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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여행 셋째날 - 제주를 먹다

솔뫼들 2025. 3. 29.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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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점심을 먹을 곳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어제 호텔 방에서 열심히 찾은 곳으로 가자고 친구에게 제안을 했다.

저지문화예술인마을에는 음식점이 많지 않다.

가다 보니 가성비 좋은 뷔페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가격도 합리적이고 음식 맛도 무난하겠지.

여기를 또 온다면 저기를 가 봐도 좋지 않을까.

 

 우리가 가는 곳은 생각보다 저지리에서 꽤 머네.

저지문화예술인마을 근처 맛집을 찾았는데 한참 간다.

구불거리는 길을 계속 운전하는 친구에게 미안해서 내가 운전을 해도 된다고 했다.

친구는 묵묵히 앞만 보고 운전을 한다.

 

 우리가 찾던 음식점에 도착했다.

동네 한 켠에 있는 작은 이태리 음식점이다.

이름도 재미있게 '재미제주'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것 같은데 테이블이 다섯개였다.

공간이 그리 넓지 않은데 테이블 간격이 넓은 것도 장점이다.

 

 

 우리는 예약을 안 하고 갔더니 40분쯤 기다려야 한단다.

주차장이 협소해 근처 밭둑에 주차를 하고 산책을 하기로 했다.

자연스런 시골 마을이라 설렁설렁 걷기에 좋다.

 

 주변에 아무렇게나 핀 유채꽃을 사진에 담고 꽃 한 송이를 꺾었다.

그리고는 줄기 껍질을 벗겨 입에 넣는다.

어릴 적에 맛본 달큰하면서도 싱그러운 맛이 입 안에 퍼진다.

친구는 묘한 표정을 짓는데 이건 시골 출신들만 아는 추억 아닌가.

기분이 좋아지는 걸.

 

노오란 물감을 큰 붓에 듬뿍 찍어

단번에 칠한 유채 꽃밭

그 뒤에 쪽빛 바다가 있고

바다 위엔 통통배가 떠 신명풀이를 한다

갈매기는 돛대 위에서 앉을 자리를 찾다가

뱃전에 부서지는 물거품과 한빛인데

바다 뒤에는 한라산이

곱게 연보라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성기조의 < 제주 유채꽃 > 전문

 

 

  멀리 보이는 교회당 건물 청회색 빛깔이 눈길을 끈다.

그쪽으로 가 보자고 도로를 건너 골목으로 들어갔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멀어 보이지도 않았는데 교회당이 사라졌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그냥 바닷가에서 어슬렁거리며 걷는다.

그러다가 바닷가에 묶인 배 한 척 사진도 찍고.

 

 시계를 보고 발길을 돌리는데 브로콜리를 수확하는 농부들이 보인다.

시장에서도 제주산 브로콜리라고 하면 조금 더 비싸기는 했지.

브로콜리는 최근 슈퍼푸드라고 하여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채소이다.

가장 간단하게 먹으려면 찌거나 삶아서 샐러드로 만든다.

초고추장을 찍어 먹어도 상큼하고.

늘 시장에서만 보던 걸 밭에서 보는 느낌은 다르네.

우리 어릴 때는 못 본 채소였는데...

식재료도 세계화가 되어 구하기 어려운 것이 별로 없는 세상이다.

 

 

  음식점 안을 힐끗 보고 마을 안쪽으로 걸어간다.

돌로 쌓은 담장이 가지런하다.

이런 담장을 보면 나는 꼭 사진을 찍고 싶어진다.

담장 옆에 억지로 친구를 세우고 찰칵!

 

 음식점을 가까이에서 돌아보니 음식점처럼 정원도 정갈해 보인다.

정성스럽게 잘 가꾸어졌다는 인상을 준다.

음식점은 최근에 지은 건물 같은데 담장도 아래에는 큰 돌을, 위쪽은 작은 돌을 쌓아 안정감 있어 보이고.

음식점 이름은 입구에 자그마한 입간판이 전부다.

요란스럽지 않고 차분한 매력이 가득한 곳이다.

음식은 어떨까 저절로 기대가 되는군.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는 주인의 말이 공손하다.

메뉴판을 보고 친구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음식을 주문했다.

시트러스 샐러드, 맥 앤 치즈 아란치니, 제주 딱새우 레몬 파스타, 달고기 홍차 보리 리조또.

 

 주문을 하고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정원에서 작은 개들이 뛰어노는 모습이 보였다.

음식점을 방문한 손님인가 싶었더니 지나가던 사람이 자신의 반려견을 풀어놓은 것이었다.

잘 관리된 잔디밭에 풀어놓은 개들은 신나게 뛰는데 음식점 주인은 황당하겠지.

음식점 주인이 나가서 견주에게 부탁을 하는데도 견주는 바로 개를 제지하지 않는다.

아무리 반려견을 가족처럼, 또는 자식처럼 여긴다고 해도 이건 민폐 아닌가.

아닌게 아니라 천방지축 뛰던 개가 담장에 대고 '실례'를 하고 있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 위주라지만 고개를 흔들게 만드는군.

반려동물 문화가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좀더 성숙해져야 하지 않을까.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식전빵으로 보리빵이 나온다.

맛이 담백한데 구수한 향이 입 안에 퍼진다.

메뉴판에서도 보이듯이 가능한 제주에서 나는 재료를 사용했다는 걸 금세 알 수 있네.

 

샐러드도 상큼하고, 맥 앤 치즈 아란치니도 튀김인데도 불구하고 과하게 느끼하지 않다.

그게 실력이겠지.

다음으로 나온 제주 딱새우 레몬 파스타.

관자와 딱새우가 곁들여져 있는 음식이다.

레몬이 들어가 있어서 그런지 크림파스타인데도 질리지 않을 맛이다.

 

 

 가장 특이한 것은 달고기 홍차 보리 리조또.

정말 처음 먹어보는 오묘한 맛이다.

보리가 톡톡 살아 있는 것 같은 식감인데 거슬리지 않고, 맨 위에 놓인 달고기라는 건 이름도 생소하다.

길쭉하게 올라가 있는 달고기는 부드러워 씹을 것이 없다.

주인장에게 물으니 달고기는 제주에서만 나는 물고기라는데 보름달을 닮아 그런 이름이 붙었단다..

우리가 특별한 음식점에 온 거였구나.

오늘 점심은 제주를 오롯이 몸 안에 받아들이는 시간이다.

 

 무려 40분이나 기다렸는데 시간이 아깝지 않다.

가격이 그리 싸지는 않지만 그만한 값을 한다는 느낌이 든다.

친구는 이런 음식점이 서울에 있으면 자주 방문하고 싶단다.

그럼 제주에서 나는 신선한 채소와 특이한 식재료를 사용할 수 없겠지.

그래서인지 그날 준비한 식재료가 소진되면 문을 닫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