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제주도 여행 넷째날 (2) - 마라도

솔뫼들 2024. 2. 2.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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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양열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고 빗물을 모아 생활용수로 사용한다는 마라도.

사실 사람들이 살기에 그리 좋은 여건은 아니다.

초등학교 분교가 아이들이 없어서 휴교중이라고 하지 않는가.

유독 교육열이 강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이들을 마라도가 아닌 제주도에서 교육시키고 싶어하겠지.

 

 걷다 보니 카페도 있고, 횟집도 만난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려서 귀를 기울이니 한 여성이 여러 날 마라도에서 보내고 있다는 말이었다.

이 좁은 섬에서 묵으며 무엇을 할까 하니 그녀는 밝은 표정으로 그냥 여기저기 걸으며 산책을 한단다.

우리는 한 나절이면 한 바퀴 돌고 나가는데 매일 '걷기 명상'을 하는 모양이네.

하기는 날씨에 따라 바다 빛깔도 다르고, 파도도 다르겠지.

그걸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도 다를테고.

 

 전에 지인이 마라도에 묵으면 숙소 주인이 잡은 자연산 회를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은퇴 후 제주도에서 한달 살기를 하면서 마라도에 갔는데 주인이 직접 잡아온 생선을 투박하게 썰어주는 것이 그렇게 맛있었다나.

우리같이 휘익 돌아나가는 사람들에게는 먼 이야기이다.

 

 

 마라도에 기원정사라는 절도 있다.

생각보다 규모가 크다.

여기는 주민들을 위한 공간일까, 아니면 여행객을 위한 공간일까?

 

 기원정사를 돌아보고 계속 길을 따라 걷는다.

횟집을 알리는 재미있는 입간판이 보인다.

모듬회 사진과 함께 쓰인 구절이 정겹네.

'푸진게 50,000원, 적당헌게 30,000원'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드디어 '대한민국최남단'이라고 쓰인 표지석이 눈에 들어온다.

마라도를 찾는 사람들 대부분이 여기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가겠지.

그래서인지 사진을 찍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표지석 뒤편 바닷가에는 신선바위가 있다.

신선바위에 올라갈 생각을 못 했는데 몇 명이 신선바위에 올라 사진을 찍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약간 험해 보이기는 하지만 나도 할 수 있지.

 

 신선바위에 올라가 두 손을 번쩍 들고 사진을 찍는다.

역광이어서 더 멋진 사진이 나오지 않을까.

내려올 때는 비록 엉금엉금 기다시피 했지만 특별히 볼거리가 없는 마라도에서 이 바위에 눈도장을 꾹 찍는다.

 

 

 

 다시 길로 나선다.

멀리 등대와 성당이 보인다.

마라도에 절과 성당, 교회가 다 있다고 하더니 정말 우리나라는 종교시절이 없는 곳이 없구나 싶다.

수시로 나오는 사건, 사고들을 보면 그만큼 사람들이 종교를 통해 구원을 받고 착하게 살고 있을까 의심이 들기는 하지만.

 

 가까이 가 보니 성당이 아주 작고 소박하다.

그래도 천주교 신자들인지 성당 안에 들어가 기도를 하는 모습이 보이네.

친구는 '섬티아고'라고 불리는 신안 12사도 순례길에 있던 성당이 생각난단다.

작아서 정감이 느껴지는 성당이다.

 

 

  마라도 등대 앞에는 각 나라 등대 모형을 만들어 놓았다.

등대를 둘러보고 나니 육당 최남선 선생의 '한국 해양사'에서 일부를 새겨 놓은 글귀가 보인다.

그 당시 바다로 나가서 해양국가가 되어야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으니 선견지명이 있었네.

이 주장은 지금도 유효해 보인다.

 

 사람들은 포장된 도로를 따라 걷는다.

우리는 일부러 억새가 우거진 해안가를 따라서 걸었다.

훨씬 분위기 좋은 길이다.

 

한낮에 사람들이 남기고 간

무수한 웃음 조각들이

저무는 억새밭에 서성일 때

타는 노을에 붙잡혀

마라도에서 밤을 새우고 말았네.

 

함께 밤을 새운 새벽이

우두커니 등대 곁으로 다가설 때

가장 낮은 곳에서 솟은 해가

가없는 바다에 은비늘을 세워

마라도 억새밭에 쏟아 놓더라.

 

개들은 주인을 닮아 착하고

키 작은 해국이 무리로 반짝이는 섬

그날 마라도에서 나는

붉은 젖가슴에 얼굴을 묻고

늦가을 밤을 하얗게 지새우고 말았네.

 

 이봉수의  < 마라도에서 > 전문

 

가다 보니 네모나게 땅을 파서 물을 받아 놓은 곳이 보인다.

빗물을 모아 놓았겠지.

어디에 쓰는 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새삼스럽게 마라도가 민물이 귀한 곳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오전 11시 25분, 느릿느릿 걸었는데도 벌써 선착장에 도착했다.

짜장면을 먹는다거나 회를 먹지 않아서 그런지 널널하네.

배가 들어와 있다고 생각했더니 이 배는 운진항으로 가는 배가 아니라고 한다.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낚시를 즐기는 사람 구경도 하고, 절벽에 부딪치는 파도에 눈길을 주기도 한다.

그러다가 알록달록한 블루레이호가 들어오는 걸 보면서 발길을 옮긴다.

 

 배에 올랐다.

아침에는 날씨도 쌀쌀하고 피곤하기도 해도 선실에 있었는데 이번에는 답답해 2층으로 올라갔다.

의자도 있고 사진 찍기 좋은 인물 모형도 있다.

 

 '빠삐용'은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소설과 영화를 모두 본 기억이 난다.

여기 영화 '빠삐용'에 나오는 죄수를 연상시키는 복장을 한 인물 모형이 청소를 하고 있다.

마라도 자리덕 선착장은 화물을 실은 배가 오가는데 사고가 종종 일어나는 위험한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빠삐용 절벽'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우스꽝스러운 인물 모형과 번갈아 사진을 찍으며 재미있게 논다.

 

 

 고개를 들어 보니 멀리 가파도가 손을 들어 알은 척을 한다.

가파도에 가면서 들었던 최백호의 노래도 어렴풋이 기억나고.

반짝이는 윤슬에 눈이 부셔 손차양을 하고 멀어져가는 가파도에 눈길을 준다.

가파도에서 한 발 더 가서 오늘은 마라도에서 추억 한 장 곱게 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