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굴업도 여행 (2)

솔뫼들 2019. 6. 26.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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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고대하던 굴업도에 도착했다.

먼저 내린 사람들이 굴업도 표지석 앞에서 사진을 찍는 걸 보고 친구가 내게도 권한다.

바위를 기어 올라가 굴업도를 알리는 표지석 앞에 선다.

잠을 설치고 두 번 배를 갈아타고 드디어 굴업도에 왔구나.

한번도 배를 두 번이나 타는 섬 여행을 한 적이 없어서 조금 긴장을 했던 건 사실이다.

그런데 별 탈 없이 이렇게 온 것이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예약해 놓은 숙소를 찾아 걷거나 차를 타고 간다.

머리 위로 올라가는 배낭을 짊어진 사람들은 개머리언덕이나 큰말해변에서 야영을 할 사람들인 모양이다.

부러운 눈빛으로 잠깐 바라보다 이내 마음을 접는다.

어차피 내게는 불가능한 일 아닌가.


 우리도 마을이 있다는 방향으로 걷는데 화물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걷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빨리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가오던 승합차가 서더니 펜션에 가는 손님이냐고 묻는다.

펜션 주인장이 예약 손님을 태우러 나왔는데 우리에게 연락이 되지 않은 모양이다.

진동 모드로 해 놓은 휴대전화에 신경을 안 쓰고 신나게 주변 구경을 하며 걷고 있다가 못 알아챈 것이겠지.


 펜션 주인장 차를 타고 가는데 관광 가이드처럼 주인장은 이런저런 설명을 한다.

굴업도에는 총 8가구가 살고 있는데 모두 민박이 생업이라는 것, 선착장에서 마을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 걸린다는 것, 마을 앞 해변이 큰말 해수욕장으로 여름이면 인기가 있다는 것 등등.

금세 펜션에 도착해 함께 차를 타고 온 옆방 젊은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짐을 푼 다음 점심상을 받았다.

싱싱한 해조류와 나물 반찬들로 이루어진 건강한 밥상이다.



 맛나게 점심을 먹고는 잠시 방에서 쉬다가 몸을 일으킨다.

이제 슬슬 굴업도 탐방을 시작할까나.

혹시 굴업도 지도가 있나 펜션 주인장에게 물었을 때 마을의 고씨 민박 담벼락에 그려진 지도를 참고하라는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여행을 오기 전 인터넷에서 굴업도 관련 정보를 찾을 때 자주 나온 곳이 바로 고씨 민박이었다.

재미있는 문구가 씌어진 名言(?)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고.

물론 공감을 하면서도 키득키득 절로 웃음이 나기는 했지만.



 어차피 어디로 가든 마을을 가로질러 가야 한다.

가는 길에 고씨 민박에 들러 그 명언과 지도 사진을 찍고 설렁설렁 걷는다.

사방에서 아까시꽃 향기가 진동을 한다.

평지에 아까시나무가 지천이군.

도시에는 벌써 꽃이 졌는데 여기는 이제 한창이다.

그만큼 공기가 깨끗하고 좋다는 말이겠지.


가자. 이젠 기다림도 소용없어
만개한 오월이 너를 끌고
더 길어질 그림자 속으로 들어갈 걸

쪼로록 쌍으로 줄지어 펴진 잎새 사이
총총히 하얀 꽃 숭어리 흐드러져도
떠날 사람 다 떠난 텅 빈 시골길
네 향기 분분한들 누가 알까

가자. 눈먼 그리움도 소용없어
우거진 초록이 너를 안고
더 슬퍼질 추억 속으로 들어갈 걸

잉잉대는 꿀벌 날갯짓 바쁜 꽃잎 사이
까르르 웃어대는 하얀 향기 흐드러져도
잊을 건 다 잊은 텅 빈 산길에
네 마음 젖었다고 누가 알까


목필균의 < 아카시아를 위한 노래 > 전문


 아까시꽃이 무리지어 핀 곳을 지나자 이제는 찔레꽃이 반긴다.

가만히 찔레꽃을 보니 보기 드문 붉은빛을 띠고 있다.

흰꽃만 봤던 터라 신기하네.

대중가요에 나오는 찔레꽃 붉게 핀다는 구절이 맞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가는 길에 보니 사유지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다.

2006년 CJ그룹에서 골프장을 만들려고 했다가 반대에 부딪혀 포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골프장은 포기했지만 해양레저 리조트를 건설할 거라는 말이 들린다.

기업의 존재 이유가 이윤 추구라고는 하지만 그것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하는 것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 시설이 들어서면 자연 파괴는 불 보듯 뻔한 일 아닌가.

그런 일로 이 작은 섬 몇 가구가 또 찬반 양쪽으로 갈라섰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언제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굴업도가 망가질지 모르니 더 빨리 와 보고 싶기도 했다.


 1994년에는 방폐장을 건설하려다 섬 아래 활단층이 발견되어 백지화된 일도 있었지.

어쩌다 보니 굴업도가 그런 일로 더 유명해진 셈이다.

이 아름다운 섬의 수난사가 눈에 보이는 듯하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수난일지 모르지만.


 굴업도는 화산섬이라고 한다.

제주도나 울릉도처럼 화산섬 느낌이 나지 않는 것은 워낙 오래 전인 중생대 백악기에 만들어진 화산섬이기때문이란다.

집괴암이나 응회암이 바로 그 흔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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