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오늘의 시 - 빨래가 마르는 시간

솔뫼들 2024. 11. 4.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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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가 마르는 시간

                                              사윤수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빨래가 널려 있다

이동 건조대 가득 큰 대자로

위쪽은 나란히 직수굿하고

아래는 넌출진 구비를 드리운다

세탁기 속에서 혼비백산

그 컴컴하고 거친 물살을 통과한 기억이

빨래에게는 없는 것 같다

머릿속까지 표백되었을지도 모르니

 

세상에는 매달려서 견디는 것들이 많다

나도 어떤 것에 안간힘으로 매달려

한사코 떨어지지 않으려던 때가 있었다

외줄을 잡고 젖은 빨래처럼 허공했으리라

양팔 가득히 빨래를 걸치고 서 있는 건조대가

수령 오래된 한 그루 빨래나무 같다

 

은결든 물기와 구김을 다림질 해주듯

햇볕이 자근자근 빨래의 등뼈를 밟고 다닌다

어느 어진 이의 심성과 순교의 윤회일까

제 본분인 양 빨래는

모짝모짝 부지런히 말라간다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

그 배경에 잠풀 향기 은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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