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쉬운 코스를 선택해 걷기로 했다.
사당역에서 시작해 낙성대를 지나 서울대 입구에서 삼성산으로 접어든 후 자리를 잡고
싸온 도시락을 거의 다 먹었을 때였다.
점심이 끝나갈 무렵 옆자리에 먼저 있던 아주머니들이 떠나고 어떤 할아버님과 남자 아이들 둘이 자리를 잡았다.
할아버지와 손자로 보이는 초등학생 두 명.
아마도 할아버지께서 어린이날을 앞두고 손자들에게 무엇인가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할아버지께서 이런저런 산에 대한 이야기를 아이들한테 해 주시면서 싸온 점심을 펼치셨다.
아이들은 할아버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점심을 먹었다.
관심있게 귀를 기울이다가 힐끗 바라보니 점심이라곤 겨우 포일에 둘둘 만 김밥 몇 줄이 다였다.
갑자기 내가 이것저것 배부르게 먹은 것이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마음이 짠해졌다.
한참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슬그머니 과일을 나누어 주었다.
다른 것은 다 먹고 남은 것이 과일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산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도 친구가 되고 서로 먹을 것도 나누어 먹는다고 하면서.
조금인데도 아이들과 할아버지께서 함께 고맙다고 하시는 것에 도리어 무안해졌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나누어 먹으니 기분은 좋아졌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불편한 신발로 싫다고 안 하고 할아버지를 따라 산에 온 것이 대견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할아버님도 훌륭하고 초등학교 4학년, 2학년이라는 너희들도 참 대단하다고 칭찬을 해 주었다.
요즘 세상에 소풍이라고 나왔는데 김밥뿐이라니...
한동안 마음에 남을 것 같은 광경이었다.
어떤 이유로 할아버지께서 아이들을 힘겹게 키우고 계신 상황이 아니었을까 짐작을 해 본다.
그 아이들이 마음에 그늘 없이 잘 자라주기를 간절히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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