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 차를 두고 '느림보 강물길' 중 5구간인 '수양개 역사문화길'을 걷기 위해 나섰다.
만천하 스카이워크에 오르기 위해 갔다가 오후 4시에 마감을 했다는 말에 단 6분 차이로 허탕을 쳤으니 만천하 스카이워크 코스는 이번 여행에서 포기했다.
단양강 절벽 꼭대기에 설치되어 단양강을 한눈에 볼 수 있고 스릴을 느낄 수 있다는데 사실 근처 산에 오르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 아닐까 위안을 삼으면서.
'수양개 역사문화길'은 상진대교에서 수양개 선사유물전시관까지 3.6km라고 하니 왕복 7km가 넘는 구간이다.
걷는 것에는 이골이 났으니 설렁설렁 다녀오면 되겠지.
오후 4시를 넘겨서 그런지 바람이 조금 차가워졌다.
그래도 옷깃을 올린 사람들이 단양강 잔도에는 꽤 많다.
단양강 잔도도 전에는 없던 길이다.
남한강, 단양에서는 단양강이라고 부르는 이 강은 대부분 얼어 있다.
단양이 위도는 서울보다 낮아도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이라 기온이 낮으니 그렇겠지.
단양에는 주변에 열을 낼 만한 시설이 거의 안 보이기도 한다.
봄 마중을 나왔는데 고집스레 겨울이 버티고 있는 풍경이다.
이번 겨울 마지막으로 얼어 붙은 강 풍경을 마음에 담으며 걷는다.
구불구불한 잔도를 따라 걷다 보면 불쑥 튀어나온 절벽이 턱 하니 앞을 가로막는다.
그런 곳을 절묘하게 돌아 길은 이어져 있고.
게다가 약간씩 경사가 있어 평지와는 또 느낌이 다르다.
강가 절벽에 이런 데크길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중국에 가면 곳곳에 이런 잔도가 있었지.
중국에는 바닥이 유리로 만들어져 있어서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이니 고소공포증이 없는 나도 처음에 식겁했던 기억이 난다.
중국 잔도를 걸으면서 그런 길을 만드느라 일자리 창출은 제대로 했겠다고 혼잣말을 하곤 했는데...
데크길을 따라 걷다 보면 다양한 표정의 강을 만나고 벼랑을 만난다.
그리 길지 않은 구간이기는 하지만 지루할 틈이 전혀 없네.
오른편 산에 푸른 빛이 올라오면 한층 풍광이 다채로워지겠지.
싱그러운 들꽃도 만날 수 있을 테고, 진한 나무 향도 나겠지.
물론 겨울은 겨울대로 맛이 있지만 말이다.
룰루랄라 걷는데 음악도 내 발걸음에 리듬을 더한다.
우리가 흔히 7080 음악이라고 하는 대중가요들이 흘러나와 편안히 흥얼거리게 한다.
이 음악은 누가 선곡을 하는 것일까?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 시대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일까?
걷다 보니 벤치가 나온다.
벤치에 쓰인 글귀가 내 발길을 붙잡는다.
漢詩에 나온 것 같은 문구가 내 마음 속에 콕 들어와 박힌다고 해야 할까.
바로 그런 한가로움과 여유를 위해서 우리가 길을 나섰겠지.
걷다 보니 아까 만천하 스카이워크 입구에서 차를 돌렸던 구간이 나온다.
단양 안내책자에는 분명히 수양개 선사유물전시관까지 걸을 수 있는 것으로 나왔는데 길이 끊어진 것 같다.
그러다가 가파른 계단을 찾아 헉헉거리며 올랐는데 이정표가 전혀 없다.
어쩌란 말인가?
낯선 곳에서 헤맬 수 없어 마음을 접는다.
하는 수 없이 다시 내려와 만천하 스카이워크 입구 개천변에 조성된 공원에서 놀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이 단양강 잔도를 걷고 이곳에서 놀다가 돌아가는 모양이다.
거리가 길지 않아 가족 단위나 걷기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도 부담이 없기는 하겠다.
에펠탑 모형, 풍차 모형, 만천하 스카이워크 축소판 등 개천변에는 이런저런 조각들과 갈대밭이 조성되어 있었다.
갈대가 무성한 계절은 지났지만 아직도 바람에 날리는 갈대는 사진 속 풍경으로는 제격이지.
갈대 가운데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며 바람과 친구가 된다.
2월 말 해가 설핏해지는 시간이지만 봄이 숨어 있어서인지 바람결이 한결 부드러워진 걸 느낀다.
꼬불꼬불 놓인 데크길을 따라 걷는 사람과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뒤섞인다.
우리도 그 속에 섞여 든다.
역시 자연 속에 들어오면 잡념이 사라진다.
이게 우리가 자연을 찾는 이유 아닐까.
더구나 지금 같이 감염병이 유행하는 시기에는 두 말 하면 잔소리겠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구경을 하다가 발길을 돌린다.
걸어온 길을 따라 호텔로 향한다.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헐렁한 길을 따라 걷는다.
슬슬 어둠이 내려오는 시간이다.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 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류시화의 < 길 위에서의 생각 >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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