠지만.
번갈아 몇 번 뛰다가 숨을 몰아쉬며 마주 보고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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