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본격적으로 연평산을 향해 가는 길이다.
멀리서 보았을 때 삐죽 솟아 있는 산이 연평산이다.
기껏해야 해발 100m 남짓 한 산인데 왜 그리 높아 보이는지...
물론 섬에 있는 산이 해발 0m부터 시작하는 셈이니 육지에 있는 산과 다르기는 하다.
가는 길에는 여기저기 사슴 똥이 널려 있다.
예전에는 흑염소 똥이 많았을텐데 이제는 사슴이 더 많다고 하니 사슴 똥이 맞겠지.
길에 널린 사슴 똥을 피해 발을 딛는 것도 여간 번거롭지 않다.
그런다고 다 피해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여전히 눈이 바쁘다.
굴업도에는 사슴이 많단다.
처음에는 흑염소가 나무와 풀을 못 살게 굴었나 싶었더니 사슴의 피해가 더 크다고.
한때 주민이 방목해 키우던 사슴이 달아나 야생화되고 개체수가 늘면서 굴업도의 자연이 훼손되기 시작했단다.
먹이가 부족해 풀은 물론 나뭇가지나 잎까지 깡그리 먹어치우는 바람에 굴업도가 황폐해진 것이겠지.
이제 사슴을 키우는 사람은 없고 야생화된 사슴만 굴업도에 있는 셈이다.
물론 사슴이 생태계를 풍부하게 해준 면도 있겠지.
왕은점표범나비와 애기뿔소똥구리는 사슴이 있음으로써 존재하는 곤충이라니 어떤 것이든 장단점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선에서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지 생각해볼 문제이다
모래에 푹푹 빠지다 미끄러지는 길.
거기에 어쩌다 늠름하게 서 있는 나무는 경이로움을 준다.
얼른 카메라를 들이대며 나무를 존경의 눈으로 바라본다.
살아 남느라 애썼다고 말이라도 해 주어야 할 것 같다.
전에는 잔디가 깔린 곳이었다는데 3년만에 식물이 사라지고 사구로 변했다는 곳에서 사방을 둘러본다.
무서운 파도와 바람의 힘을 실감하면서.
성글어도 티끌 하나 빠뜨림 없는
저 하늘도 얼마나 많은 날개가 스쳐간 길일 것인가.
아득히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바다도
얼마나 많은 지느러미가 건너간 길일 것인가.
우리가 딛고 있는 한 줌의 흙
또한 얼마나 많은 생명이 지나간 길일 것인가.
낯설고 두려운 곳으로 갈 때에
나보다 앞서 간 발자국들은
얼마나 든든한 위안인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지만
내게는 분명 처음인 이 길은 얼마나 큰 설렘인가.
반칠환의 < 길 > 전문
황량한 길이 이어진다.
끝없이 이어지는 너른 사막을 가본 적 없지만 사막이 이렇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본다.
어쩌다 있는 나무가 오아시스처럼 느껴지는 건 나뿐일까?
그러니 새삼스럽게 나무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어디에서 읽었던가.
나무가 살 수 없는 곳에서는 인간도 살 수 없다고.
소사나무 군락은 끝없이 이어진다.
전에 화력발전소가 있는 영흥도에서 소사나무 군락지를 본 적이 있었지.
해변에 모여 있는 古木 소사나무가 대단해 보였다.
그런데 굴업도에는 곳곳에 소사나무가 널려 있다.
소금기와 건조함에 강한 나무이니 그런가 보다 싶으면서도 강한 생명력이 느껴져 애틋한 마음이 든다.
사슴의 먹이가 되는 수난을 겪고 있기는 하지만 앞으로도 오랜 세월 치열하게 살아 남으리라.
열심히 걸어서 앞서가던 4명을 다시 만났다.
우리를 보고는 길이 안 좋으니 근처에 있는 나무를 주워 스틱으로 사용하란다.
전에 와 본 적이 있다는 중년 여인은 아주 적극적이고 씩씩해 보인다.
우리에게 사진을 부탁하더니만 이런저런 설명도 해 준다.
예습을 제대로 안 하고 온 사람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네그려.
모랫길을 겨우 지났나 싶자 이번에는 마사토길이 이어진다.
이 길이 더 위험하고 걷기 난감하다.
나무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근처 소사나무 가지를 잡으면서 겨우 한 걸음씩 옮긴다.
내려올 때가 더 문제이겠는걸.
네 명을 추월해 산길로 접어들었다.
아니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래?
이 작은 산에 바윗길이 나오더니만 밧줄까지 드리워져 있다.
낮아도 산은 산이니까 긴장하라고 겁을 주는 듯하다.
숨을 몰아쉬며 올라가고 있는데 앞에서 내려오는 남정네들을 만났다.
정상이 멀었느냐고 물으니 거의 다 왔단다.
하기는 그런 질문은 산에서 하나마나 아닌가.
바윗길을 지나 우회전하니 바로 연평산(해발 128m) 정상이다.
여기에도 표지석이 있었네.
친구와 돌아가며 사진을 찍어주고는 발 아래 내려다보이는 경치를 감상하며 숨을 돌린다.
그런데 아래가 뿌옇다.
날씨가 흐리기도 했지만 바다 안개가 올라오고 있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안개가 풍경을 지우기 전에 서둘러 덕물산까지 둘러보아야겠다 싶으니 공연히 마음이 바빠진다.
내려가는 길이 더 조심스럽다 싶었는데 그래도 힘이 덜 든다.
우리보다 처진 분들이 올라오는 걸 기다렸다가 냅다 달리다시피 거리를 줄인다.
길 옆으로 사슴인가 고라니인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모습도 보인다.
바다 짐승이든 뭍 짐승이든 굴업도에서는 쉽게 죽음을 마주 하게 된다.
사실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어쩌면 그 연장선상에 있는게 아닐까 가끔 생각해 본다.
잠깐 안개가 걷히면서 발 아래 전망이 드러난다.
어느 쪽은 구불구불하고, 어디는 잘록하기도 하고, 어디는 불쑥 튀어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모자를 얹어 놓은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팔을 뻗은 것 같기도 한 섬, 굴업도
작은 섬이 여러 모습을 보여주니 재미있다.
한눈에 들어오는 섬을 조망하며 잠깐 다리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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