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으로 매혹적인 책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기가 아쉬울 만큼 오랜만에 소설에 푹 빠졌다.
교통사고 후 복합통증증후군을 앓는 여성이 알래스카에 가서 병을 이겨내는과정에서 겪는 일이 주된 줄거리이다.
이 책에서 복합통증증후군이라는 병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복합통증증후군을 앓는 사람은 모든 검사를 해 보아도 원인이 나타나지 않는데 극심한 통증에 시달린다고 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사람의 몸이 무척 많은 기관으로 이루어져 있기는 하지만 정말 희한한 질병도 다 있구나 싶다.
'알래스카는 부름을 받은 사람들만 온다.'
책에 나오는 인상적인 구절이다.
어떤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 알래스카로 갈까?
호기심을 자극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어떤 방법으로도 치료되지 않는 복합통증증후군으로 고통받는 '이지'는 알래스카에 한국인이 하는 한의원에서 비공식적이지만 그 병을 치료한 환자가 있다는 기사를 보고 바로 알래스카로 떠난다.
이 책은 이지가 알래스카에서 만난 한의사 고담과, 필리핀 출신 핌, 일본 출신 리토 등과 어울리며 무의식 속에 있었던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고 치유해 가는 과정이다.
눈에 보이는 증상이 다가 아니겠지.
이지의 병을 보면서 생각해 본다.
복합통증증후군이 이지가 어릴 적에 겪은 성폭력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과정은 전율이 인다.
알래스카 한의원 고담 역시 상처가 있다.
아내의 아토피를 치료하기 위해 알래스카로 왔는데 아토피는 치료되었지만 심각하게 진행된 암으로 아내가 고생을 하게 된다.
고담의 아내는 한국으로 돌아가 적극적으로 치료를 할 생각을 하지 않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고담은 아내의 시신도 찾지 못한 채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어 트랩 라인 너머로 사라진 아내를 찾기 위해 서칭 데이에 참가한다.
어떤 일이 발생할지 예측할 수 없는 곳이 알래스카의 트랩 라인인데도 끝까지 노력을 그만두지 않는다.
어릴 적에 자신과 친구를 성폭력한 미국인을 찾아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하고 나니 이지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그걸 읽으며 진부하지만 한의사 고담과 이지가 아름다운 관계를 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겼다.
이지는 여행 비자가 만료되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후 알래스카에서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무언가 물건을 전해받아 자신에게 보내달라는 전언을 받고 나가니 한의사 고담이 집 앞에 서 있었다.
결국 그렇게 만나게 되는구나.
동화 같기도 하면서 환상 같기도 한 아름다운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때로는 웃고, 때로는 눈물 짓고...
작가의 다른 책을 찾아보려고 하니 작가는 시나리오 작가였다.
이 책은 소설로 나오기 전에 이미 영화 판권이 계약이 되었다고 한다.
영화가 나오면 꼭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문득 끝맺음이 있다는 것이 귀하게 여겨졌다. 일에도, 시간에도, 통증에도.'
책에 나오는 구절이다.
삶도 끝이 있기에 아름다운 것이겠지.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오늘도 열심히 살아야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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