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오늘의 시 - 책들의 귀

솔뫼들 2017. 1. 29.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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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들의 귀

                                       마경덕

 

 

책의 귀는 삼각형,

귀퉁이가 접히는 순간 책의 귀가 태어나네

주차 표시 같은 도그지어*

졸음이 책 속으로 뛰어들면 귀가 축 처지는 책

킁킁거리며 손가락을 따라가던 책은 그만 행간에 주저앉네

순순히 귀를 내주고

충견처럼 그 페이지를 지켰지만 해가 가도록

끊어진 독서는 이어지지 않고 책의 심장에 먼지만 끼었네

 

귀 접힌 자리마다 쫑 메리 해피 도꾸 누렁이……

쥐약에 거품을 물고 쓰러진 눈빛이 생각나 눈에 든 문장에 밑줄을 긋네

쫑긋, 귀를 추켜들지 못하고 아무에게나 꼬리를 흔들고 가랑이에 바르르 눈치를 밀어 넣던 비굴한 이름들

흘러내린 두 귀를 실로 묶다가 본드를 발라본 적 있네

 

셰퍼드처럼 진돗개처럼 자존심을 세우지 못한

아비도 모르는 개들은

마루 밑 신발짝이나 물어뜯다가 복날에 하나 둘 사라졌네

 

순한 책의 귀,

녀석도 잡견이네 침을 묻혀도 짖지 않고 책장을 찢어도 물지 않네 누군가의 손짓을 따라가 집을 잃은 책들은

귀를 펴고 또 다른 주인을 섬기거나, 귀를 접고 헤어진 주인을 그리워하거나

 

* 도그지어(dog's ear) : 책장을 접어놓은 부분이 강아지 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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