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형!
몇 년 전부터 가고 싶었던 강원도 고성 여행을 계획했습니다.
눈쌓인 화진포호의 모습을 머리 속으로 그려보면서 설레었지요.
가는 길에 인제에 들르기로 했습니다.
차를 가지고 움직이니 원하는 곳에 들를 수 있는 장점이 있지요.
박인환 문학관은 인제읍내 도로변에 있습니다.
생가 옆이라고 하더군요.
한국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시인 박인환 아시지요?
'세월이 가면'이라든가 '목마와 숙녀'라는 시로 기억되는 시인 말입니다.
명동백작이라 불렸던 박인환 시인이 인제 출신이랍니다.
박인환 문학관은 지금까지 가본 문학관과는 다르게 꾸며져 있었습니다.
대부분 문인의 일대기와 교유하던 인물, 그리고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데
이곳에는 박인환이 활동하던 50년대 명동 거리를 재현해 놓았습니다.
박인환이 오장환 시인이 운영하던 서점을 인수해서 직접 '마리서사'라는 서점을 운영했다고 하지요.
거기에 문인들이 모여서 토론도 하고 작품활동도 하고...
시인 김수영의 모친이 운영했다는 빈대떡집이나
연예인 최불암씨의 모친이 운영했던 주점 은성,
명동 부근에 처음으로 문을 연 고전음악 감상실 봉선화 다방,
그리고 戰後 폐허가 된 명동에 가장 먼저 문을 연 모나리자 다방...
또 동방싸롱이라는 것도 있었네요.
예술가들을 후원하기 위해 세워진 건물이었답니다.
그 시절에 위스키를 골라 마셨다는 사실도 놀라웠습니다.
위스키를 마시던 포엠도 재현해 놓았군요.
그 자리에 슬쩍 끼어들어가 문학을 논하고 싶어지는군요.
이런 모습들이 50년대 흑백영화를 보는 것처럼 재미있습니다.
이제 박인희의 목소리로 '세월이 가면'이라는 노래가 나올 때마다 그 시절 명동 거리와 은성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사연 많은 은성의 여주인 생각에 가슴이 시릴지도 모르지요.
자신의 사연이 노랫말로 만들어졌다면 가슴은 아플 수 있지만 그것도 엄청난 영광이지 않을까요?
그런 시절이 있었군요
크지는 않지만 명동 백작 박인환을 만나고 나니 잠시 저도 멋쟁이가 되고 싶어졌습니다.
박인환은 그 시대에도 외투 빛깔까지 날씨나 계절에 맞게 골라 입을 만큼 멋쟁이었답니다.
사실 멋쟁이가 돈만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요.
감각도 있어야 하고, 부지런하기도 해야 하고, 개성도 있어야 하고...
박인환 시인 모습을 재현해 놓은 곳에서 악수라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 세상 신명나고 멋지게 살고 간 문인과의 만남만으로
오늘 하루 행복 바이러스가 사르르 퍼지는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