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오늘의 시 - 푹

솔뫼들 2017. 12. 1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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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서림


 


      푹이라는 말의 품은 웅숭깊고도 넓다 둥글어서 뭐


    든지 부딪히지 않고 놀기에 좋다 묵은지 냄새가 담


    을 넘어가는 이 말은 시가 알을 슬기에 딱 좋다 뭐


    든지 푹 익은 것은 시가 되는 법, 항아리 속에서 멸


    치젓갈이 푹푹 삭고 있는 마을마다 시가 넘실대던


    시절이 있었다 집집마다 다른 손맛으로 익어가고


    있었다 속을 삭히고 말을 삭히는 솜씨 따라 하늘과


    땅의 기운을 빌려 오는 솜씨 또한 달랐다 청도에 가


    면 파리 잡는 끈끈이가 바람에 흔들리는 추어탕집


    이 있다. 성미 급한 시간조차 한 숨 푹 자고서 가는


    반질반질 닳은 마루가 있는 집, 소금같이 짠 김치 한


    종지에 손님이 파리떼처럼 득시글거린다 울퉁불퉁


    한 세월 따라 곰삭은 인생, 할머니가 담그는 멸치젓


    갈의 비결은 그 집 며느리도 모른다 아직 푹 빠질


    줄 몰라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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