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청송 주왕산에서

솔뫼들 2015. 3. 11.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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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7시에 양재역에서 만나 두 대의 차량에 나누어 타고 청송으로 출발했다.

경부고속도로를 타다가 영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다시 중앙고속도로로 갈아탄 후 첫번째 휴게소에서 먼저 출발한 차량과 만나기로 했다.

먼저 출발하기도 했지만 젊음을 무기로 박력있게 운전을 하는지 로미는 일찌감치 휴게소에 도착한 것 같다.

휴게소에서 만나 일찍 나오느라 거른 아침식사를 우동으로 대신하고 커피 한 잔을 마신 후 다시 출발이다.

다음에는 주왕산 주차장까지 내리 가기로 했다.

 

 

 중앙고속도로에서 서안동인터체인지로 내려섰다.

안동 시내를 들어서자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이라는 구호가 눈에 띄고

내일 삼일절을 맞아 미리 단 태극기가 거리에서 펄럭이고 있다.

올해가 광복 70주년이라고 특별히 기념하는 행사가 이것저것 열리는 모양이다.

그래서 태극기 달기 운동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고.

 

 

 사실 가장 간단한 애국이 국경일이나 기념일에 태극기 다는 일 아닐까 싶다.

그런데도 태극기를 내걸면서 보면 아파트 한 동에 태극기를 단 집이 몇 집 되지 않는다.

이번에는 삼일절인데 여행을 떠나느라 태극기를 달지 못 한다.

평소에 낡은 태극기가 늘 마음에 걸렸는데 관리사무소에서 태극기를 판다고 하기에 얼른 가서

바람에도 말리지 않는다는 태극기를 구입했다.

그런데 그 국기를 내걸지 못 하고 길을 떠났다.

이번에는 나도 실천하지 못 했지만 국민들이 국기를 다는 작은 일부터 실천하면 좋지 않을까.

 

 

 

 안동 시내를 빠져나가 꼬불꼬불한 길로 접어든다.

다행히 전보다는 길이 좋아졌다.

오전 11시 조금 넘어 주왕산 주차장에 도착했다.

 

시간을 보니 점심을 먹기는 이른데 그래도 산행 시작 전에 점심을 먹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주차장에서 대전사에 이르는 길 양쪽에 있는 상가 중에 한 곳에 들어가 비빔밥과 칼국수 등을 시켰는데

된장과 청국장을 더해 끓인 찌개는 맛이 좋으나 나머지 음식은 영 아니올시다네그려.

 

 

 어찌 되었든 점심을 해결하고 산행 준비를 한다.

송회장님과 박총무는 산행을 포기하고 미리 숙소로 가겠다고 해서 일행이 4명이 되었다.

어느 코스로 갈 것인가 지도를 펴고 의논을 하니 고문님께서 주왕산 정상을 지나는 곳으로 가야 처음 온 로미가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하신다.

게다가 출발 시간이 늦어서 3 ~ 4시간 이내로 산을 타야 할 것 같고.

 

 

 

 산을 타기 전에 보이는 기묘한 바위 봉우리는 신비한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

주왕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데 역사적으로 고증을 해 보면 주왕보다는 통일신라시대 김헌창의 난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닌가 한단다.

입구가 바위 봉우리로 되어 있어서 문처럼 된 양쪽의 바위 봉우리 사이를 막으면 저절로 천연 요새가 되겠지.

'메 산'자를 그리고 있는 산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대전사를 지나 본격적으로 산길로 접어든다.

우회전해서 오르니 계단길이 이어진다.

해발고도가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국립공원인데다 산을 보호하기 위해 계단을 설치한 것 아닌가 싶다.

계속 계단이면 짜증이 날텐데 다행스럽게도 중간에 경사로에 나무를 깔아 서서히 오르게 되어 있다.

이렇게 만들어 놓은 곳은 처음 본다.

등산객을 배려한 것 같아 고마운 마음이 든다.

 

 

 

 오후가 되어서 그런지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어린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두 팀이 있고 우리 일행뿐이라 산길은 호젓하다.

가다가 서서 연신 눈에 보이는 경치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겨울이라 나무나 풀은 볼 것이 없지만 바위 봉우리야 계절에 상관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은가.

 

 산은 그다지 험하지 않다.

심지어 장화를 신은 어린아이가 씩씩하게 갈 정도로 순하다고 해야 할까.

새벽부터 설쳐서인지 기운이 없는데 신나서 걷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도 힘을 내 본다.

 

 

 가다 보니 여기저기 쓰러진 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몇 년 전 태풍이 심하게 불 때 쓰러진 나무들인데 자연으로 돌아가도록 그대로 놓아 두었다는 안내문이 보인다.

어떤 곳은 심지어 나무들의 공동묘지로 보일 정도이니 유난히 피해가 크기는 했나 보다.

뿌리를 깊이 박지 못한 소나무가 특히나 피해를 많이 본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소나무는 風害뿐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입었다.

산을 오르는 길에 보이는 그리 굵지 않은 소나무에 상처가 났기에 일제강점기에 송진을 채취하기 위해 어린 나무에도 지독하게 손을 댄 줄 알았다.

그런데 1960년대 중반 경제사정으로 인해 송진을 채취한 후 벌목을 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다행히 1976년 주왕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후 송진 채취와 벌목이 금지되었다고.

이래저래 소나무의 수난사를 보는 듯하다.

 

 

 드디어 周王山(해발 722m)에 도착했다.

