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은행나무

솔뫼들 2005. 10. 24.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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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나무

                                               곽재구

 

    너의 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

    아름다움이 세상을 덮으리라던

    늙은 러시아 문호의 눈망울이 생각난다

    맑은 바람결에 너는 짐짓

    네 빛나는 눈썹 두어 개를 떨구기도 하고

    누군가 깊게 사랑해온 사람들을 위해

    보도 위에 아름다운 연서를 쓰기도 한다

    신비로와라 잎사귀마다 적힌

    누군가의 옛 추억을 읽어 가고 있노라면

    사랑은 우리들의 가슴마저 금빛 추억의 물이 들게 한다.

    아무도 이 거리에서 다시 절망을 노래할 수 없다

    벗은 나무 가지 위 위태하게 곡예를 하는 도롱이집 몇 개

    때로는 세상을 잘못 읽은 누군가가

    자기 몫의 도롱이집을 가지 끝에 걸고

    다시 이 땅 위에 불법으로 들어선다 해도

    수천만 황인족의 얼굴 같은 너의

    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

    희망 또한 불타는 형상으로 우리 가슴에 적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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