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해파랑길을 걷다 (17코스- 경북 포항)

솔뫼들 2015. 3. 23.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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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일정이 늦게 끝났다는 핑계로 느지막히 일어나 아침을 챙겨먹고 배낭을 둘러멘다.

일단 해파랑길 안내지도를 얻기 위해 흥해읍사무소에 들러보기로 했다.

네비게이션을 작동시키며 흥해읍사무소를 찾아갔으나 역시 해파랑길 안내지도는 없었다.

어떤 길을 말하는지 담당직원한테 도리어 설명을 해 주어야 할 정도이니...

 

 안내지도 얻는 것을 포기하고 택시를 탔다.

영일만대로를 달려 어제 트레킹을 끝낸 지점으로 간다.

어제도 그랬지만 주변은 썰렁하다.

날씨가 포근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본격적으로 걸을 준비를 위해 겉옷을 바꿔 입고 스틱을 꺼낸다.

 

 

 오전 10시 정각, 배낭을 메고 길로 나선다.

길은 도로를 따라 이어진다.

옆으로 콘테이너가 쌓여 있고 관련 건물들이 이어져 있는 삭막한 느낌이 드는 길이다.

그러다가 오르막길로 접어들었다.

도로표지판에는 보행이 금지되었다고 하는데 해파랑길은 그런 길로 안내를 하네.

 

 영일만대로를 올라탔다가 신호등이 있는 곳에서 좌회전을 했다.

살짝 경사가 있는 길을 따라 걷는다.

전혀 마을이 나올 것 같지 않은 길이었는데 불쑥 건물이 나타난다.

발 아래를 내려다보니 초등학교 건물이다.

초등학교가 있는 걸 보니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는 말이겠지.

그나저나 아이들은 꽤 먼 거리를 걸어다녀야 하겠군.

아니 집집마다 차가 있어서 부모가 아이들 등교를 도와줄 것 같기는 하다.

 

 

 어릴 적 논둑길을 따라 걷다가 다리를 건너 초등학교를 다니던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 걸으면 15분 정도 걸리겠지만 그때는 20분 넘게 걸렸던 것 같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려고 가을걷이를 끝내고 살짝 언 논으로 들어섰다가 얼음물에 빠지기도 했고,

가다가 메뚜기를 잡는다고 엉뚱하게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지.

 

 고만고만한 집들이 이어진 골목에서 흰꽃을 피워 올린 매화 향기를 맡고,

널찍한 운동장에서 마음껏 뛰어놀 아이들을 생각하며 걷는다.

우목리를 지나 길은 자갈이 널린 해변으로 이어진다.

또다시 지저분한 길이라 인상을 찌푸리게 되는데 바로 옆에 쓰레기 불법투기 집중 단속을 알리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결국 안내문만 붙여 놓고 단속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말이겠지.

 

 

 그렇게 이어지던 길은 예상과 달리 산으로 가라고 한다.

산 속으로 이어진 길은 막 농사를 위해 손질을 끝낸 밭을 만나고, 대나무숲을 만나고, 붉은 매화를 만난다.

산길이 이어지는 양지바른 곳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오늘도 햇살을 피해야 할 정도로 날씨는 좋다.

간식을 먹고 물을 마시며 쉬다가 다시 몸을 일으켠다.

 

 길은 계속 산길로 이어진다.

그러더니 갈림길이 나오는데 안내표시가 없네.

잠깐 오락가락 하다가 두발로 앱을 활용해 제 길을 찾았다.

찾고 보고 아주 작은 안내리본이 달려 있는데 작년에 다녀간 누군가가 정말 앙증맞게 매달아 놓은 것이 눈길을 끈다.

고성에서부터 만난 '장산... ' 노란 리본도 간혹 만나면 반가웠는데 이것도 앞으로 걷는 길에서 친구가 되어 주리라.

 

 

 길은 이제 언제 산길이었나 싶게 잘 닦인 해변으로 우리를 이끈다.

산뜻하게 다듬어진 바닷가 길을 따라 운동하는 사람들이 꽤 많네.

맨 손으로 팔을 흔들며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날씨만큼이나 경쾌하다.

거기에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들도 자주 눈에 띄고.