앞에서 가던 가족 단체사진을 찍어주고 일행이 오기를 기다렸다.

우리도 일행이 모여 단체사진을 찍고 나자 이자문님께서 원두커피를 내려 주시겠단다.

커피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산 정상이라니...

사실 커피는 맛도 좋지만 원두를 갈 때 나는 향이 더 매혹적이다.

그것만으로도 때로는 행복해진다고나 할까.

커피를 마시며 쉬다가 다시 배낭을 멘다.

 

 

 길은 평탄하게 이어진다.

약간의 오르락내리락 하는 길이 나오다가 조금 긴장시키는 바위 옆으로 돌아가고

긴장이 풀렸나 싶으면 등에 땀이 밸 정도의 오르막길이 기다린다.

그러니 지루할 틈이 없다.

 

 우리는 칼등고개에서 내려가기로 했다.

주왕산에는 유독 토박이말로 된 지명이 많다.

칼등고개를 비롯해 가메봉, 후리메기, 금은광이 등등.

어디에서 그런 단어가 유래되었는지 사뭇 궁금해진다.

 

 칼등고개에서 내려서면 소나무 고사목이 꽤 눈에 띈다.

그리 큰 나무도 아닌데 그대로 화석이 되어버릴 것처럼 서 있다.

죽어서도 꼿꼿한 소나무.

가히 우리 선조들이 예찬할 만한 나무 아닌가 싶다.

 

 

 후리메기 입구까지 내려왔다.

전에 가 보았던 내원마을이 여기에서 올라가게 되어 있다.

지금쯤은 어떻게 변했을까?

산 속 깊이 자리잡아 6.25전쟁이 터졌는지도 몰랐다는 마을,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으로 알려진 마을.

 

 10년 전쯤 방문했을 때도 이미 살던 사람들 대부분이 나가고 분교에 찻집을 운영하는 분만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가 보고 싶어지는 곳이다.

이정표에는 내원마을 가는 방향으로 '외씨버선길'이라는 예쁜 이름을 붙여 놓았다.

지금은 집들이 대부분 철거가 되었겠지만 그래도 무언가 남아 방문객을 맞아주지 않을까?

 

 

 일행이 도착한 후 길을 따라 하산을 한다.

군데군데 잔설과 얼음이 보여 날씨는 포근하지만 겨울임을 알려준다.

겨울 가뭄이 심해 이곳에서도 물 구경하기가 쉽지는 않다.

폭포라는 이름이 무색할 지경인데 로미는 폭포를 구경하러 갔단다.

 

 설렁설렁 발걸음을 하며 주변 경치를 구경한다.

길 옆 바위는 주상절리라니 여기도 화산활동이 일어났던 곳이라는 말이다.

세로로 죽죽 금이 그어진 것이 금세라도 갈라질 것 같은 바위를 보면

정말 자연의 조화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사람들이 많아진다.

바위봉우리 구경 삼아 온 사람도 있을테고, 다른 코스로 하산을 하는 사람도 섞였고...

그래도 沼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빛깔의 물이 고여 있는 것이 한여름 물이 많으면 장관을 연출하리라 기대를 하게 만든다.

 

 고개를 젖혀 바라보아야 하는 바위가 양옆으로 도열해 있어서 내가 걷고 있는 길이 바위굴처럼 느껴진다.

바위 옆으로 폭포에 계곡이 이어져 있는데도 나는 바위굴에 들어앉아 있는 것 같고.

수량이 적어 볼품이 없기는 하지만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경험상 그리 잘 나오지는 않지만 두 개의 커다란 바위 봉우리를 렌즈에 담아 보려 기를 쓴다.

자주 오기는 쉽지 않은 곳이므로.

다음에 다시 온다면 물 많은 가을이면 좋겠다.

산이야 사계절 다 좋지만 그래도 주왕산과 더 어울리는 계절을 찾는다면 단연 가을 아닐까.

 

 

 대전사를 지나 왁자지껄한 도로로 나왔다.

한 무리 신도들이 대전사를 방문하고 가는지 승복을 입은 보살들이 보인다.

종교를 떠나 공기 좋고 풍광 좋은 곳으로 하루 바람을 쐬고 가는 사람들 모습이 여유있어 보인다.

유머 감각 뛰어난 이자문님은 한 보살님 걷는 모습을 칭찬해 주고 즐거운 덕담을 들으셨다.

그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좋은 일 하셨네요.

 

 

 다 내려왔다 싶은데 그냥 가면 섭섭하다고 이자문님께서 음식점 한 곳으로 들어가셨다.

올라올 때 대추차를 얻어마신 곳이다.

고문님과 로미에게 연락해 음식점 이름을 가르쳐주고 도토리묵과 막걸리를 시키셨다.

흥청한 분위기에 역시나 관광지 느낌이 묻어난다.

썰렁하던 음식점 안이 우리가 들어가고 난 후 갑자기 손님이 많아졌다.

우리가 손님을 끌고 들어간 셈이었네.

나는 운전을 위해 대추차를 마시고 잠시 쉰다.

 

 간단히 뒤풀이를 마치고 이제는 청송자연휴양림으로 향한다.

오던 길을 되돌아가야 하는 길이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얼마쯤 가자 새로 지은 듯한 건물이 산 속에 나타난다.

청송군에서 운영하는 자연휴양림이다.

이제 즐겁게 먹고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울 일만 남았군.

겨울과 봄이 교대를 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