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호수를 품은 산, 호명산 (2)

솔뫼들 2017. 9. 7. 23:48
728x90

 

 해발 632m의 虎鳴山은 옛날 산림이 우거지고 사람들의 왕래가 적었을 때 호랑이들이 많이 서식하여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려오곤 하였다는 데서 명명되었다고 한다.

호명산은 정상부에 호명호수가 있어서 유명하다.

호명호수는 양수식 발전을 위해 조성된 인공호수이지만 산과 어우러져 또다른 매력을 선사하겠지.

자동차를 이용해 호반을 즐길 수 있으니 우리 같은 산꾼 외에도 찾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오전 11시, 청평역에서 보았던 한 무리의 사람들을 앞질러 산길로 접어들었다.

예상했던 대로 길은 바로 곤두서 있다.

약간의 물기가 있는데다 돌멩이까지 있는 산길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게다가 여러 명이 지나지 못할 정도로 길이 좁으니 한쪽으로 비켜서서 쉬기도 쉽지는 않군.

산꾼이 많다면 저절로 길이 넓어졌을텐데 오르는 동안 전망도 없는데다 된비알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산은 아닌 모양이다.

 

 

 

  숨을 헐떡이며 올라간다.

바람이 시원해 좋다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고.

틈틈이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신다.

청평역에서 요기를 안 했으면 고생 좀 했겠는걸.

그나마 단팥빵 먹은 기운으로 올라가고 있는 것 같다.

 

 정말 이정표도 거의 안 보이고, 쉴 만한 곳도 없고, 그렇다고 눈요기할 들꽃도 없고...

재미없는 산길이 맞네.

구시렁거리며 걷는다.

정상까지 2km라고 했으니 1시간이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경사를 보니 그건 무리이겠다.

 

 

 앞서가는 종률씨는 가다가 뒤를 돌아보며 나를 기다려준다.

젊고 몸이 가벼워 그런지 나보다 훨씬 잘 걷는다.

그래, 젊음이 확실히 좋은 거지.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떼를 지어 올라오는 청춘들이 보인다.

신발은 당연히 운동화, 복장도 그냥 놀러온 모양새이다.

그래도 깔깔거리며 잘 올라온다.

하기는 나도 20대에 겁없이 운동화를 신고 내설악을 간 적이 있으니까.

 

 내 등산화에 등산복이 무안하다.

그러니 청춘들보다는 잘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힘을 내 본다.

이래 봐도 나는 본격적인 산꾼 아닌가.

 

 

 그런 길 중간에 한쪽으로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다.

동네 사람들이 운동 삼아 올라올 높이와 거리라는 말이겠지.

잠시 숨을 돌리며 종률씨 사진을 한 장 찍어준다.

볼거리가 없으니 사진도 안 찍게 된다,

그저 된비알을 허위허위 올라가라는 말인지...

 

 오가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씩씩거리고 올라간다.

서너 번 걸음을 멈추고 쉬었을까?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앞서 가던 종률씨가 전망대라고 일러 준다.

반은 넘어 왔다는 말이군.

 

 

 전망대에 도착하니 발 아래 북한강이 내려다보인다.

생각보다 시야가 넓지 않아 바로 발길을 돌리는데 먼저 와 있던 사람들이 멀리 보이는 산이 깃대봉이라고 말한다.

깃대봉이라는 이름도 재미없군.

오는 길에 지도에 나타난 뾰루봉이라는 이름을 보고 종률씨는 산 이름이 진짜 웃기단다.

주변에 사는 사람이나 지자체에서 그런 이상한 이름을 바꾸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에 의구심이 생긴다고.

뾰루봉은 예쁜 이름은 아니다.

하지만 개성(?)이 있어서 도리어 기억에 오래 남을 수도 있지 않을까.

 

 가평에는 참 산이 많다.

지금 가는 호명산, 내일 갈 유명산, 대성리에서 가까운 화야산, 포천과 이어진 운악산, 조무락골로 유명한 화악산, 명지산, 축령산, 연인산 등등.

참 열심히 산에 다녔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안 가본 산이 몇 개 있네.

 

 전망대 주변은 다른 곳에 비해 비교적 널찍하고 평평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점심을 먹는 팀이 보인다.

하기는 12시 가까이 되기는 했네.

우리는 호명호수 근처에 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으니 계속 앞으로 전진이다.

 

 

 

 여기서부터는 길이 조금 넓어지고 경사도 누그러졌다.

여전히 힘은 들지만 한숨 돌리겠군.

천천히 길을 따라 걷는데 하늘이 손바닥만큼 보인다.

정상이 가까워졌다는 말이겠지.

 

 기운을 내서 걷는데 아주머니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린다.

'다 왔나 보구나.' 생각하는데 무리지어 오던 분들 중 한 명이 내게 "예쁜 언니도 왔네." 한다.

그 말을 들은 종률씨가 '언니' 소리 들어서 기분 좋겠단다.

축축 늘어졌는데 그 말을 들으니 기운을 내야 할 것 같기는 하다.

언니니까 이 정도는 약과라고 생각하면서.

언뜻 보기는 했지만 그 말을 한 사람도 나랑 비슷한 연배 같아 보였는데 혹시 자기보다 '언니'라는 말 아니었나?

 

 

 오후 12시 10분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몇몇이 호명산 (해발 632.4m) 표지석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우리도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부탁해 증명사진을 찍고 툭 트인 곳에 눈길을 준다.

방향감각이 없어 무슨 산인지도 모르겠는데 그저 산 넘어 산이요, 그 산 너머에 또 산이 겹겹이 둘러서 있다.

정말 산이 많은 동네 맞구만.

 

산이 그의 본색을 쉽게 떠날 수 있다면 나는 어떠한가

가끔 올려 본 산과 다르다 내 안과 밖이 단조로웠다

그러다보니 바라보기 좋을 장소를 더듬는다 꽃등심처럼

즐겨 찾는 부위도 생긴다 산 전체에 대한 어떤 위치와

눈 겨눠본다 입을 약간 벌린 산으로 들어가는 어귀를

좋아했다 속내를 알 수 없이 푹푹 빠지는 산도 있다

그 꼭대기에 올라서는 이를 나는 겁내지 않는다

몇 번 가본 적 있지만 그곳에 가면 곧 거두어야 했다

산의 굽은 등에 층층나무, 거기에 흰 꽃들이 왈칵,

피어나듯 죽었다가 살고 다시 죽었다가 사는 육질들

멀리서 보면 기름 하나 하나의 줄기가 꽃 같은 산등심

산은 내 자신에게 가장 좋은 부위로 남아 있어라 한다

층층나무 한 그루, 외등처럼 멀리 오래 오래 빛나라

 

                 안정옥의 < 산등심 >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