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수덕사를 향해 차를 달립니다.
언제 가도 마음이 정갈해지는 곳이 수덕사 아닌가요?
벌써 점심 먹을 시간이 되었군요.
수덕사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주변을 돌아봅니다.
더덕구이를 비롯한 산채비빔밥이 유명하다지요.
잠깐 둘러보다가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던 약선공양간이라는 한정식집으로 들어갑니다.
藥食同原을 주장하는 음식점으로 인공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가격에 비해 정말 반찬이 다양하고 맛도 깔끔하군요.
깊고 진한 맛이 나는 된장찌개에 그만 반했습니다.
국물을 어떻게 내었을까 궁금해지는데 한약재를 여러 가지 넣어서 국물을 만든다는 말에 그만 입을 다물었습니다.
따라 할 자신이 없으니까요.
손맛이 느껴지는 갖가지 나물은 고유의 맛을 간직하고 있었고 간도 심심해서
접시가 보이도록 싹싹 비웠습니다.
누구에게 소개해도 되겠다 싶더군요.
기분좋게 점심을 먹고 수덕사를 향해 걷습니다.
절은 늘 그렇듯이 아래에서 걸어올라가면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게 되지요.
대부분의 절집 입구는 오래된 나무들이 도열해 있어서 그 사이를 걷다 보면 저절로 마음이 씻겨지는 느낌이 듭니다.
수덕사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산군에서 심혈을 기울여 소나무숲을 조성해 관리하고 있더군요.
기후 변화나 병충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소나무가 곤혹을 치르고 있는데 이런 곳을 만나면 얼마나 반가운지요.
소나무숲을 배경으로 부도탑을 지났습니다.
경허, 만공 등 걸출한 고승대덕을 배출한 수덕사는 백제시대 고찰이지요.
덕숭산 자락에 자리잡은 수덕사는 지금까지 그 선풍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삼삼오오 성지 순례를 온 보살님들이 오가는 모습이 보이지만 경내는 비교적 조용합니다.
전에 왔을 때보다 덕숭산의 산세와 건물, 탑 등 하나하나가 다르게 다가오네요.
현존하는 최고 목조건물인 대웅전은 단청이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소박한 맞배지붕에 측면 4칸으로 이루어졌군요.
단순미가 돋보이는 걸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웅전 앞에서 내려다봅니다.
양쪽에 老巨樹가 자리한 절 마당에 앞 건물 지붕이 살짝 걸쳐져 있습니다.
한눈에 들어오는 전경이 시원스럽습니다.
지금은 12월 중순 한겨울이지만 햇볕 찬란한 봄날은 어떤 모습일까요?
잠깐 생각에 잠겨 봅니다.
내려갈 때는 경사로를 택합니다.
담장을 끼고 내려가서 단정하게 이엉을 갈아입은 수덕여관으로 발길을 합니다.
고암 이응로 화백의 전 부인이 운영하던 여관이지요.
지금은 이응로 화백과 전 부인 모두 故人이 되었지만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사연 많은 분들입니다.
그래서 가슴이 아프기도 하지요.
수덕여관을 운영하면서 전 부인은 동베를린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던 고암 뒷바라지를 했다지요.
그렇게 챙겨 주었는데도 고암은 그 후 프랑스로 훌쩍 떠났고요.
사생활을 제삼자가 이러쿵저러쿵 할 일은 아니지만 작품을 떠나서 고암은 그것으로 후세인들에게 지탄을 받기도 합니다.
어찌 되었든 고암의 작품을 보면서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복원해 놓은 수덕여관 옆에 고암이 새겨 놓은 巖角畵가 있군요.
바로 文字 抽象이지요.
단순한 추상화 속에서 저는 여러 가지를 봅니다.
세상을 향해 포효하는 군중의 모습도,
때로는 손잡고 어우러져 사는 민초들도,
그리고 빙빙 어지럽게 느껴지는 세상도 말입니다.
천천히 걸어 내려왔습니다.
예전에 寺下村이었을 곳은 음식점과 한약재를 파는 곳으로 변했습니다.
다른 곳보다 더 산나물과 약재를 파는 곳이 많은 것 같더군요.
거기에서 올방개 묵가루를 한 봉지 샀습니다.
뽀얀 묵가루를 보면서 찰랑찰랑할 정도로 쑨 묵이 떠올라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일거리를 하나 만든 셈입니다.
어릴 적에 왜 힘들게 모든 걸 집에서 하느냐고 어머니께 늘 부루퉁했었는데
나이가 드니 결국 저도 이렇게 되어 버렸네요.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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