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형!
도고에서의 날이 밝았습니다.
장마철임에도 국지성 호우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장대비를 쏟아붓는데 오늘 이 지역에는 다행히 비가 비켜가나 봅니다.
고마운 일이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정말 도고 파라다이스 노천온천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후후
선배랑 오늘 일정을 의논하다가 본래 가 보기로 했던 청양으로 향하기로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청양은 오가며 스친 적도 없는 곳이군요.
청양에는 선배가 이곳으로 이사 와서 마음을 잡지 못 할 때 차를 몰고 한번씩 오가던 장곡사가 있다고 일러 주었습니다.
덕분에 장곡사에 가 보게 되었네요.
도고에서 장곡사까지는 1시간 가량 걸립니다.
평화로운 시골길에서 빨리 달릴 필요가 없지요.
며칠간의 비로 물이 불어난 개천을 지나고, 옛모습 그대로인 면소재지도 지나고, 長谷寺라는 이름이 알려주듯 긴 계곡길을 따라 들어갑니다.
아! 여기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들었다는 곳이군요.
벚나무들이 터널을 이루고 있어서 봄이면 연분홍 꽃비가 내릴 것 같습니다.
가을이면 또 황홀한 붉은빛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겠지요.
지금은 물을 잔뜩 머금은 짙푸른 녹음이 장관이군요.
차 안에서 몇 번 카메라 셔터를 눌러 봅니다.
긴 계곡을 따라 얼마쯤 오르자 주차장이 나옵니다.
무더운 장마철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별로 없군요.
간간이 충북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칠갑산에 오르는 산꾼들만 눈에 띕니다.
계곡물이 많으니 오르다 힘들면 탁족을 하면서 쉬는 것도 좋겠군요.
칠갑산은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산이지만 오늘 같은 날에는 엄두도 나지 않고, 또 제게는 그다지 매력있는 산으로 다가오지도 않습니다.
'칠갑산'이라는 대중가요가 없었다면 쉽게 알지도 못 했겠지요.
20대에 어떤 친구가 이 노래를 들으면 제가 생각난다고 했었습니다.
지금 그 이야기를 하면서 함께 웃지요.
차에서 내려 절로 올라갑니다.
절은 어떤 규칙에 매이지 않고 언덕을 따라 자연스럽게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군요.
그래서 더 정감이 갑니다.
소박한 절집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雲鶴樓'라는 누각을 바라봅니다.
2층으로 지어져 시원스럽고 멋스럽습니다.
이름은 또 얼마나 운치가 있나요?
구름과 학이 놀다 가는 곳이라는 뜻일까요?
제가 보는 건 문화재의 지정 여부가 아니라 그냥 제 마음에 와 닿는 건물이지요.
장곡사는 통일신라시대 보조선사가 지은 후 여러 차례 중수된 유서 깊은 사찰입니다.
장곡사의 특징 중 하나가 대웅전이 둘이라고 합니다.
드문 일이지요.
장곡사를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사실을 기억하고 있더군요.
단순한 맞배지붕을 인 上 대웅전은 보물로 지정이 되어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대웅전이라고 하면 보통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공간인데 여기는 비로자나불과 약사불을 모셨습니다.
아래쪽부터 차례로 둘러보며 올라갑니다.
상대웅전 바닥은 나무로 만든 마루가 아닙니다.
대웅전 바닥에 무늬가 있는 벽돌을 깔았습니다.
매우 특이한 일이군요.
살짝 사진에 담아 봅니다.
발길을 돌립니다.
그 옆에 있는 전각을 들여다보니 둥근 북 모양의 木조형물이 보이네요.
앞서 들어간 사람이 그 木조형물을 껴 안습니다.
궁금해서 그 사람이 내려간 다음 저도 들어가 봅니다.
'좋은 인연 맺게 해 주세요.'라는 염원을 품고 꼭 안아 보라는 문구가 있네요.
저도 들어가서 불전함에 지폐 한 장 넣고 둥근 그 조형물을 가슴에 안아 봅니다.
그렇게 생각을 해서인지 가슴이 어떤 온기로 꽉 차오르는 느낌입니다.
앞으로의 인생이 풍요로워질 수 있도록 좋은 인연을 만나면 정말 다행이겠군요.
꼭대기에 서니 장곡사 전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진한 녹음과 계곡 물소리에 한아름이 넘는 느티나무 노거수까지 더해져 정말 품이 넓은 할머니 같은 절입니다.
고즈넉한 山寺의 분위기에 취하는 시간입니다.
절집이 마음에 들어 오래 있고 싶어도 장마철이라 잠깐만 있어도 온몸에 땀이 나고 견디기가 힘듭니다.
발길을 돌려 얼른 차에 오릅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쉬다가 차를 움직입니다.
마당엔 제비가 낙엽을 쓸고
몇 개인지 모를 방을 옮겨다니며
물고기들이 걸레질을 할 동안
오동나무와 족제비는 아궁이를 지펴 서둘러 밥을 짓는다
뒤뜰에는 장작을 패는 바람의 도끼질 소리
혹시나 오늘은 어느 객이 찾아오려나
주인인 듯한 허름한 옷차림의 산국화
현관문 앞 숙박계를 어루만지며
길고 흰 수염을 쓰다듬듯 시냇물이 산골짜기를 빠져나가는
창밖을 우두커니 바라본다
세상의 길이란 길은 모두 잃어야 한번쯤
묵어갈 수 있는 산중여관
함영춘의 < 산중여관 1>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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