 

 오는 동안 계속 환호해맞이공원이 이정표에 나오더니 오른편으로 잘 단장된 공원이 보인다.

그리고 조금 더 가자 예상 못한 번화가가 이어져 있네.

동해안 어디나 있는 횟집을 비롯해 커피숍과 숙박업소, 아파트까지 북적북적하다.

 

 

 깔끔한 길을 따라서 기분좋게 걷는데 바다쪽으로 뻗어나간 전망대가 보인다.

저기가 영일대 전망대인 모양이라고 했더니 고문님께서는 거기 가서 본다고 더 잘 보이는 것이 있겠느냐고 하신다.

어찌 되었든 최근에 만들어진 곳으로 보이는 영일대를 향해 걷는다.

영일대 해변은 포항에서 드라이브 삼아 나오기 좋은 곳 아닐까 싶게 기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영일교를 지나 영일대에 오르니 포스코가 한층 가깝게 보인다.

사진 몇 장 찍고 다시 거리에 서니 여러 가지 모양의 조각 작품이 우리를 맞아 준다.

높은 장대 위에 앉은 사람이 책을 보는 모습을 형상화한 조각도 있고, 비구상 작품으로 무엇일까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도 있다.

유난히 정비가 잘 되었다 싶었더니만 '2013년 대한민국 공간문화 대상'을 받았다는 안내문이 보인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시간이 꽤 많이 흘렀다.

아침이 늦었으니 점심도 늦게 먹자고는 했지만 슬슬 시장기가 몰려온다.

점심을 어디에서 먹을까 의논을 하다가 처음에는 죽도시장에서 먹기로 했는데

생각해 보니 죽도시장까지 갔다가 도로 오는 것도 만만치는 않겠다 싶어서

어제 친구가 알려준 식당을 찾기로 했다.

고문님 말씀에 의하면 우리가 가는 길에서 그다지 멀지는 않다고.

 

 동빈큰다리 부근이라 했으니 앞을 보고 걸어야지.

오른편으로는 다닥다닥 중소 상점들이 붙어 있고 왼편으로는 크고 작은 배들이 정박해 있다.

안쪽으로 들어온 물이 강물인지 바닷물인지 헷갈려하자 고문님께서 바다가 육지쪽으로 들어온 것이라 일러주신다.

갑자기 항구도시에 왔다는 느낌이 새삼스럽게 드는 길이다.

 

 동빈큰다리 근처에 도착했다.

'T맵'으로 산촌식당을 찾아간다.

꼬불꼬불한 골목을 몇 번 돌아가니 주택을 음식점으로 사용하는 곳이 나온다.

외지인들은 정말 찾기 힘들겠구만.

 

 

 자리를 잡고 정식을 시켰다.

바로 한 상 가득 나오는 음식이 식욕을 자극한다.

언제 다 먹나 싶은데 차례차례 젓가락이 가네.

갖가지 나물에 금세 구운 옥돔, 그리고 젓갈까지 간도 심심하고 맛깔스러워 부지런히 수저를 움직였다.

점심을 먹고 후식으로 나오는 원두커피까지 먹고 나니 그만 늘어져서 눕고 싶다.

갈 길이 먼데...

이러면 안 되는데...

 

 주인장은 여행하는 사람이 어떻게 찾아 왔느냐고 놀라워 한다.

포항사람들에게만 알려진 곳이고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하면서.

요즘은 스마트폰의 안내를 받아 못 찾아갈 데가 없지 않나요?

 

 

 점심을 잘 먹었으니 힘을 내어 걸어야지.

그런데 생각만큼 기운이 펄펄 나지 않는다.

무거운 다리를 끌고 동빈큰다리를 건넌다.

'큰다리'라고 이름 붙인 것이 순박해 보여 기분이 좋아지는 다리이다.

 

 다리 위에서 사진 한 장 찍고 송도해변으로 들어섰다.

여기도 조각작품이 보이고 눈길을 끌 만한 시설물을 많이 만들어 놓았다.

포스코가 가까이 있고 형산강과 이어지는 곳이니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겠지.

송도해변에서 17코스가 끝나는데 어디에도 해파랑길 안내판이 보이지 않는다.

복잡해서 그런가 보다 마음을 접고 내처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